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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흔드는 바람에 대하여

[섬진강칼럼]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흔드는 바람에 대하여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2.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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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바람에 날개를 흔들리며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한 마리 새의 모습이다
사진 설명 : 바람에 날개를 흔들리며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한 마리 새의 모습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해질 무렵 지인이 찾아와 끊임없이 삶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인생, 자신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생을 어찌해야 하냐며 사는 길을 안다면 알려달라고 눈물바람으로 묻고 갔는데, 촌부가 무엇이라고 한들, 선택은 그 자신의 몫이라, 그가 살아야 할 그 자신의 생에 대하여, 어찌 할 수 없음이 내내 안타깝기만 하였다.

지인이 떠난 후 밤이 깊도록 창가에 앉아서, 그에게 촌부 나름 사는 길이라며 해줬던 이야기,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흔드는 바람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해 보는데, 정작 내가 흔들리면서 아프기만 하다.

기본적으로 불변의 사실은, 세상의 모든 초목들은 허공에서 이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서 이는 바람을 따라 마음을 흔들리며 산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허공에서 쉼 없이 일어나 초목들을 흔드는 바람과, 사람들의 마음에서 쉼 없이 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바람은, 유형의 바람과 무형의 바람으로 성질이 전혀 다르지만, 본질은 둘 다 그 실체가 없는 것으로 공허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재밌는 것은, 비록 실체가 없는 바람이지만, 허공에서 이는 바람에 흔들리며 사는 초목들의 의미가 다르고, 자신의 마음에서 이는 바람에 마음을 흔들리며 사는 사람들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창문 밖 하늘과 산천을 보면, 어느 해 한 해도 바람 불지 않은 해는 없었고, 초목들 역시 크고 작은 바람이 불때마다, 큰 나무들은 큰 나무대로 작은 풀잎들은 작은 풀잎대로, 저마다 제 자리에서 생겨난 대로 흔들리며 견뎌낸 것이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자라는 초목은 없다.

사람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마찬가지다. 날마다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너나없이 자신의 마음에서 이는 바람을 따라 마음을 흔들리며 살고,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라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 마음을 흔드는 바람에 한 번도 마음을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런 사람은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미래에 태어나 사는 사람들에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무궁한 우주에 그런 사람은 없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서 일으켜 자신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그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마다 바람의 성질이 다르고 체감하는 바람의 세기와 무게가 천차만별이며 전혀 다르고, 이것이 날마다 살아내야 하는 하루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초목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날마다 쉼 없이 집 앞을 흘러가고 있는 저 섬진강 강물도 흐르고 있는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을 흔드는 바람에 대하여,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자신에 대하여,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흔들리면서도 흘러가고 있는 저 강물처럼 담담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살라고 떠나는 그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밤이 깊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흔들고 있는 바람에 대하여,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며 잠 못 들고 있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아파하고 있을 지인에게 촌부가 거듭 일러주고 싶은 것은.......

석가모니는 자신의 마음에서 이는 바람에 흔들려 출가하였고, 여러 수많은 고행 끝에, 지금껏 자신을 흔들면서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바람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임을 깨닫고, 모든 괴로움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었고......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깨우치는 참선 수행을 하는 모든 선객(禪客)들의 스승이 된, 저 유명한 땔나무꾼 육조 혜능대사의 풍번문답(風幡問答)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에서 마음을 깨우치는 것으로, 바람의 깨달음이고 바람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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