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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거의 모든 산사태는 빗물이 시작이고, 대부분은 사람이 만든 인재다

[섬진강칼럼] 거의 모든 산사태는 빗물이 시작이고, 대부분은 사람이 만든 인재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7.2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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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구례읍사무소 공무원들이 응급조치한 봉산 정상 부근 등산로 경사지 모습이다.
사진 설명 : 구례읍사무소 공무원들이 응급조치한 봉산 정상 부근 등산로 경사지 모습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며칠 전의 일이다. 늘 그렇듯 새벽이면 걷기운동을 하기 위해 집 뒤 (구례읍) 봉산을 올라가는데, 간밤 쏟아진 폭우에 구례군이 등산로를 개설하면서 생긴 작은 경사지가 무너지면서 배수로가 흙더미에 막혀있었다.(사진 참조)

얼핏 보면 별것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체험한 내 경험으로는, 상황에 따라서는 호미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도 막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지난 5월 이사하는 과정에서 두 팔을 다쳐 지금껏 치료하고 있는 환자인데, 무리해서라도 삽을 들고 올라가 처리하면 되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임시 응급조치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새벽에 어디다 신고해야 할지 알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운동하러 올라올 정도로 비가 갰고, 안심해도 좋을 만큼 그날의 일기예보 또한 좋아서, 걷기운동을 끝내고 공무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구례읍사무소에 찾아가서 정황을 알렸다.

사실은 망설이다 찾아가 신고하면서도, 신속하게 조치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게재한 사진에서 보듯 무시하지 않고 즉각 조치하여, 일어날 수도 있는 더욱 큰 사고를 예방하여 준 구례읍 공무원 여러분께 군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 가지 덧붙이면, 구례읍 봉산 등산로 관리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래전 군에서 등산로를 개설하면서 함께 만들어놓은 배수로의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서 공개적인 건의를 한다면, 구례읍장이 재난 방비 등 항시 조건 없이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2020년 8월 8일 구례읍이 물바다가 되었던 그런 물난리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세월이 돼버렸기에, 여기저기 막혀있어 제구실을 못 하는 봉산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 배수로 정비를 시급히 서둘러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경사지 토양 유실은 배수로 관리가 안 된 탓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 따라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고민하면서 읍사무소에 신고하고, 다시 이렇게 공개적인 글을 쓰는 것은, 60년이 다 된 기억 때문이다.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전이었으니까. 1967년 여름 이맘때의 일이었다. 퍼붓던 장맛비가 갠 오후, 바지게를 지고 다음 날 장에 팔러 갈 수박을 따기 위해, 뒷산 뙈기밭으로 올라가시는 아버지를 따라서, 나도 지게를 지고 따라나섰다.

넓은 수박밭에서 잘 익은 수박들을 골라 따 모아 놓은 후,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작은 참외밭을 둘러보려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아무래도 산이 이상하다며 포기를 하시고, 서둘러 따놓은 수박만 가득 짊어지고 어서 가자며 나를 재촉하셨다.

서두르시는 아버지를 따라 바지게에 수박 몇 덩이를 얹고 뙈기밭을 내려와 지게를 바쳐놓고 숨을 돌리고 있는데, 바로 그때 정면 맞은편 수박밭 옆에 있는 골짜기 정상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다.

비록 규모가 크지도 않고, 순식간에 일어난 산사태였지만, 갑자기 산을 울리는 큰 소리와 함께, 건너편 멀지 않는 번개 바위 몰랑(봉우리)으로 불리는 정상에서, 산이 무너져내리는 산사태를 직접 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수박밭 옆에 있는 골짜기까지 밀려 내려온 산사태를 보면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였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나는 무서움보다는 거대한 산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만 하였다.

산이 무너지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궁금했던 나는, 장마가 끝나고 산이 안정된 어느 날. 다른 일로 현장을 둘러보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올라가서, 원인이 무엇이라는 아버지의 설명을 들었다.

그때 사람들은 산사태의 원인을, 아랫마을 부자가 몰랑 근처에 묘지를 조성한 탓이라고, 노한 산신령이 시체를 치우기 위해서, 산사태를 일으켜 묘지를 없애버린 것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를 따라 밀려 내린 토사로 가파른 경사지를 미끄러지며 올라가서,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 본 결과 의미는 다르지만, 묘를 쓴 탓이라는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훗날 성인이 되어, 도참풍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 현장을 다시 가 보았는데, 나름 풍수 전문가의 관점에서 본 결과 역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 탓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었다.

산사태는 산신령이 노해서 벌을 내린 것이 아니고, 어리석은 후손들의 허욕이 자초한 것으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도사의 말을 믿고, 쓰지 말아야 할 자리에 묘를 쓰면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탓이었다.

설명하면, 거금을 주고 모셨다는 사이비 도사가 정한 자리에 묘를 썼는데, 애초에 그 자리라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묘를 쓸 자리도 아니었거니와, 결정적인 것은 사이비 도사가 좋은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몰랑(정상)인 넓은 번개 바위에서 억만년을 흘러내리는 빗물의 흐름을 묘지 방향으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그 빗물이라는 것이, 커다란 기와집 지붕 정도인 번개 바위 반석에서 흘러내리는 것이라, 얼핏 보면 별것도 아닐뿐더러,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 당시 요즈음처럼 며칠을 두고 폭우가 쏟아졌는데, 거대한 암반 위에 형성된 토양에 스며들어 축적된 빗물이 한계점에 이르자, 견디지 못하고 저수지가 터지는 물처럼 한꺼번에 흘러내리면서, 산사태를 일으킨 것이었다.

우연이 어려서 직접 보고 확인했던 이 산사태의 경험이, 내가 성장하여 도참풍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본이 되었고, 특히 인생 마지막의 자리로 정한 여기 허허당(虛虛堂)의 터를 다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과 공을 들인 핵심이었으며….

며칠 전 구례읍 봉산 등산로 경사지가 조금 무너지면서, 흘러내린 흙덩이가 배수로를 막은 것을 보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읍사무소를 찾아가 신고하면서, 반드시 서둘려야 한다고 하였던 이유인데, 공무원들이 믿고 신속하게 대응하여 준 것이 고맙기만 하고,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돌이켜보면, 내가 도참풍수 전문가로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체험했던 경험들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놀라게 하였던 자연재해들을 보면, 예를 들어 근년에 일어났던 재해들의 원인과 특히 이번 장맛비에 일어난 불행한 인명사고들의 원인을 보면, 거의 모든 산사태는 빗물이 시작이고, 대부분은 사람이 만든 인재(人災)라는 사실이다.

지자체마다 회사마다 개인마다 이런저런 이유와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개설하고 있는 산지 도로는 물론, 특히 전국 산지에 난립한 태양광 발전 시설은 (지난해 6월 기준 1만5220개) 두고두고 산사태를 일으키는 시한폭탄인데, 수조 원의 돈을 뿌리며 무차별 허가해 준 문재인 정부 자체가 문제였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의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우리 국민이다.

이미 끝나고 있는 장마가 문제가 아니고, 바람과 태풍의 계절 8월은 다가오고, 해마다 그렇듯 올해에도 어산책떤 태풍이 전국의 산야를 어떻게 휩쓸며 할퀴어 놓을지 아무도 모르는데, 엉뚱한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걱정이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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