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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잊고 살았던 한마디 “개미가 있다”는 참 정겨운 말에 홀려서 쓰는 글

[섬진강칼럼] 잊고 살았던 한마디 “개미가 있다”는 참 정겨운 말에 홀려서 쓰는 글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2.2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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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잔에 말라붙은 아메리카노 커피의 얼룩이 빛바랜 기억 속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사진 설명 : 잔에 말라붙은 아메리카노 커피의 얼룩이 빛바랜 기억 속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늘 그렇듯 오전 한나절을 걷는 운동을 끝내고, 구례읍 오거리 “카페 허밍”에 앉아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12시 20분 강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젊은 여성 몇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 (저마다 혀끝에 느껴지는 맛을) 콕 집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개미가 있다.”는 호평들을 쏟아내며 호들갑이다.

촌부가 건성으로 잘못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를 마시면서 각자가 느끼는 맛에 대하여, 이런저런 품평을 하는 그녀들의 패션과 어투로 보아서는, 지역마다 이름 난 차 맛을 찾아 전국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또는 지리산과 섬진강 어디쯤에서 차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맛에 대하여 전문적인 연구를 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지식을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부연하면, 이유가 무엇이든 카페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 자체가 결례임을 잘 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녀들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관계로, 좋던 싫든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이야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진하지는 않아도 귀에 익은 나긋나긋한 전라도 사투리가 살짝살짝 묻어나는 억양으로 차를 호평하고 있는 “개미가 있다.”는 잊고 살았던 한마디 정겨운 말에 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개미가 있다.”는 그녀들의 말을 들은 순간, 아! 그렇지! 정말 정겹고 참 좋은 말이라는 감탄과 함께 내 마음이 반응해버렸다. 뭐랄까 아주 오래전 잊어버렸던 소중한 것을 다시 찾은 그런 느낌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다섯 가지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오미(五味)의 맛 가운데, “개미가 있다”는 “개미”는 깊은 맛도 아니고 감칠맛도 아닌 진실로 좋은 진미 참맛을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라도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으로, 일반적인 다섯 가지의 맛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 오미를 뛰어 넘는 참맛 진미의 맛으로 여섯 번째 제6의 맛이다.

특히 우리들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이, 마을 사람들과 친인척들이 만든 술과 차는 물론 김치 등등 음식의 맛을 평할 때 호평으로 즐겨 쓰던, 그 정겨운 한마디 “개미가 있다”는 말을, 커피를 마시는 카페에 앉아서, 젊은 여인들로부터 그것도 귀에 익은 전라도 억양의 소리로, 바로 옆에서 듣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반색하며, 눈과 귀가 그녀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잠깐, 예로부터 술과 다과 등등 음식의 맛을 호평하는“개미가 있다”는 말에 대하여, 전라도 사람들만이 가지고 느끼는 특별한 참맛을 의미하는 “개미”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정리된 것이 없어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통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촌부의 관점에서 설명을 하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라도 사람들이 너나없이 즐겨 마시는 술, 잘 익은 동동주를 잔에 따랐을 때 뜨는 삭은 밥알들을 “개미”라고 하고, 이 잘 삭은 밥알들이 동동주를 최고의 술로 완성시켜주면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하는 핵심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술과 차와 음식의 맛을 호평하는 “개미가 있다”는 말은, 동동주를 따른 잔에 잘 삭은 밥알들이 떠 있다는 것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 “개미”가 생활 속에서 진미 정말로 맛있다. 진짜로 맛있다는 호평의 말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촌부의 바람이라면 제6의 맛인 이 “개미”를 전라도 특유의 참맛을 구현하는 문화로 발전시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게재한 사진은 오늘 오전 촌부가 “카페 허밍”에 앉아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마신 아메리카노 잔에 남겨진 커피의 얼룩이다.

그녀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 “개미가 있다”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 정겨운 한마디에 홀려서, 나도 모르게 옛 생각에 빠져, 비워지고 향기마저 사라져버린 빈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커피가 잔에 남긴 얼룩이 마치 알면서도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 보았던 고향산천을 다시 보는 듯하여, 스마트폰에 담아 왔는데, 와서 열어보니 여전히 잊지 못하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희미한 고향산천의 잔영(殘影)만 같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이 쓸쓸하기만 하다.

잠시 주절주절 쓰던 글을 멈추고, 가만히 창문 밖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봄날의 하루해가 짧고 덧없다는 옛 사람들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고,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시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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