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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봄은 어영부영이고, 세월은 어물어물이다

[섬진강칼럼] 봄은 어영부영이고, 세월은 어물어물이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2.13 21:41
  • 수정 2023.02.1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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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하늘에 뜬 한 조각 실체가 없는 저 흰 구름 또한 어영부영이고 어물어물이다
사진 설명 : 하늘에 뜬 한 조각 실체가 없는 저 흰 구름 또한 어영부영이고 어물어물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책상 앞에 앉아서, 창문 밖 봄이 오고 있는 산천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며칠 전 동안거(冬安居)를 끝낸 지리산 천은사 심원암(深源庵) 단하(丹霞)스님의 전화를 받고 나가, 구례읍 오거리 “카페 허밍”에서 차를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묻던 인사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좋은 세월 좋은 계절이 왔다며 호들갑이지만, 꼭 나이 탓이 아니더라도, 산중의 스님이나 촌부인 나나,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고 느끼며 사는, 세월이라는 것이 세월이 아니고, 봄이라는 것 또한 봄이 아니기에, 그 산중에서 근년에 보기드믄 혹한의 엄동설한을 어찌 지내셨느냐는 촌부의 인사에. “어영부영 살았다”면서, 어찌 지냈느냐고 되묻기에, “나야말로 어물어물하다 보니 겨울이 가고 봄이 돼버렸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럼 잘 산거라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아등바등 그래봤자 구차스럽기만 할 뿐, 막상 살아보면 별거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느냐며 웃기에, 그러냐고 그러면 다행이라며 따라 웃었다.

인생, 인생이라는 거, 그거, 글쎄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이제 막 인생이라는 삶을 시작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물론, 아직 인생을 다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는 일이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누구이고 어떤 세월 속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았든, 인생이라는 나름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너온 사람들은, 지난 삼동의 겨울을 어영부영 살았고, 어물어물하다 보니 봄이 돼버렸다는 스님과 촌부가 카페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나눈 인사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본래부터 모든 것은, 찰나의 한순간도 머무름이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쉼 없는 하늘, 저 텅텅 빈 허공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일들이고, 끝없는 변화의 과정일 뿐,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멈추었거나 완성된 사실이 없는 것이, 시간이라는 세월이고, 삶이라는 우리네 인생임을, 일찍이 간파한 옛 사람들이, 안다고 하는 것은 헛된 생각이 일으킨 망상이고, 있다고 하는 것은 허상 헛것을 보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람의 어리석음을 깨우친 그 뜻이 무엇이겠는가?

이뿐이 아니다. 뭐니 뭐다해도 정말 놀라운 것은 “암만 말해줘도 애들은 어려서 모른다. 니들도 살아봐라, 살아서 늙어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며 허허 웃던, 어린 시절 마을 당산나무 아래서 종종 들었던 그때 그 노인들의 이야기들이, 실없는 농담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촌부로 늙은 내가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면서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옛날 마을 당산나무 아래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린 내가 그랬듯이, 이 글을 읽은 어떤 젊은이가, 할 일 없는 늙은이의 실없는 이야기고, 생각의 사치라며 웃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촌부로 늙은 내가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며 느끼는 봄은 어영부영이고, 세월은 어물어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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