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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우리는 돌아가 쉴 곳을 잃어버렸다

[섬진강칼럼] 우리는 돌아가 쉴 곳을 잃어버렸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7.30 00:00
  • 수정 2023.07.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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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3세기 이탈리아 무덤에서 나온 잃어버린 양을 찾아 돌아온 착한 목자다.
사진 설명 : 3세기 이탈리아 무덤에서 나온 잃어버린 양을 찾아 돌아온 착한 목자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게재한 그림, 양치는 목자가 잃어버린 수컷 양 한 마리를 찾아 목에 둘러메고 돌아온 모습을, 텅텅 빈 허공(虛空) 쉼 없는 하늘의 눈으로 보면, 즉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해석하면, 어떤 평이 나올까? 특히 당사자인 예수가 살아서 본다면, 자신이 말한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잘 표현했다고 칭찬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좀 엉뚱한 헛소리 같지만, 이 그림을 반야심경으로 보고 해석하면, 즉 <관자재(觀自在)> 있는 그대로를 보고 깨달은 보살(菩薩)은 이 그림 속 상황을 무엇으로 이해하고 어떤 평을 할까.

사람들 저마다 보고 믿는 바에 따라 해석과 평이 다르겠지만, 원효대사(617~686년)가 지리산에(구례) 전하고, 이를 이은 혜철국사(785~861년)가 섬진강 강물로 전하고 있는 도참풍수(圖讖風水)로, 이 그림의 의미를 풀어보면, 재밌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세리(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관리)와 죄인들이 (예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로 시작하는 누가복음 15장 참된 목자의 비유를 보면….

⓵사람을 분별하여 차별하지 않고 대하는 예수.

⓶양들을 분별하여 차별하지 않고 보살피는 목자(牧者).

⓷금강경 첫머리에 기술된 차제걸이(次第乞已)에서 보듯, 가난한 자와 부자를 분별하여 차별하지 않는 석가세존.

⓸반야심경 첫머리에 언급된 일체 현상을 분별과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깨달은 보살(菩薩)

여기서 말 그대로 분별과 차별은 물론, 편견과 선입견으로 만들어내는, 온갖 상(相)을 버리고 눈여겨볼 것은, 석가세존과 예수, 누가복음의 목자(牧者)와 반야심경의 보살(菩薩), 이들 넷이 전혀 다르지 않을뿐더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돌아온 목자는 분별하지 않고 차별 없이 구하여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므로, 금강경 첫머리에 언급된 세존이 분별과 차별 없이 구하여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앉은 차제걸이(次第乞已) 환지본처(還至本處)와 100% 같은 의미라는 사실이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3세기 이탈리아 무덤에서 발굴된 벽화, (게재한 그림 참조) 잃어버린 양을 찾아 목에 둘러메고 돌아온 목자를, 도참풍수로 풀어보면 결론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마침내 잃어버렸던 양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와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누구나 가지는 삶의 기쁨과 행복함이다. 일상의 표현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기독교 신앙으로 해석하면, 성경 자체가 끊임없이 깨우치고 있는 것이, 일상의 기쁨과 삶의 행복이므로, 곧 분별과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세상인 천국으로 들어,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으로 이해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좌우 두 그루 나무 위에 앉은 두 마리의 새는, 천계(天界) 천상(天上) 하늘에 있다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사를 뜻하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 찬송하는 의미이고, 두 그루 푸른 나무는 지상과 천국에 있는 낙원을 말한다.

암컷과 수컷 두 마리의 양은 일용할 양식을 뜻하고, 목자가 잃어버렸던 한 마리 양으로 표현된, 목에 둘러메고 돌아온 수컷 양의 의미는, 그것이 무엇이든 잃어버린 소중한 것, 또는 자아(自我)를 찾은 것, 또는 진리를 찾았다는 의미다.

건강하고 튼튼한 근육질의 몸매는 신성함을 뜻하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목에 둘러메고 먼 길을 돌아온 힘든 상황임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당당하게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누군가를 향하여 우측 손을 펴 보이며, 뭔가를 말하고 있는 표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마침내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어이 해냈다는 자랑과 기쁨의 희열이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돌아온 목자를 그린 벽화가 의미하는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마치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생에 처음 100점을 받은 아이가 시험지를 들고 뛰어와서 엄마에게 자신이 해냈다고 자랑하고 있는 모습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글쎄 모르긴 해도, 오늘 저녁 조금 전 끝난 프로 바둑 대국에서, 입문 후 여덟 번을 싸워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여자 최강 무적의 최정을 상대로, 아홉 번의 도전 끝에, 흑 불계승으로 완벽하게 승리한 어린 천재 김은지의 마음이 이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론을 지으면, 성경에서 말하는 일상의 기쁨과 삶의 행복이다. 한마디로 배고픈 굶주림도 없고 나고 죽음도 없는 낙원 하느님의 나라 천국으로 든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정리하면, 평상심이다. 비범은 없다. 텅텅 빈 허공 쉼 없는 하늘에서 역사를 이루고 있는 하느님은 평범함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하느님의 나라에는 분별과 차별이 없으니 비범함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평범을 비범으로 몰아 혹세무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하느님은 물론 예수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편 가르기를 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편 가르기를 허용하지도 않았는데, 사악한 사람들이 자신을 특화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예수를 비범이라는 우상으로 만들어, 팔아먹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 이게 세상을 망치는 원인이고, 오늘 우리들의 비극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한 마리 새가 쉴 곳은 나뭇가지 하나면 족한데, 

절간의 승려들과 불교도들은 석가세존을,

교회의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우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돌아가 쉴 곳을 잃어버렸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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