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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지리산 밖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쓰는 글

[섬진강칼럼] 지리산 밖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쓰는 글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8.2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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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비가 개고 있는 지리산의 하늘이다.
사진 설명 : 비가 개고 있는 지리산의 하늘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내가 고향을 떠나 처음 오른 가장 높은 산이 서울 관악산(632.2m)이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마친 이듬해 1969년 설을 쇠러 온 큰형님을 따라 상경했던 이른 봄 어느 날, 잔설이 쌓인 관악산을 흰 고무신을 신고 혼자 올랐고, 두 번째가 80년대 초 검정 고무신을 신고, 전설로 전해오고 있는 나고 죽음이 없는 도(道)를 찾아 헤맸던 지리산이었다.

부연하면, 당시 의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내 나름 걷기운동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고, 효과가 어떤 것인 지를 이때 알았고, 이후 몸에 밴 생활 습관이 되었다.

지금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40년이 지난 일이지만, 언제든 맘 켕기면 검정 고무신을 꿰차고, 깊은 골짜기 숲길을 걸어, 이어지는 길고 긴 준령을 바람을 타고 가는 구름을 따라, 천왕봉에 올라 아침 뜨는 해를 보고 돌아오거나, 산을 헤매다 세석산장에서 각종 산야초를 넣고 끓인 향기 진한 차를 마시고, 달빛을 벗 삼아 돌아오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잠시 내가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옛사람들이 인연이 있는 이들을 위하여 숨겨두었다는 마음을 깨닫는 비결을 찾아서, 지리산을 싸돌아다녔던 이때가, 젊은 날의 낭만이었고, 인생 최고의 호사였다는 생각이다.

40년이 흘러, 날마다 봉산 숲을 거닐며, 하루의 명줄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는 늙은이가 되어서, 젊은 날 전설을 따라 정신없이 싸돌아다녔던, 건너편 지리산 준령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이라는 거 살아보니, 옛 노인들이 탄식했던 말 그대로 부질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허튼짓, 내가 내 생각에 취해서 나 혼자서 춘 한바탕 허튼춤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라는 것은, 나도 모르게 내 옷깃을 스쳐 가버린 가고 없는 바람이었고, 내가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것들은, 모두가 아침 풀 끝에 맺힌 이슬처럼 허망한 것들이었고, 인생 자체가 지리산 숲에서 일어나 준령을 넘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한 조각 뜬구름이었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는, 도연명이나 이태백이나, (둘 다 62세로 사망) 죽는 그 날까지 술을 끊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는데, 난세를 헤매다 술병이 들어 죽은 이태백보다, 벼슬을 내던지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기다리는 가난한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내가 긁어대는 바가지 소리를 장단 삼아, 술을 즐기며 시와 더불어 여생을 보냈던 도연명의 삶이 오늘따라 부럽기만 하다.

참고로 도연명이 지은 “지주(止酒)” 술을 끊겠다는 시(詩)는, 그 내용을 가만히 음미하여 보면, 건강을 염려하여 술을 끊으라는 사랑하는 아내의 성화에, 그러겠다며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일 뿐(ㅎㅎ), 이후 도연명 자신은 물론 후세의 사람들이 전하는 기록에, 도연명이 정말로 술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없거니와, 이유가 무엇이든 정말로 도연명이 술을 끊었다면, 도연명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렇게 사람의 냄새가 풀풀 나는 도연명이 나는 좋다. 

지리산 밖에서 (봉산(鳳山)에서) 맞은편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기억나는 것은 딱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1982년 10월 말 어느 날 갑자기 이른바 돌끼가 발동 재미 삼아 내가 나에게 도전하고 시험하는 차원에서, 아침 일찍 지리산 종주 출발점인 화엄사 일주문에서 천왕봉까지 24시간 왕복 주파를 목표로 도전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세석평원에서 우박과 함께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악천후를 만나 실패했던 일이고….

또 하나는 3년 전 그러니까 2021년 5월 30일 다시는 살아서 오르지 못할 것으로, 포기하고 살았던 지리산을, 그것도 격주로 두 번에 걸쳐 노고단과 반야봉을 내 발로 걸어서 올랐던 일이다.

별 볼 것 없는 인생이지만, 재밌는 것은 40년 전 젊은 날에는,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듯, 노고단과 반야봉을 중심으로 싸돌아다니던 지리산을 얕잡아보고 혼자서 호기를 부리다 실패한 일이었고….

40년 후에는, 오래전 사고 후유증으로 시달리며, 하루를 살아내기에만 급급하여,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지리산 노고단과 반야봉을, 아름다운 봄날 상상하지 못했던 이름다운 인연을 안내하여, 그것도 몸은 봄바람보다 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내 개인의 인생이고 결론이지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다시 또 절감하는 것은, 나라가 어찌 되고 바다가 어찌 된다는 사람들의 다툼과 아우성들은, 말 그대로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소란이고, 내 마음 밖의 소동일 뿐….

지금 나에게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지리산 밖 봉산에서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이다. 아름다운 그 봄날에 올라갔던 지리산 반야봉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이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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