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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신혼여행을 마치고 온 딸 부부에게 전한 구덩이 이야기

[섬진강칼럼] 신혼여행을 마치고 온 딸 부부에게 전한 구덩이 이야기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10.0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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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봉성산(鳳城山) 허허당에서 바라본 구례읍의 아침 일출이다.
사진 설명 : 봉성산(鳳城山) 허허당에서 바라본 구례읍의 아침 일출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스위스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딸 부부가 귀국해서 다녀갔다. 결혼식에 신혼여행에 그리고 사돈댁 인사치레를 끝내고 오는 딸에게 눈치 볼 것 없다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의례적인 인사치레는 차차로 살면서 하면 되는 일이니 편하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기어이 집안 일가친척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 관례를 마치고 온 신혼부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딸과 사위이기 이전에, 이제 막 결혼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혼부부에게 특별하게 할 말도 없었다.

평상시 딸과의 대화가 이심전심이었고, 말을 전할 때는 짧은 문답이었는데, 그런 내 버릇이 사위라고 하여 달라질 리 없는 것이라, 사위나 나나 피차 낯설고 어색함에 몇 마디 의례적인 덕담과 재미없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음의 질문을 하였다.

남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과, 자신이 판 구덩이에 빠진 사람, 둘 가운데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이것을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으로 이야기하면, 두 사람 가운데 운이 다한 사람은 누구이고, 실낱같은 운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다.

재미 삼아 다짜고짜 던지는 질문도, 정해놓은 살고 죽는 답도,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서 조금은 애매하지만, 사람들은 거의 백이면 백 남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살길이 없는 운이 다한 사람이고, 자기가 판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판 구덩이니 어떻게든 사는 길 또한 알 것이라며, 그래서 살 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답은 남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자기가 판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운이 다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판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판 구덩이니, 어떻게든 사는 길을 알 거라고, 살 운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짐승을 잡기 위해 구덩이 즉 함정을 파 본 사람들은 안다. 특히 인생살이에서 자기가 판 함정 구덩이에 자기가 빠져 망해 본 사람들은, 이 믿음이 얼마나 허망하고 잘못된 착각인지를 잘 안다. 뿐만이 아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 암담한 절망과 뼈저린 아픔에 진저리를 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판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자기 이외엔 구덩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없고, 혹 구덩이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자기가 판 구덩이가 아니므로, 무엇이 빠져 걸렸는지 관심도 없을뿐더러, 아차 하면 자신이 빠지는 위험이 있기에, 아무도 가지 않으므로, 구덩이에서 구조되어 사는 기회가 없고, 말 그대로 운이 다한 것이다.

반면 남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기회도 있고 운도 있다. 바로 구덩이를 파 놓은 사람이 때때로 구덩이에 무엇이 빠졌는지를 확인하러 오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아온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너나 나나 우리네 인생 자체가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일이고 그 속에서 죽는 일이다.

문제는 인생의 고락이 스스로 파는 그 구덩이에 빠져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파는 구덩이가 자기가 빠지는 구덩이 함정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나, 알면서도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삶이 고통이지만, 자신이 파는 구덩이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그 구덩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삶이 즐거울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사랑이든 결혼이든 일이든 사업이든 한 사람이 살면서 스스로 파는 구덩이가 몇 개이고 남이 파 놓은 구덩이를 만나는 일들이 숱할 것인데, 여기에 이제 막 결혼한 젊은 부부 두 사람이 함께 파는 구덩이는 또 몇 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두 사람도 모르는 일이다.

아비의 자격으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두 사람에게 한마디 일러 준 것은, 사랑이라는 또는 가족이라는 또는 사업이라는 또는 사회적 관계라는 기타 등등 어떠한 미명(명분)으로 스스로 이런저런 수많은 구덩이를 파는 것이 사람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고 일생이지만,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 파는 구덩이에 빠지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문을 여닫는 이치 즉 아파트 현관문을 여닫는 이치를 알고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앞으로 부부로 살아가는 두 사람이 함께 또는 따로 파는 구덩이는 맑은 물이 솟는 우물이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살고 이웃들이 함께 사는 생명의 샘을 파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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