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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딸이 결혼하는 것이니 결혼식은 딸의 일이다

[섬진강칼럼] 딸이 결혼하는 것이니 결혼식은 딸의 일이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9.2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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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쉼 없는 하늘처럼 현상에 머무르는 바 없이, 끊임없이 진리를 향하여 나가라는, 혜철국사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거북이다.
사진 설명 : 쉼 없는 하늘처럼 현상에 머무르는 바 없이, 끊임없이 진리를 향하여 나가라는, 혜철국사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거북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80년대 초 나름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나 혼자 조용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혼인 신고로 결혼식을 대신하는 문화인데, 이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결혼식 문화다. (당시 신분과 혼수가 원인이 된 결혼 파탄과 비극이 비일비재했었다.)

이러한 캠페인의 차원에서 보면, 지금 정부가 해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실패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결혼 장려 정책을 성공시키려면, 집 장만과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앞서, 잘못된 결혼식 문화부터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청춘남녀들이 결혼을 회피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지만, 결혼보다 결혼식이 더 힘들고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연애하는 남녀들의 희망 사항이며 당연한 결론인 결혼을 하기도 전에, 청춘들의 기를 죽이며 결혼을 포기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의 하나가 잘못된 결혼식 문화라는 말이다. (딸이 결혼을 미루며 주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번 주말에 하는 딸의 결혼식 준비과정을 보면서 실감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능성만으로 본다면, 모르긴 해도 지금 50세 이상 모두 죽어 세대가 바뀌어야, 뿌리 깊은 잘못된 경조사 문화가 (축의금 부의금) 시대와 사람들에게 맞는 문화로 정립될 거라는 것이다.

둘째는 젊은이들의 결혼식에 부모들의 영향이 여전하고,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혼식이 아닌 부모들이 원하는 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그동안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살았던 내 착각이다. 불필요한 낭비와 과시의 결혼식을 없애고, 혼인 신고로 대신하는 등 결혼식 간소화를 주장해온 나 자신이 정작 내 딸의 결혼식에는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이 닥친 지금에서야 깨닫고 묵묵히 동조하며 따라가고 있는 내 자신이다.

설명하면, 흔히 부모와 자식을 하늘이 정한 천륜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진실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생명을 창조한 근원인 신(神)의 관점에서 즉 애초에 하늘이 정하는 의도에서 보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람이 정한 후천적인 설정이지만,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이미 하늘이 정한 독립된 존재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개똥철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매사 딸을 대함에 있어, 내 딸이기 전에, 항상 독립된 존재 인격으로 보고 그렇게 교육하였고, 딸과 나는 그런 관계 속에서 편하게 살아왔기에, 나에게 딸의 결혼식은 나의 일이기 전에 딸 개인의 일이다. 

정확히 정리하면 아버지인 내 일이 아니고 결혼하는 딸 개인의 일이다. 결혼하는 것도 딸이고, 그 결혼식을 어떻게 하냐는 것도, 온전히 딸이 결정하는 것이니, 100% 딸 개인의 인생이고 일이다.

뿐만이 아니다. 내 주의 주장과는 달리 결혼하는 당사자 둘이서 원하는 결혼식이 있고, 그 가족들이 원하는 나름의 결혼식이 있음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처음 결혼을 결정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딸에게, 사람들의 상상을 한 방에 깨버리고, 전격적인 혼인 신고로 결혼식을 대신한 조혜연 프로바둑기사의 이야기를 하면서, 당장은 아니겠지만 유명 인사 조혜연을 시작으로 결혼식 문화가 바뀔 거라고, 조혜연보다 더 멋진 결혼식을 생각해 보라고 조언하면서, 결혼은 너의 일이고 상대가 있는 것이니, 상의해서 너희들 편한 대로 하라고, 그 말만 하고 모든 결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자신들이 결혼식을 통해서 주변에 전하고 싶은 인사를 중심으로, 아버지의 체면을 살리고, 상대의 부모가 원하는 안을 수용하여 낸 방안이, 결혼식은 직장 근처에서 하되, 하객들은 자신들의 지인들과 사돈댁 위주로 하고, 나는 단 한 장의 청첩장도 돌리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

청첩장이 인쇄되어 나왔을 때, 축의금을 받는 계좌번호가 없어 이유를 물어보니, 아버지가 주장하는 사회적 폐단과 사람의 관계를 불쾌하게 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축의금) 살면서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하면서, 그래서 꼭 초대하고 싶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와서 축하해 줄 사람들을 위주로 기획하여, 현장에서 마음을 받는 축의금 함으로 한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건 잘했다며 웃었다.

끝으로 엊그제 게재한 “아버지가 결혼하는 딸에게 쓰는 감사의 글”을 읽고, 결혼식장의 주소와 축의금을 보내겠다며 계좌번호를 보내 달라는 전화와 메시지가 쉼 없이 오고 있는데, 사양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분들이 있어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기회를 빌려 그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딸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지켜주었듯이, 나 또한 딸이 선택한 결혼식을 즉 자존심을 지켜줄 생각이다. 그래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몸치장을 하고 있다.

결혼식을 혼인 신고로 간소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나의 일이고, 딸이 결혼하는 것은 딸의 일이니, 딸은 딸이 원하는 결혼식을 하고, 아버지인 나는 내가 주장하는 바를 할 뿐이다.

문(門)이 없는 門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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