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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실패를 배워 기회로 만드는 그런 나라와 국민이 되기를 바란다

[섬진강칼럼] 실패를 배워 기회로 만드는 그런 나라와 국민이 되기를 바란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8.06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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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당국의 준비 부족으로, 역사상 최악의 대회로 실패해버린 부끄러운 새만금 잼버리대회 전경이다.
사진 설명 : 당국의 준비 부족으로, 역사상 최악의 대회로 실패해버린 부끄러운 새만금 잼버리대회 전경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어쩌다 이 지경이 돼버렸는가! 부끄러운 망신의 현장으로, 전 세계에 실시간 중계되고 있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마다 뉴스로 보여주고 있는 현장 진행 상황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으로, 그저 망연자실일 뿐인데, 영국과 미국 등 대표단들이 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제된 설명은 있었지만 “젊은이들에게 잼버리는 독특한 경험이자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경험이다. 참여 중단은 그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며 대회 잔류를 결정한 스웨덴 대표단의 발표문은 잼버리 정신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것으로 역시 역시라는 감탄을 절로 나게 한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엉망진창인 새만금 잼버리 현장을 직접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것) 이것 또한 독특한 경험이고 체험의 기회라는 스웨덴 대표단의 발표는,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진실로 교육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교육의 지표를 잃어버린 우리 대한민국의 학부모들과 교육계가 받들어야 할 금과옥조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스웨덴 대표단의 발표가 반가운 것은, 지금까지 딸에게 해명도 못 하고, 언젠가는 아버지가 옳았음을 아는 날이 있겠지 하고, 마음에 접어두고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에 관한 옳고 그름에 대하여, 정확하게 해명을 해줬기 때문이다.

다음은 오래전 내가 구례와 인근 곡성에서 직접 체험했던 두 가지 아픈 이야기다.

먼저 구례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1990년 1월 어느 날로 생각되는 일이다. 인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때 구례읍에 사는 가난한 집 여학생으로부터 중학교에 입학하면 부지런히 공부해서 반장이 되고 싶다며,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관하여, 질문을 받고 도움을 준 일이 있었다.

아이를 보면, 자신의 의지로 부지런히 공부해서 학급 반장이 될 수는 있어도, 집이 가난한 탓으로 반장의 감투가 큰 짐이 되어, 되레 학업을 망칠 게 뻔해, 말리고 싶은데 말릴 재간이 없었다.

고민 끝에 이것 또한 언젠가는 겪어내야 할 일이기에, 그렇다면 일찍 겪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너는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공부에만 전념했으면 싶다. 공부가 우선이지 반장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일러주고,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너의 자존심을 지켜내라고, 그 말만 하였다.

그 후 중학생이 된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반장이 되었는데, 집이 가난한 탓에 학교의 담임과 반 학부모들 모임에서 요구하는 현금을 비롯한 이런저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엄마로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고, 반장직을 자진사퇴하고 울었는데, 지금도 그때 나무 뒤에 숨어 쪼그리고 앉아 울던 그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33년이 지난 지금 대략 46세의 중년이 되었을 것인데, 어디서 무엇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지, 만일 자식을 낳았다면,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음은 나와 딸의 이야기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 곡성중앙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던 딸이 새 학기에 학급 회장이라는 감투를 들고 왔는데, 내 처지에서는 한숨이 나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몇 년 전 (99년 5월)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며 제대로 운신도 못 하는 환자의 몸이라,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을뿐더러, 촌지 추방 등 교육개혁에 관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예측했던 대로 학부모 임원으로부터, 딸이 반 회장이 되었으니, 담임과 반을 위해서 얼마의 돈을 내라는 요구를 받고, 내 처지에 (당시 내가 인지한 금액은 30만 원이었다) 그럴 돈도 없고 혹 있다고 해도 줄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날 이후, 딸은 툭하면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으로부터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이런저런 이유로, 머리카락을 잡히는 수모를 당하다 반 회장 자격을 박탈당하고, 1학기 내내 화장실 청소만 하였다. (통상 일주일 간격으로 청소 당번을 정하는데, 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아이를 위해 참고 견뎠던 것은, 90년대 초 구례읍에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에게 조언했던 그 마음 그대로를 딸에게도 적용하여, 아비가 집에서도 시키지 못하는 화장실 청소를, 학교에서 담임이 강제로 시켜주고 있으니, 달갑지는 않지만 앞으로 인생을 사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켜만 보았었고, 어린 딸은 묵묵히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잘 견뎌냈다.

이미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지구촌 최악의 대회로 실패해버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에서, 이것마저도 “젊은이들에게는 독특한 경험이자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경험이다. 참여 중단은 그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며 대회 잔류를 결정한 스웨덴 대표단의 교육철학을 국가와 국민이 깨닫는다면….

특히 지금 당장 발등의 불이 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기본 정신으로 삼는다면, 실패한 새만금 잼버리는, 실패를 배워 기회로 만들어 국가와 국민을 새롭게 하여 나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그런 나라와 국민이 되기를 바란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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