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헌법광장-룩셈부르크 문학기행김윤자평화로운 세상일 때는단단한 옷을 벗어도 다치지 않고광장의 문을 활짝 열어도무서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고그래서 이제는 한갓 주차장이 되어버렸는가한적한 마당 한가운데황금 여신상 천사가 첨탑 위에서하늘과 땅을 수호하고 있어도아직 잠들지 못하는세계대전 전몰자, 그 위령탑 아래에는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산 자와산 자의 영혼을 뜨겁게 마시는 죽은 자두 개의 동산이눈물겨운 상면으로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태우는데철사 줄로 아름답게 형태를 동여맨가로수 울타리가 모진 세월을 이긴 나이테로강인한 헌법의 눈
오줌싸개 동상-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쥘리앙, 네가 왜그 높은 벽면에 서서발가벗은 몸으로 오줌을 싸는지궁전 화단에 오줌을 싸고 지나가서경고성으로 그곳에너를 세웠다는 말도혹은,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아이를 찾기 위해너를 세웠다는 말도, 내게는 들리지 않아네 나이 사백 여 살벨기에 최고령의 시민이라고각국의 대통령이 방문할 때마다지어다 입힌 옷이 육백 벌이라고그래도 너는 여전히 알몸부끄럽지 않은, 변함없는육십 센티의 작고 다부진 청동 조각상내 눈에 너는 벨기에다.작지만 큰 나라, 유럽의 별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꽃봉오리다.
그랑 플라스-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빅토르 위고가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격찬한 말은, 그랑 플라스에 대한브뤼셀에 대한, 벨기에에 대한 정확한 보상이다.좁은 골목을 한동안 걸어 다다른 곳에서벨기에의 심장을 만났다.작은 나라, 작은 도심에자로 잰 듯한 직사각형의 거대한 광장과광장을 빈틈없이 에워싼 거대한 중세건물의 눈부심찬란한 빛으로 솟은 시청사의 첨탑과상인들의 삶을 조각한 길드 하우스실바람 하나 스미지 않은 듯벽면에 붙은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아름답다는 차원을 넘어 소슬한 비경이다.일요일 아침이면 꽃시장이 되기도 하고정치의 집
유럽의 집시를 만나다-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결코 남루하지 않은 남자언어로 말하지 않고눈으로,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집시의 낭만이 뚝뚝 흐르는 옷깃에서생의 자유를 공유하는 턱수염에서경계선을 넘어선 아름다움이다.파리 노드역에서 같은 의자에 앉아있던 그 남자가벨기에 브뤼셀 기차역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그가 더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집을 이고 다니는 사람보퉁이 몇 개를 양손에 들고, 등에 지고멈추어 서서 잠시 보다가계면쩍은 걸음으로 급히 달아난다.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울안을 몰래 들여다보다가 들켜버린 시선그의 젖은 우수가사람들 곁에
플란다스의 개-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개는 영리했다.주인을 따라 나무 사이사이 돌고 도는고도의 놀이를 하고 있다.주인 여자의 손짓 하나 하나에 바람처럼 움직인다.내가 그 여자에게로 다가가개와의 만남을 요청했을 때더 먼저 눈치 챈 개는동양에서 온 이방인을따스한 눈빛과 온화한 입술로 맞아 주었다.살빛 복슬복슬 소담스런 털을 두른덩치 큰 개는내게 있어 플란다스의 개다.두 아이를 기르며, 눈물 섞어 읽어 주었던동화, 플란다스의 개그 플란다스가 벨기에의 한 지명이라는 것도이곳에 와서 알았고벨기에 왕궁 앞 시민공원에서그 충성스런 개를 뜨거운
돈키호테 동상-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오늘 벨기에에서 만난 돈키호테는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해학적 웃음을 뿌리고 다니던 가벼움은 증발되고건장한 말 위에 앉아심오한 표정으로 브뤼셀 시청사를 가리키며손을 뻗쳐 들고 있다.작가 세르반테스는 스페인 사람인데돈키호테가 어찌하여이국의 도심에 서 있는 걸까지배의 흔적이다.스페인 합스부르크가 지배의 흔적으로 남긴 유물이다.이곳의 역사적 배경이야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강점기의 내 조국 어느 아픈 한마디를 보는 것 같아오늘 만난 돈키호테는 무거운 존재다.유명세만큼이나 큰 덩치로 언덕에 서서외객
탈리스 고속열차-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붉은 의자가 유럽의 향수로이방인을 보듬어 안는다.국경선을 소리 없이 넘나드는 탈리스는지금, 프랑스 노드역에서 벨기에 브뤼셀역으로살갑게 달리고 있다.낙농업 국가의 살찐 들녘에서목가적 그리움이 뒹구는 풀의 노래를 들으며산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나는 꿈을 꾸듯 날아간다.칸마다 목적지가 달라, 칸을 바꾸어 타면어느 역에서 분리될 때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조차산뜻한 낭만이다.내 조국의 케이티엑스 고속열차가탈리스의 속살을 본떴다는 대목은더욱 깊은 애정이다. 사랑이다.
파리 노드역-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기차가 머무는 영역과 사람이 머무는 영역의 경계선이 없습니다.한쪽 문으로는 사람이 들어오고맞은 편 문으로는 기차가 들어옵니다.기차와 사람은같은 지붕 아래에서 마주 보고 있습니다.기차 레일이 대합실 깊숙이 들어와타는 곳도 대합실, 내리는 곳도 대합실입니다.탈리스 고속열차도 들어오고통근 완행열차도 들어오고모든 기차가 사람들이 앉은 의자 가까이 다가옵니다.기차도 많고, 사람도 많은데정년 요란한 것은 사람의 움직임일 뿐기차는 참으로 얌전합니다.먼지도 없이, 소음도 없이, 경적도 없이사르르 들어왔다가, 사
세느강 유람선-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세느강 유람선에서시선에 담기는 모든 것들은사랑이다. 축복이다.지나가는 저녁 햇살 한줌에도거룩한 빛을 발하며파리의 아버지로 우뚝 선에펠탑이 그렇고물살이 갈라지는 여울목섬으로 둥지 튼 예쁜 땅에중세의 꽃으로 피어오른노틀담 성당이 그렇고세느강을 사모하던 물의 신이한 구비, 두 구비, 너울너울 흐르다가바람을 불러 일어서서곳곳에 세운 다리들이 그렇다.세느강은, 정녕 세느강이다.파리 사람들의 눈에서, 언어에서표정에서, 옷자락에서예술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보이는 것도세느강이 키운 붉은 유산이다.
루브르 박물관-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하얀 날개의 비상으로 공간을 빛내고나와 보시어요, 하면 줄줄이 달려 나올 것 같은역사의 실존 인물들이유년의 아이로, 혁명용사로 화포 안에 살고 있다.모나리자가 거기 있다.실제의 모나리자가 거기 있다.살아서 웃는 살빛 미소가 군중을 흡입한다.격이 높은 여인은 따로 구분되어하늘과 땅이 보이는 곳에어찌 보면 고독한 문밖 외벽에홀로이 살고 있다.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는데그녀 곁에서 경호원으로 선 감시원 아저씨는불독의 눈으로 경계선을 지키고 있다.대영 박물관이 조각의 바다라면루
달팽이 요리-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너는 행복하다.땅을 핥으며 기어 다니던 존재에서집을 이고 다니는 괴이한 속성에서벗어난 중후한 환생음식 문화의 역사 속에족보를 묻고한 나라의 전통 요리로 사랑 받는 너는 행복하다.튼튼한 각질 속에서에스카르고 소스에 싸여향기롭게 구워진 네 속살근사한 쟁반에 귀한 신분으로 나온 너를입으로 먹지 않고, 맛으로 먹지 않고가슴으로, 뇌로 먹으련다.세계인의 손에 들려 사랑 받는너는 행복하다.
개선문-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청청한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나폴레옹을 만났다.그날의 말발굽 소리는 아니어도샹젤리제 거리에서 울리는 우렁찬 함성을 들으며산 자와 죽은 자의 장엄한 상면이다.찬란한 화살은 날아갔어도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향불이아직도 시들지 않는 헌화가영웅을 향한 애가로 꽃불을 이루고그날의 병사들이 벽면 가득 목숨을 걸어두고장군을 위한 충절로 푸른 눈 총총 뜨니결코 외롭지 않은 영웅이다.전쟁 승리기념으로 초석을 세웠지만나폴레옹 삼세에 의해 완공되었을 때는이미 나폴레옹은 떠나고그의 유해만이 이 문을 통과하였다 하니공으로
에펠탑-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생애 최대의 걸작품을 만났는데내 짧은 필설로다 읊지 못함이 애석할 만큼너는 나의 오감과 전신을철의 향기로 물들이고 있다.위로, 아래로, 대각선으로삼각으로, 사각으로 이어진 쇳조각들이쇠못 하나에 생명을 걸고눈물 고운 모습으로 버티어 서서파리를 밝히고 있지만어찌 프랑스 파리만을 위한 존재일까인류의 위대한 소산우주를 빛내는 명품너로 인하여 세계인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으니너는 시대의 기린아프랑스 파리는 세계인의 도시라는 말에펠탑 앞에 서면어느 누구 하나 그 말에 거부할 자 없다.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프랑스
세느강-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끈질기게 파리를 붙들고 있다.작은 어촌 마을이던 파리를위대한 도시로 탄생시킨 어머니의 젖줄이다.한줄기로 뭉쳐 흐르는 곳이라 해도한강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좁은 폭이고노틀담 성당이 있는섬을 끼고 갈라지는 곳에서는허름한 개울에 지나지 않는데세느강 어느 마디에서 큰 힘이 분무하는 걸까그 해답은파리 시가지를 몇 바퀴 돌면서 얻었다.한 구비 돌아와도 그 자리에또 한 구비 돌아와도 그 자리에파리에 들어선 초입에서부터 만난 세느강은잠시 떨어질지언정결코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퐁레프 다리, 콩코드 다리아름다운 다
런던 히드로 공항-영국 문학기행김윤자영국의 봄은 빨리 움트고 있었다.파리로 가기 위해 런던 도심에서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릴 때사월 언덕의 잔디가 파랗다.네 개의 청사가 있는 웅장한 공항활주로가 잘 보이는 창가에서저녁 식사로 먹는 김밥보다더 고소한 비행기의 질주를 보다가저녁 햇살과 구름과 비행기가 그려내는멋진 풍경 속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그것은 이국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뜨거운 향수다.유럽 최서단, 이곳을 떠난 태양은지금 내 조국 한반도를 향해 날아가리라어느 비행기 하나쯤은동방의 나라로 날아가리라새근새근 잠들어
영국 신사-영국 문학기행김윤자백년 역사의 버버리 코트를 입은 자가영국 신사인 줄 알았는데나의 사고를 뒤집은 것은런던 가이드로부터다.맞아주며 사는 남자가 영국 신사라는 말에한국 남자여, 여자를 업고 살아라는 말에칠십 대 할아버지는 화를 냈고오십 대 남자는 외면했고삼십 대 여인은 화사한 긍정이다.집 뺏기고, 아이 뺏기고거리로 쫓겨나는 것보다매를 맞을지라도 참고 사는 남자가영국 신사다.비 오는 날, 멍든 얼굴에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남자가영국 신사다.더 큰 기둥을 지키기 위해작은 아픔을 수용한다는 보랏빛 문화지만나는 반만 담아 가리라
대영 박물관-영국 문학기행김윤자그리스 아테네 신전을 닮은그 환상의 문에 들어서는 순간세계인이 하나되는 거룩한 영역이다.모두들 이어폰을 귀에 끼고자국어로 해설하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역사의 물결을 따라 흘러 들어간다.앗시리아관을 지나 이집트관을 거치면서가장 사랑 받는 유물은이집트의 왕 람세스 이세, 가슴팍이 뚫렸어도그는 영원한 남성 힘의 상징물이다.위대한 것은 유물만은 아니다.뼈의 수집품 전시를 시작으로박물관을 탄생시킨 외과의사 한스 슬로안 경과흩어져있던 유물을 한곳에 모아놓은 손길그리고 무료입장이라는 사실은 모두 숨은 보물이다
런던 시청사-영국 문학기행김윤자왜 저렇게 비스듬히 서 있는 걸까템즈강을 바라보며하늘 향해 나래 펴는 거대한 새 한 마리푸른 빛 웅장한 광채가시리도록 눈부신데무엇이 모자라 기울어져 있는가땅을 떠나지 못하는 애련비스러진 바람이 몰아칠 때사회를 올곧게 세워야 하는, 저 아픈 갈증이십 퍼센트의 감시 카메라가런던에 설치되어 있으니도심의 그늘을 지우느라 휘어진 허리라고눈 한번 질끈 감으면 우두둑 일어설 것 같은데아, 검은 대리석 계란 하나광장에 또 비스듬히 떨어져 있어사람들 일으키려 두 손으로 떠밀어 보지만까닥하지 않는 탄탄한 결정체비가
런던 브리지-영국 문학기행김윤자돌아서 지지 않아서비가 얼굴을 스치는 줄도 모르고비가 옷깃을 적시는 줄도 모르고템즈강 난간에 기대어나는 한동안 우람한 아이와 마주했다.전쟁이 스쳐가지 않은 평온한 강 위에서무너질 이유가 없었으니백 살이 넘는 빅토리아식 사내는크고 작은 고딕풍의 첨탑으로 연륜을 드러내며 늠름한 거야차가 지나가도, 사람이 지나가도상판을 열고 배가 지나가도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공중의 생명체지하철이 지나갈 때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불편을 겪어도시민들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을 뿐영국 런던의 상징물 타워 브리지, 너에게는한마디
영국 국회의사당김윤자내 마음이나, 펜 끝으로상원 또는 하원 그 어느 한쪽을낮거나 높게 그렸다면그건 아닙니다.다시 투명한 생각과 정직한 눈으로바르게 그리겠습니다.왼쪽 상원은 빨간 첨탑으로오른쪽 하원은 빅벤 시계로템즈강 다리도 상원 곁은 빨간색이고하원 곁은 푸른색이고뜨락의 휴식처도 빨간색과 푸른색으로분명 경계선은 그어져 있지만그런데 아닙니다.차가운 두뇌의 저울로 달아보면결코 어느 한쪽 기울지 않는 아름다운 견제템즈강변에 깊게 뿌리내린 두 전당완전히 뭉친 하나로칠백 년이 넘는 시간을 지키며진정한 민주주의의 빛을 분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