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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아버지가 딸에게 전한 밤하늘 별들의 이야기

[섬진강칼럼] 아버지가 딸에게 전한 밤하늘 별들의 이야기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1.3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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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집 앞 섬진강 강변의 길이다. 눈앞에 보이는 길은 하나이지만, 이어지는 길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나가고, 천 갈래 만 갈래의 길이 이 하나의 길이라는 것, 이것이 실상의 법이다.
사진은 집 앞 섬진강 강변의 길이다. 눈앞에 보이는 길은 하나이지만, 이어지는 길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나가고, 천 갈래 만 갈래의 길이 이 하나의 길이라는 것, 이것이 실상의 법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지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지식으로 헤아리면 지식일 뿐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생각으로 헤아리면 생각일 뿐

물어서 아는 것은
물어서 아는 것일 뿐

들어서 아는 것은
들어서 아는 것일 뿐

진실로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
진실로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오래 전 일이다. 아버지와 같은 하늘에서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딸에게, 그건 너의 착각이라고, 절대로 같은 하늘이 아니고, 같은 세상도 아니라고, 전혀 다른 하늘이고 세상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그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듯) 의아해 하는 딸에게, 지금은 네가 아직은 젊어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지만, 살다보면 언제인가 네 스스로 “아! 이래서 아버지가 그랬었구나!” 하고 아는 날이 있을 것이니, 오늘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잊지는 말라고 말해주었다

왜냐 하면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현상은,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세상을 살고는 있지만, 인간이라는 생명 자체가 이 우주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행성과 같은 것으로, 말인즉슨 밤하늘의 별이라는 건 같지만, 실상은 그 별이 수천억 개의 행성들이 모여 있는 은하이고, 그 행성마다는 존재의 자체가 다르듯, 아버지와 딸인 너와나의 관계 역시 그런 것이라고 말해준 일이 있었다.

인간은 저마다 제 각각의 꿈속에서 자신만의 꿈을 꾸다 그 꿈을 깨고 가는 존재이므로,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는 있지만, 실상은 내가 바라보며 생각하는 하늘이 다르고, 딸이 바라보며 꿈꾸는 하늘이 다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르고, 딸에게 작용하는 시간이 다르고, 나의 공간이 다르고, 딸의 공간이 다르기에, 딸과 아버지인 나는 전혀 다른 별개의 독립된 존재인 것이다.

부연하면, 딸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사고의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아픈 아버지 걱정으로 아버지에게 매이지 말고, 그리고 자신이 일으키는 생각에도 매이지 말고,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는 것이 있다면, 마음껏 자유롭게 꿈꾸며 살라는 조언이었다.

지난해 가을, 광고회사에 다니는 딸로부터, 나름 의미가 있는 새로운 상품에 대한 광고기획을 하다가 벽에 부딪혔다는 전화를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언젠가 아버지가 기억하라고 했던 말, 너와 나는 아버지와 딸이지만, 전혀 다른 별개의 행성이라고 했던 말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기억하고 있으며, 이제는 알 것 같다고, 자신 있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랬다. 아버지와 딸이지만, 전혀 다른 세상이고, 전혀 다른 꿈을 꾸는 존재 생명체라고 했던 말, 별개의 행성이라고 했던 아버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를 한다면, 지금 네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도 알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딸의 기획안은 성공하였다.

어설프게 딸 자랑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간과 시간과 존재 즉 사람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과 존재의 의미, 즉 사람들은 이 셋을 같은 순간 동시에 존재하는 같은 존재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상은 공간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존재가 다르고, 각각의 것들이 각각 다르게 작동하는 다른 것임을 모른다. 실상을 모르고 나타난 현상을 보고 착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좀 더 쉽게 말해서, 허공이라는 ①공간 속에서, 그리고 시간이라는 ②시간 속에서 그리고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존재 즉 사람이라는 “나”라는 존재와 “나”라는 사람이 쉼 없이 일으키고 있는 ③생각이라는 것, 이 3가지의 실체가 무엇이고, 만약 무엇이라 한다면, 변함이 없는 불변의 존재이며, 진실로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다고 한다면 안다고 설명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허공(하늘)이라는 공간과 시간과 그리고 사람이 일으키는 생각 속에서 다시 또 일으키는 수많은 생각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것 미움이라는 것, 또는 정치라는 것, 또는 종교 즉 (불교 기독교 미신 천신숭배 등등) 믿음이라는 것, 또는 신이라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무엇이며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며, 존재한다고 하면 불변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 3가지가 있다고 한다면 또는 없다고 한다면, ①공간과 ②시간과 ③생각이 있어서 내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있음으로 ①공간이 있고 ②시간이 있고 ③생각이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대대로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인생은 한바탕 꾸는 꿈속의 꿈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촌부와, 잠시 후 이 글을 게재하면, 이 글을 읽고 있을 사람들은, 과연 꿈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존재들일까? 아니면 꿈을 깬 존재들일까?

글을 쓰면서 다시 또 절감하는 것은, 역시 옛 사람들이 극히 경계한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으로 헤아리고,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과 글로 설명을 하려니 어렵기만 하다. 

진실로 쉼 없는 하늘처럼, 한 순간도 현상에 머무르는 바 없이, 끊임없이 자신을 개혁하고, 세상을 개혁하여 나가라는, 혜철국사의 가르침인 무설지설(無說之說) 무법지법(無法之法)이 명답이라는 생각이다.

끝으로 게재한 사진은 집 앞 섬진강 강변의 길이다. 눈앞에 보이는 길은 하나이지만, 이어지는 길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나가고, 천 갈래 만 갈래의 길이 이 하나의 길이라는 것, 이것이 실상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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