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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글을 배운 사람으로 구실을 다하고 있는 철학자 최진석을 생각하면서

[섬진강칼럼] 글을 배운 사람으로 구실을 다하고 있는 철학자 최진석을 생각하면서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1.24 00:20
  • 수정 2022.01.2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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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작금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최악으로, 가장 더럽고 지저분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정치판을 일신하겠다며, 스스로 더러움 가운데로 걸어들어 간 철학자 최진석을 보면 구한말 나라가 망해가던 그때 섬진강 유역에서 활동했던 최익현 황현 전우 세 사람이 생각난다.

끊임없는 당파싸움과 온갖 부정부패로, 왕실과 조정이 통째로 썩어서, 나라가 망하고 죄 없는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가던 구한말 당시, 전국에서 수많은 선비들과 이름 없는 백성들이, 망국을 한탄하면서 나름의 역할들을 다하였는데, 전체적으로 분류를 하면 3가지 유형이 있다.

다음은 나라가 망하던 당시 여기 섬진강유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세 사람을 통해서 본 3가지 유형이다.

첫째는, 지리산 구례의 산천을 사랑하는 산골 서생(書生)으로 살다, 절명시(絶命詩)를 쓰고 순절(殉節)한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년~1910년 8월) 선생이다.

둘째는, 조정에 나가 벼슬살이를 하던 관료출신으로, 의병(義兵)을 일으켜 저항하다 순국(殉國)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선생이다.

셋째는,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즉 철학자이며 후학들을 양성하는 스승으로, 분함을 참지 못하는 식자들에게, 함부로 경거망동하여 가벼이 죽기보다는, 목숨을 아끼고 인재들을 아껴서, 그들로 하여금 국민들을 일깨우는 학문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게 하였고, 결과론적으로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한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년) 선생이다.

훗날의 사람들은 구한말 당시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논할 때, 이 3가지 유형의 사람 가운데, 면암 최익현 선생을 최고의 선비이며 충신으로 받들고, 그 다음은 서생 매천 황현 선생을 선비로 추켜세우며 받들 뿐, 간재 전우 선생은 나라가 위급함을 보고서도 회피한 비겁자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대단히 잘못된 왜곡이다.)

오랜 세월 섬진강유역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구한 촌부의 관점에서, 세 사람을 충신과 애국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바탕에서 냉정하게 재평가를 한다면,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황현 선생은 유학을 신봉하는 서생이었을 뿐이고, 의병장 최익현 선생은 망국의 황제 고종의 신하이며 충신이었을 뿐이지만, 진실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애국자는 전우 선생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황현 선생이 밝힌 죽어야 하는 이유와 최익현 선생이 쓴 격문을 보고, 일제강점기 당시 국권회복을 바라는 지식인들과 민중들이 받들었던 전우 선생의 역할과 사상을 분석하여 보면, 황현 선생은 글을 배운 유학자의 직분에 충실했고, 최익현 선생은 고종의 신하로 최선을 다했었지만, 전우 선생은 유학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며,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간 군주 고종의 신하가 아니고, 망한 나라를 되찾아 백성이 살아갈 방도를 생각하고 실천한 스승이며 애국자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나 지금이나, 분에 못 이겨서 자살하거나, 나가 싸워서 죽는 일은 쉬워도, 진실로 굴욕을 참으며 견디는 일은 아무나 쉽게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인데, 온갖 굴욕을 참아내면서, 국권회복을 위한 근본이며 바탕인, 나라의 인재들을 아끼고 보호하는 한편으로, 교육을 통한 후진 양성에 일생을 바친, 간재 전우 선생이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애국자였고, 시대와 미래를 정확하게 꿰뚫어, 국가와 국민을 바르게 인도한 스승이었다는 것이 촌부의 결론이다.

다시 말해서, 순절한 황현 선생과 순국한 최익현 선생은 망한 나라의 지식인으로 해야 할 역할을 하고, 망한 나라와 함께 사라져버렸지만, 전우 선생은 망한 나라의 철학자답게, 백성들과 함께 살아남아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내는 스승이 되었으니,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계책으로 따지면, 가장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었으며, 의미를 따지면 훌륭하였다는 것이다.

결론은 산골 서생 황현 선생은 산골 서생 황현답게 행동하였고,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한 관료출신인 최익현 선생은 조정의 벼슬살이를 한 최익현답게 행동하였고,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전우 선생은, 최고의 철학자 전우답게 행동하였으니, 실천하는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땅히 해야 할 구실을 다한 훌륭한 지식인들이었다.

다음의 시는 전남 구례읍에 소재한 구례중앙초등학교 교정에 세워놓은 유학자 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絶命詩) 한 구절이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기나긴 역사를 돌이켜보니
글을 배운 인간으로 (사람)구실을 다하기가
이처럼 어려운 줄은 몰랐구나.

글을 배운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사람다운 사람의 구실을 다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줄을 몰랐다는 이 절규의 의미는, 끊임없는 당파싸움과 온갖 부정부패로 나라가 망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리산 구례 산골 서생이, 스스로 자신을 죽여서 그 책임을 다하려는 것으로, 설명을 하면, 망국을 지켜보고 있는 전라도 산골 구례의 서생이 죽음으로 망국을 일깨워, 글을 배운 유학자의 구실을 다한 것이다.

나라가 망한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산골 서생이 할 수 있는 나라를 위한 행동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항한 것이며, 동시에 부패하고 무능한 왕실과 무지한 백성들을 일깨운 것인데, 이는 그렇게 하여 스스로 자각 인식하고 있는, 글을 배운 사람의 구실을 다한 것이니,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이 세상을 일깨운 선비이며 스승이며 나라의 충신으로 받드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2022년 1월의 대한민국과 우리들이다. 역대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최악의 막장 정치로 외통수에 걸려버린 국민을 위해서, 철학자 최진석이 굴욕을 참으며 나선 것은, 이 땅의 정치가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정작 부끄러워하면서 반성을 해야 할 정치인들은 미동도 없다는 것이다.

구례의 서생 매천 황현 선생이 말한 그대로, 철학자 최진석은 글을 배운 사람으로, 그 구실을 다하기 위해 굴욕을 참으며 나섰는데, 정치를 배웠다는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구실을 다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이 2022년 1월 대한민국과 우리들이 당면한 비극이다.

끝으로 이제는 이 땅의 정치를 일신하여 나갈 정치인이 된 철학자 최진석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글을 배운 사람으로 구실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구례의 선비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년~1910년 8월) 선생이 사랑하였고, 생의 마지막을 보낸 천하제일 매화낙지(梅花落地)의 명당 혈(穴) 매천(梅泉)과 구례중앙초등학교 교정에 세워놓은 시비(詩碑)를 여기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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