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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철학자 최진석이 시작한 철학이 있는 새로운 정치, 철학이 있는 나라를 위하여

[섬진강칼럼] 철학자 최진석이 시작한 철학이 있는 새로운 정치, 철학이 있는 나라를 위하여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2.02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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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길을 걷는 일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촌부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려서 체험했던 일이다.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960년대 말까지 집 앞에 흐르는 개울에 나가서, 손발을 씻는 것은 물론, 아침이면 세수도 하고 부드럽고 고운 모래로 양치질을 대신하며 살았었다.

이때 체험한 재밌는 경험은, 물이 맑으면 세수를 하고, 물이 더러우면 흙 묻은 발을 씻었고, 어제 또는 조금 전에 누군가 빨래를 했거나, 더러운 걸레를 빨았다하여도, 개의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산 아래 마을이다 보니, 산골짜기에서 늘 맑은 물이 흘러와서 흘러가기 때문에, 누군가 더러운 걸레를 빨았다 하여도, 더러운 물이 머물러있지 않고, 바로 그 순간 더러운 걸레를 빨았던 물은 곧바로 흘러가버리고, 언제나 새로운 맑은 물이 그 자리를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거리낌을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 다리 밑에 자리한 빨래터 돌들은, 마을 아주머니들이 온갖 더러운 것들을 빨아도 개의치 않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빨래터 돌들은 언제나 새롭게 흘러오는 깨끗한 물로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었고, 언제나 쉼 없이 흐르는 물은 흘러와서 흘러갈 뿐, 한 순간도 빨래터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 물을 이용하였다.

다음의 글은, 지난 설 연휴가 시작된 1월31일 촌부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우리시대의 철학자 최진석이 SNS 담벼락에 게재한 글 가운데 끝 단락을 인용한 것이다.

“더 나은 길을 걷는 일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철학자 최진석이 자신에게 던지는 자문(自問)인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인지, 어떤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지만, 분명한 것은 철학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 글을 읽은 사람들 모두 어떤 답을 쓰느냐는 것이다.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나선 안철수를 돕기 위해 선대위원장이라는 직분으로 현실정치에 입문한지 보름 남짓 보내고 있는 철학자 최진석이, 세상에 던지는 숙제 또는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내는 숙제라 생각하고 답안지를 작성한다면, 과연 어떤 답들이 나올지, 할 수만 있다면 작성한 답안지들을 보고 싶어진다.

철학자가 던진 질문은 하나이지만, 여기에 응하는 해답들은 하나가 아니기에 철학자가 던진 질문에 세상과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로 어떤 문장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 저마다 생각하고 서술하는 답이 다를 것이고, 다른 그 답 자체가 철학자의 고민을 해소하거나, 또는 철학자가 원하는 답은 아닐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틀린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사람들 저마다 가지는 다름의 문제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촌부 개인의 판단이고 가치관에서 비롯하는 결론이지만, 철학자가 부재하는 우리시대에, 촌부가 존경하는 유일한 철학자가 최진석 교수이고, 철학자 최진석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지금 우리들이 목격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개판이 돼버린 정치판에 뛰어들어 고민하고 있는 철학자 최진석이야말로, 항상 현실에서 궁리하고 실상을 직시하며, 세상과 함께하는 참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안타까움이지만, 산에 가면 일자무식 땔나무꾼을 자기보다 훌륭한 철학자 스승이라며 존중할 줄을 알고, 강에 가면 고기를 잡는 어부를 훌륭한 철학자로 받들며 배울 줄을 아는 그런 사람 철학자 최진석이, 어려운 결단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지 보름 남짓, 충분하다면 충분하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더 나은 길을 걷는 일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들의 정치판이 그리고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과 수준이 그만큼 엉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히 촌부가 철학자 최진석의 질문에 한마디 답을 한다면, 지금 바로 (스스로 믿는 바를 향하여)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다.

문제는 지금 바로 그 마음을 내어 한 걸음을 내딛어 나가야 할 당사자가 누구냐는 것이며, 사람이 이 땅에 생긴 이래 스스로 어리석은 자를 구하는 일은, 석가도 예수도 공자도 맹자도 노자도 장자도, 뿐만이 아니고 그 어떤 용하다는 무당도 신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정리를 하면 철학자 최진석은 촌부가 어려서 체험했던 쉼 없이 흘러내리는 집 앞  맑은 개울물이 분명하지만, 문제는 그 맑은 개울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 마을 빨래터에 앉아있는 안철수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더 나은 길을 걷는 일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시대 유일무이한 최고의 철학자 최진석이 던진 이 질문을, 안철수가 깨달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안철수가 인생마저 실패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라도 깨달아 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끝으로 게재한 사진은 구례읍 오거리 폐업한 어느 빈 가게 쓰레기 속에 있는 스쿠터다. 저 스쿠터를 안철수라 한다면 안철수가 이해를 할런지 모르겠다. 거듭 안철수가 철학자의 가르침은 고사하고, 저 스쿠터라도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기를, 철학자 최진석이 시작한 철학이 있는 새로운 정치, 철학이 있는 나라를 위하여, 촌부는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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