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입춘의 봄바람이 부는 오후, 가슴에 묻어둔 절절한 사연은 없었지만, 언제고 한 번은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할 기억 속에 있는 그녀를 찾아서, 이리저리 가라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몇 번인가 길을 헛갈리며 갔었다.
가서 보니, 그럴 것이라고 대충은 짐작을 했었지만, 막상 마스크를 벗은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내 생각이고 내 마음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아팠다. 참 많이 아팠다.
별고 없느냐고, 어디 아픈 것은 아니냐고, 한마디 인사를 가장하여 묻는 내 말에, 괜찮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고, 진하진 않지만 화장으로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빛은, 나이를 탓하고 지난겨울 불어댄 거친 바람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황량하고 어둡기만 하였다.
사는 재미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모습이 마치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한 옛 노래 황성옛터 같다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을 얼른 되삼키며, 다들 떠나고 없으니 사는 재미가 없다고,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한 땅을 보면, 옛 노래 황성옛터처럼 사는 일들이 쓸쓸하기만 하다고, 종잡을 수 없는 말로 얼버무리며 내 속을 감췄다.
부디 건강하고 잘 살기를 바란다며, 내민 손을 잡아 몇 번 두드려주고 돌아오는데, 도로변의 보이는 산들이 쓸쓸하기만 하였고, 집에 와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지금도, 안타까운 모습이 어른거리고, 마음이 이리도 심란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한동안 내 마음이 아플 것 같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정말로 옛 노래 황성옛터를 듣고 있는 내 마음을 그녀가 알리는 없지만, 입춘의 봄밤이 참 쓸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