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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어리석은 자는 무등산에 올라가서도 무등을 모른다

[섬진강칼럼] 어리석은 자는 무등산에 올라가서도 무등을 모른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2.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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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화순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의 모습
사진 설명 : 화순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의 모습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호남 벌에 우뚝 선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無等山)을 두고, 언제부터 무등산이라고 하였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지명(地名)의 연기법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뜻을 풀어보면, 불교의 깨달음을 상징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즉, 무등등(無等等) 무유등등(無有等等), 부처님의 증득한 법신의 세계는 평등하므로 등(等)이라 한다는 의미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깨달음의 세계 또는 깨달음의 세상에는 일체의 분별도 없고 차별도 없다. 즉 부처님의 세계는 일체의 모든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는 의미, 또는 서방정토의 상징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무등산에 성을 쌓아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불렀다는 기록만 전할 뿐, 가사(歌辭)의 내용이 실전된 “무등산곡(無等山曲)”이라는 백제의 가요(歌謠)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마한(馬韓)과 백제시대에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신령한 신(神)의 위치에 있었던 전남 곡성군 오산면에 소재한 (심청전이 유래한) 성덕산(聖德山) 관음사(觀音寺)에서, 성덕산을 동방의 정유리국(淨瑠璃國)으로 보고, 무등산을 도달하여 나갈 서방정토(西方淨土)로 보았던 ,상징적 의미에서 비롯되어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의 시는 촌부가 지난 가을 시조시인 김경란 선생이 게재한 “무등산 기행”에 댓글로 달았던 것인데, 읽어보면 촌부가 말하고자 하는 무등산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무등산(無等山 더할 나위 없는 산)=

더할 나위 없는 시를 짓는 시인(詩人)이
더할 나위 없는 산 무등(無等)에 올라
더할 나위 없는 가을 경치를 바라보다
더할 나위 없는 무등의 시선(詩仙)이 되었다.

한마디로 무등산(無等山)의 무등(無等)은 더할 나위가 없다. 모든 것들을 버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육신과 영혼까지 자유로움으로, 즉 내가 누구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돈도 명예도 사랑도 심지어는 깨달았다는 그 생각마저도, 초월하여버린 세상을 말함이다,

이것을 인간세상으로 표현하면, 무등산에 성을 쌓아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불렀다는 백제의 가요 무등산곡(無等山曲)의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부연하면, 기록에 의하면 서기 259년~307년 서진 혜황제 당시, 처음으로 불교의 핵심사상인 법화사상이 섬진강으로 들어와서, 성출산(聖出山)과 성덕산(聖德山)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되었음으로, 무등산(無等山) 무등(無等)이라는 지명(地名)은 백제가 남하하기 전 마한(馬韓) 당시 즉, 최소한 성덕산 관음사 창건 이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덧붙이면, 성출(聖出)은 관세음보살이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출현하였고, 성덕(聖德)은 관세음보살이 널리 자비를 베풀어 세상을 구하였다는 역사의 기록이니, 무등(無等)의 지명은 법화경의 핵심사상이며, 반드시 구현해야 할 궁극의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무등산의 의미 즉 대대로 무등산이 전하고 있는 정신문화를 오늘의 시각으로 풀어보면, 인간 개인이 저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고유한 가치인 자유와 존엄한 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되며, 사람과 사람은 다 같이 분별과 차별이 없는 평등하고 공정한 상생의 관계로 이어져 즐겁고 행복한 세상 즉, 인간이 도달하여 가고 싶은 세상을 말함이다.

그러나 오늘의 무등산은 어떠한가? 정말로 슬프고 통탄할 일은, 툭하면 자유와 민주를 말하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주장하면서, 분별과 차별이 없는 법의 정의를 지키고 실현하는 투사라는, 광주의 식자들과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어느 누구도, 야만적인 살인과 편법과 탈법과 불법에 자항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광주다.

사계절 어느 때든, 광주에 가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투사가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여야 대선후보들을, 편을 갈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오늘의 광주를 보면, 사람들 모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더하려는 이기심에 골몰할 뿐, 아무도 부끄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아무도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모두가 권력을 가진 주인에게 맹종하는 노비들일 뿐이다.

진정으로 광주시민들에게 평등과 불평등은 무엇이며,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광주의 기준은 무엇이냐를 따지고, 지금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사람들의 작태를 보면, 광주와 광주의 시민들은 자신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무등산의 의미 또는 무등산의 무서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가고 없어도, 산천은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고 있다는 말이다.

글쎄 우리들이 간절히 바라는 그 세월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별과 차별이 없는 무등산이 모든 것들을 말없이 다 품어내듯, 광주와 광주의 시민들이 무등산의 정신을 구현하여, 살아있는 무등산이 되었을 때,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스스로 이루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성지가 될 것이며, 그래서 광주와 광주시민들은 반드시 무등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촌부의 생각이다.

진실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신이 무엇이며, 우리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신을 지켜서, 더할 나위가 없는 인간세상을 구현할 것이냐는 문제의 해법은 오직 하나, 다 같이 무등산에 올라 무등이 되는 것뿐이다.

끝으로 지난 연말 도움을 청하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 측에, 진정한 정치의 의미는 무등산에 있으니, 가서 무등산의 의미를 깨닫고 배우면 된다고, 그러면 광주의 모든 것을 알고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들의 해법을 안다고, 그리고 깜짝 쇼가 아닌 마음의 진심 하나만을 챙겨들고, 새해맞이 1월1일 새벽에 무등산에 올라가서, 대통령이 되면 무등산의 정신을 구현하겠다는 한마디만 맹세로 남겨두고, 조용히 하산하기를 권했었는데, 윤석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세한 신상을 밝힐 수는 없지만, 지난 1월 초에 전직 당대표를 지낸 정치인이 찾아와 윤석열을 도울 방법을 묻기에, 여러 이야기 끝에 다시 설날 새벽에 무등산에 올라가서, 윤석열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를 권했었는데......

우연인지 아니면 윤석열 측에서 정치판의 애늙은이 이준석에게 노리개로 던져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뉴스를 보니 당사자인 대선후보 윤석열이 오르지 않고, 설날 아침 이준석이 무등산에 올라가서, 자신의 자랑거리로 만들어버렸는데, 무등산에 올라가서도 무등을 모르는데, 백 번을 올라간들 뭐할 것인가? 이는 진실로 애써 일러준 무등산의 가치와 정신을 더럽혀버린 것으로,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옛 사람 조광조가 이르기를, 얻기 어려운 것은 시기요, 놓치기 쉬운 것은 기회라 하였는데, 스스로 국민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여 보이며, 천심과 민심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던, 시기도 잃고 기회도 놓쳐버린 윤석열이 안타깝기만 하다. 

결론을 지으면, 지난 가을부터 사람을 통하여 손오공의 여의봉(如意棒)을 보내주고, 용과 호랑이를 추천해도, 윤석열 자체가 푸닥거리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줄 알뿐, 여의봉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를 모르고, 용과 호랑이 자체를 모른다는 것, 이것이 윤석열의 한계이고 어리석음이며,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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