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 왕궁-헝가리 문학기행김윤자한때는 조선의 세종대왕격인마챠시 왕이헝가리 문화의 꽃을 피웠을 궁전인데세월도 떠나고, 사람도 떠나고궁전 뜨락에는 외인의 숨결만 한가득마주보며 흐르는도나우 강의 고운 물살만이 평화로울 뿐수많은 외침으로 허물어진 왕궁은도서관과 박물관으로 바뀌고전쟁으로 지아비가 죽어감에어미의 성을 따르던 것이완벽한 모계사회로 굳어져버린 나라아직도 놓지 못하는 역사의 심지를앙칼진 발톱으로 움켜쥐고정문 높은 솟대에 머물러 비상을 꿈꾸는전설의 새, 툴루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드를 낳았다는설화를 빌어, 독수리 같은 위용으로
마챠시 교회-헝가리 문학기행김윤자어부의 요새로 가는 길목을 밝히는평화로운 아버지의 집대나무처럼 그렇게 높이 솟아올라도부다페스트 왕궁의 언덕에시린 바람이 불 때가슴, 혹은 등줄기가 시리진 않았는지찬 눈이 내릴 때하늘을 이고 선 모자이크 꽃밭 지붕그 어느 한조각 아프진 않았는지높낮이가 다른 좌우의벨러 탑과 마챠시 탑확연히 드러나는 불균형의 겨리를어떻게 견디어 왔는지부조화의 미를 흔들림 없이 예찬하는그래서 더욱 더 눈부신 아름다움을외객에게 선사하는 거룩한 빛이곳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요제프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날헝가리 대관 미사곡을 지
어부의 요새-헝가리 문학기행김윤자그 옛날도나우 강을 더듬던어부의 손이저토록 고왔을까도나우 강의 뽀얀 물안개로 빚은하얀 집, 금방이라도물의 요정이 고개를 내밀 것 같은일곱 개의 작은 성채마챠시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뜨락에 가득 고이면성스러운 걸음으로 절벽에 누운 부다 언덕을 내려갔겠지가장 넓고 깊은 저 물목에서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보다긴 호흡으로 흐르는 도나우 강의인내와 끈기를 배웠을 거야그래서 적의 공격도 막아내고한데 뭉쳐 조합도 결성하고고깔모자 지붕 푸른 나뭇가지 사이아름다운 전설이 흐르고 있어
겔레르트 언덕-헝가리 문학기행김윤자이곳에서이탈리아의 수도사 겔레르트는산 채로 와인 통에 담겨저 아래 도나우 강으로 던져졌단 말인가헝가리 최초의 국왕 이슈트반이아들 임레 왕자의 교육을 위해가정교사로 데려온 그가헝가리에 그리스도교를 전도한 것이그리도 큰 죄였던가얕으막한 바위산 중턱에고요히 일어선 순교자 겔레르트그의 동상 오른손엔 십자가를왼손엔 성경책을 들고 슬픔을 다독인다.결국 겔레르트의 죽음으로왕자의 교육도 실패했다 하니그날의 아픈 이야기들이도나우 강변 소슬한 언덕을 휘감고 있다.
도나우 강-헝가리 문학기행김윤자다뉴브 강의 잔물결로이미 오래 전 가슴 속에 흘러온 강을그 강변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두 눈에 담으며, 나는 지금각인된 그리움을 꺼내고 있다.나의 어깨에 보랏빛 날개를 달아준 강요한 스트라우스의 달빛 선율을 타고 흐르는환상의 그 강가에서꿈과 우정과 희망을 다지곤 했지지금껏 풋풋한 향내로내 안에 살던 강이독일에서 탄생하여 유럽 여덟 나라를 돌며풍요와 낭만을 선사하고흑해에 가서야 생을 마감한다는 위대함과헝가리 전역을 남북으로 흐르며부다페스트를 부다와 페스트로 나누는 장엄함을이곳에 와서야 알았으니뇌리 속
슬로베니아의 여인김윤자보헤미안의 집시 향기가아직도 가시지 않은그리움 가득한 푸른 눈와인을 좋아하고초콜릿은 남편보다 더 좋아하고아비는 이탈리아인, 어미는 오스트리아인그래서 나는 혼혈족이라고당당히 밝히는 여인, 다마르우리의 여행 안내자로 나온 그녀가우리보다 더 기쁜 걸음으로시가지를 활보하고 있다.한국의 읍소재지만한 소도시가로수도 없고, 햇살은 따갑고시인의 박물관 관람 외에는그리 흥미롭지 않은 골목들유로화가 통용되지 않아우리에겐 고단한 장터가목가적 삶을 엮어온 그녀에게는휘황한 도심, 낭만의 거리인 것을그녀는 지금 우리보다 더 큰 행복
포스토이냐 동굴-슬로베니아 문학기행김윤자누군가 나에게슬로베니아가 어떤 나라더냐고 묻는다면거기 포스토이냐 동굴이 있더라고 대답하리라이제 겨우 눈뜬 아기 나라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는 가냘픈 땅에추위와 어둠을 뚫고 일어선지하의 완벽한 세계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인간의 장엄한 겸손을 보았노라고 말하리라이십일 킬로, 세계에서 두 번째 긴 굴속을기차가 달려 동굴 석벽 사이를 지날 때석순은 고요히 머리칼 하나 건드리지 않는데알아서 스스로 목을 낮추는 사람들굴 가운데 한 시간을 걸으며 거대한 심벌 석주를 본 것보다생명을 부여받아
블레드 호수-슬로베니아 문학기행김윤자언제부터이곳에 살았는지나이가 몇 살인지묻지 않으마알프스 산의 정기를 품고 내려온빙하의 선녀가블레드 성의 따슨 품에 안겨에메랄드 빛 행복을노래하는 거라고그러다가성을 닮은 우람한 아이섬 하나 낳아오롯이 키워 놓고그 섬을 향해 노 젓는 손길마다그 섬을 찾아가는 낯선 걸음마다축복의 종소리를 선사하도록 가르치는슬로베니아의 어머니가 된 거라고그렇게 바라보면 될까
블레드 성-슬로베니아 문학기행김윤자호수를 사랑한 영혼이절벽을 타고 솟아 오른 거야가슴을 흔드는 애련한 물빛에떠나지도, 돌아서지도 못하고바람처럼 아슬히 마주 서서호수를 지키는 거라고고깔 지붕 붉은 눈망울이말하고 있어한쪽 트인 산길이 아무리 넓다 해도네가 보이지 않아호수를 딛고 서야곧은 등줄기 한자락 보이는 것을뜨락에 천 육백 년 된 우물을 품은 줄도 이곳에서 철기 문화를 꽃 피웠다는 것도보헤미아의 방어 성벽이었다는 것도단단한 기운이 너를 휘돌아까맣게 모른 거야호수에 대한 사랑이 깊어점점 용감해지는 너를
블레드 성, 펜의 불꽃-제71차 국제펜 세계문인대회김윤자아름다운 것은블레드 호수의 물빛만은 아니었다.타오르는 것은알프스 산맥 설봉의 눈빛만은 아니었다.동유럽 베이비 컨트리 슬로베니아그 밤, 환영 만찬식장 블레드 성에는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날아온 걸음들이하나의 띠로 동그랗게 맥을 이어고운 무늬로, 고운 빛깔로펜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언어와 인종의 경계선을 지우고너와 나의 벽을 허물고눈과 눈, 가슴과 가슴으로 흐르는문우의 뜨거운 정이에메랄드 호수의 물빛처럼산정의 빙하 생명처럼올곧은 심지로 영롱하게 솟구쳤다.성문에 걸어둔 횃불이 어
하늘에서 걷는 시베리아김윤자걷기도 전 날으려는날개의 욕망을나는 이미저 시베리아 동토에서 잠재웠지북극점 빙벽이 보드라운 솜털로 보일 때까지 걸어야인동의 꽃은 피어난다고칼날 선 눈발 위 고행 길을행복한 걸음으로 걷던나의 유토피아, 하얀 평원설원이어도 좋을 광활한 땅에푸른 생명이 넘실대고 있으니강렬한 나의 눈빛은구름밭 아래로 내리꽂히고지구의 살갗을 싱싱하게 물들인툰드라 지대잠시 지나가는 여름의 초지에서문학의 발톱을 향기롭게 다듬으며지금 나는 비행기의 몸을 빌어하늘에서 걷고 있다.
북경 왕부정 쇼핑가-중국 문학기행김윤자어린아이의 머리를 깎아주는거리의 이발사와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여인에게서 북경 도심의 부드러움을 보다가중한버스가 왕부전 쇼핑가에 들어섰을 때대로변, 눈앞에서 눈 끝까지한 가지 모양의 홍등이 덩실 매달린포장마차의 장엄한 행렬에서단단한 질서와 푸른 욕망을 보았다. 한국의 명동이라는데명동의 시가지를 한 줄로 이어 다림질한 저 가지런한 풍경낮에는 빈 마차로 있다가 밤이면 달팽이 요리에서 온갖 것 다 판다고 동일한 끈으로 묶은 사각의 틀에서개별화되어 구르는 구슬의 노래다.왕부정 대형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북경 자금성-중국 문학기행김윤자천안문을 들어서 직선으로만 걸어도정전인 태화전을 시작으로 북쪽 끝 신무문까지 열개의 궁전을 만나고부속 궁의 방이 팔천 칠백 육십 개 황제가 출생하여 방마다 하루씩만 자도 이십칠 세가 된다는 거대한 궁궐 중국 십대 명물이며 혹자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본다는 붉은 기와지붕 물결이 바다처럼 넘실거린다. 나무가 성장하면 권위를 제압한다 하여 한그루의 나무도 심지 않았고자객의 침입이 두려워 화장실도 짓지 않았고잠잘 때 영혼이 달아날까악덕 서태후의 침실은 손바닥만 하고 황궁의 안위를 위해 모질게도 동여맨 흔
북경 천안문 광장-중국 문학기행김윤자천안문 광장 앞 큰 도로에신호등이 없다 하면 믿으시겠습니까아침 국기 게양식에 참석하려는 자국민들이먼 곳 사람은 하루를 유숙하면서까지모택동 기념관과 건물 한 블록을꺾어 돌아 줄 섰다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이십대의 푸른 나이에 공산당에 입당하여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모택동은 아직도 중국의 어린이와 어른에게 추앙받는절대적 국부임을 생생히 보았습니다.좌로 중화인민공화국만세우로 세계인민대단결만세, 탄탄한 구호를 메고 천안문 중앙에 고정된 영웅바닥에는 오십만 장의 돌판이 깔려있고한 장에 둘씩 서서 백만
서태후 별장 이화원-중국 문학기행김윤자곤명호수와 만수산에게 묻고 싶다그날의 슬픈 역사를 아느냐고권력과 부에 눈먼 악덕 황후 서태후는 저 연못에 남편 함풍황제를 죽이려고 배에서 빠뜨렸다는데죄인처럼 눈감은 물 위십칠공 다리와 대리석 배는 그날을 보았을까남편과 아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내고 조카 광서황제도 이곳 사각 뜨락에 십년을 가두어 죽이고, 움켜쥔 권좌역대 황제의 행궁으로 쓰던 팔백 년 역사의 이화원에 피바람이 분다. 청조 말기 자신의 은거 장소로 나라의 명줄을 조이며 군비로 넓힌 개인 별장장수를 비는 태호석 돌비와 권력을 지
명 13릉 지하무덤-중국 문학기행김윤자명나라 이백 여년 13황제의 무덤 중 만력황제 지하무덤 정릉은만리장성 팔달령 산기슭 평원에 복숭아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슬픈 낙원이다. 사후에도 모든 것을 지배하겠다는 상징 동물석상이 즐비하게 서 있지만유일하게 두 왕비와 합장한 대리석 찬란한 궁전무덤이지만 사십 팔년 긴 재위기간 동안기록할 아무런 행적이 없어 무자 흰 비석이 부끄러운 혼으로 떨고 있다. 정치보다 주색으로 세월을 보냈고 생시에 자신의 묘를 위해 국비를 탕진함에 앞뒤 양옆, 한 글자 흔적 없는 비석 소슬한 그림자만 커다랗다. 무덤
북경 야광 가로수 -중국 문학기행김윤자만리장성 팔달령 산기슭평원에 있는 명 13릉 지하무덤 들어가는 길 입구 양쪽 가로수 나무에게서 비정한 자국을 본다.가로등을 세우지 않고 양쪽 가로수 플라타나스 나무발등에서 다리목 일 미터 정도까지 하얀 야광 물질을 발라 놓았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야광빛을 발하여 거리를 밝히라는 것인데 전기를 아끼려는 이유라 하면 나무의 희생이 너무 크다. 숨 쉬지 못하는 피부의 고통을 어찌할 것인가. 사람을 위한 것이라 해도 거리풍경의 낭만을 위한 것이라 해도 나무의 울음이 먼저 들린다.
장가계 황룡동굴 -중국 문학기행김윤자산 전체가 굴이라는 사실은굴을 나와 좁다란 농로를 걸을 때덩치 큰 거먹 황소를 바라보면서였다.장가계 마을 들녘은 허름한데등 뒤 오롯이 솟은 산, 땅 아래 세계어둠의 혼은 빛보다 예리한 두뇌로생명의 장을 연출하고억겁의 시간을 소슬한 고독으로 다스려온지하의 우주는 완벽했다.하늘빛 걸음으로 들어온 지상의 손님을스무 명씩 태운 보트가암벽 사이 깊고 긴 호수를 달려 심장부로 데려갈 때, 이미 굴의 한계는 넘었고이천 개의 돌계단을 걸어 오르는 길목마다질서와 법칙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아름다운 순응으로삶과
장가계 무릉원 보봉호수-중국 문학기행김윤자반 자연 반 인공의 순종과 타협이평화로운 저 진초록 물빛국가에서 해방되어 홍콩인이 관리한다는데불러 모은 것은 물보다 깊은 사랑이다.오십 명을 태운 유람선이협곡의 호수 길을 지날 때절벽에 매어놓은 뱃전에토가족 처녀가 신선인 듯 까치발로 서서원어민의 사랑법으로객을 맞아들이는 애련한 곡조를 시작으로맞은 편 선착장에 준비된 민속춤과다시 유람선으로 산모롱이 돌아 나올 때쪽배에 홀로 사는 총각의 배웅곳곳에 동질적인 연민이 끈을 잇고 있다.물속에 발을 담근 신부바위와고독한 섬 가운데 홀로 선 소나무가
장가계 무릉원 금편계곡-중국 문학기행김윤자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계곡만은 아니었다.너른 마당에 거대한 돌비가 이방인을 먼저 품는다.張家界 1995년 강택민장가계 마을의 원조임을 알리는사람의 향기가 계곡을 휘감아 돈다.바위산이 놓아버린 물이 이곳에 와서야 배꽃 같은 폭포도 만들고종달새 숨결로 청아하다.짙은 산 그리메가낮은 곳까지 버선발로 마중 나옴에도연명의 족적을 따라걷는 듯, 나는 듯 황홀한 걸음이고혹의 숲길로 접어들었을 때물을 베고 누운 무릉도원 금편계곡에서생명의 돌, 핏줄이 흐르는 돌 복숭아 빛 여문 돌멩이가 붉은 적멸로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