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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에서 보는 자기 존재의 이유

[문학칼럼]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에서 보는 자기 존재의 이유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2.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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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쓰임 받느냐에 따라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여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도리스 레싱(1919~2013)은 현대의 사상, 제도, 관습 · 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 정신으로 파헤쳐 문명의 부조리성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성 짙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영국의 여성 소설가로 200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현대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 단편의 배경은 전통적인 사회질서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1960년대 전후의 유럽사회다. 네 아이의 부모인 수잔과 매슈 부부, 수전은 광고회사에서 일을 했고 매슈는 런던에서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다. 둘 다 인정받는 유능한 직장인으로 정원이 딸린 크고 하얀 집에서 4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부부, 그러던 중 수잔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게 되는데 수잔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아내 역할, 네 아이의 엄마 역할, 커다란 집의 안주인 역할, 가정부 소피의 고용주 역할까지 그녀야 수행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수잔은 마치 감옥살이를 하는 듯 속박과 억압을 느끼게 된다. 결국 수잔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매슈는 수잔을 위해 다락방을 꾸며 ‘엄마의 방’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어느새 그 방은 아이들과 가정부가 드나드는 또 하나의 거실이 되어 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수잔은 기차를 타고 나가 시내의 허름한 호텔 19호실을 빌려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매슈는 그런 그녀의 수상한 행적에 불륜을 의심하고 사립탐정을 고용해 그녀가 머무는 호텔방을 알아내고 수잔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그냥 불륜이라고 인정해버린다. 매슈는 자신 역시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심지어 넷이서 더블데이트를 하자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수잔은 더 이상 호텔에서 조차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요즘으로 따지면 번 아웃으로 인한 우울증 아닐까 추정한다. 한참 사회생활을 하던 커리어 우먼이 아이들의 육아와 안주인의 역할로 집 안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고 방황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잔이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역할의 부담감과 압박이다.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 살림, 등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고충이다.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삶을 희생하며 엄마로서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건만 그것 역시도 결국 가정부가 할 일이었고 커리어 여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경제적으로도 남편에게 의지해야 하는 볼품없는 처지가 되었다. 박탈감이다. 죽어라 가정을 위해 희생하였지만 수잔은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은 어떻게 쓰임 받느냐에 따라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연인에게나 꼭 필요한 존재로 여김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 직장 여성이든 전업주부든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어떤 존재일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중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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