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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이태준 단편 '아무일도 없소'에서 보는 지금 우리에게 진짜 아무 일도 없나

[문학칼럼] 이태준 단편 '아무일도 없소'에서 보는 지금 우리에게 진짜 아무 일도 없나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2.0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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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벌써부터 흔들리지는 않는지...
함께 사는 세상은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아는 것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상허 이태준 선생은 1904년 강원도 철원 출생으로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문장’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1946년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바 있고 1952년 사상검토를 당하고 1956년 숙청당했다. 작가의 초기 작품인 이 소설은 원래 ‘불도 나지 안었소, 도적도 나지 안었소, 아무 일도 없소’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작품이었으나 후에 단행본인 ‘아무 일도 없소’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M 잡지사의 편집회의에서 눈에 번쩍 뜨이는 ‘에로’ 제목 하나를 넣으면 몇 천권은 더 팔릴 거라는 등 의견이 나오고 편집국장이 ‘신춘 에로 백경집’을 만들자고 한다. K 기자는 편집국장의 명령을 받고 취재를 위해 유곽으로 가게 되는데, 난생 처음 그런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몹시 긴장되어 술을 마신다.

‘에로’의 재료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나 밀린 방세 문제로 방을 비워 달라던 주인 아주머니가 그가 취직되었다고 한 후 갑자기 상냥해진 것, 석 달 치 밥값이 밀려 있고 닳아빠진 구두 굽을 생각할 때 이 것 저 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편집국장은 그를 따로 불러 문학청년 따위의 ‘쎈치멘탈’로는 실패한다는 주의를 단단히 준다. K는 센세이셔널 한 ‘에로’를 취재하여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어두컴컴하고 쌀쌀한 병목정 거리를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올라간다.

그는 유곽에서 창녀들 속에 15살 전후의 어린 소녀들이 많은 것에 놀란다. 성적 흥분을 느끼기보다 측은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편집국장의 센치멘탈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떠올리고 유곽의 창녀가 하라는 대로 한다. 그러나 서슴없이 저고리를 벗는 여자의 나이 어림을 보고 놀라고 그녀에게 나이를 물어볼 용기 없이 1원짜리 한 장을 빼어 놓고 그대로 나온다.

유곽을 도망 나온 K는 근처의 어두운 골목, 남의 집 담장 밑에서 몰래 몸을 파는 창녀 한 명을 또 발견하고 그 뒤를 쫓아간다. K를 유혹하던 그녀는 일제시대 이전에 충청도 서산 어느 지역 사또의 딸이었는데 그녀가 어머니가 사망하여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길거리를 나섰다는 사유를 듣는다. k는 얼마 안 되는 돈을 주고 서둘러 그녀의 집에서 뛰쳐나온다.

'어디선지 야경꾼의 딱다기 소리만이 ‘불이 나지 않았소. 도적도 나지 않았소, 아무 일도 없소’하는 듯이 느럭느럭하게 몰려온다.'

- 본문 중에서

작품은 일제치하에서 힘들고 고달픈 서민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여러 가지 힘들고 고달픈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지식인인 주인공 '나' 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세상을 아픈 이들을 외면하고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역설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군사독재 시대를 민주화의 시대로 바꾸고 지금의 선진국으로 일어선 대한민국, 지난 2022년 한 해를 돌아보면 자랑스런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희귀병으로 투병하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고, 아들과 딸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 집을 쫓겨난 80대 할머니 이야기가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방영되었고, 30대 어머니가 2살짜리 자폐아들을 살해 후 스스로 극단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국민이 안중에도 없는 위정자들은 패거리를 나누어 서로 싸우기에 여념이 없고 자신의 편을 비호하기에 바쁘다.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우리의 삶을 옥죄이는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위하던 무료급식소와 연탄봉사 등 후원은 예전에 비해 턱없이 후원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2023년에는 유례없는 강추위가 몰아 닥쳐 쪽방촌의 어떤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휴대용 가스버너로 불을 쬐며 겨울을 나고 있다고 하고 집에 가는 막차를 놓치고 추위에 떨다 도움을 요청코자 근처 지구대를 찾아간 할머니를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끌어내다시피 쫓아냈다는 기사가 떴다. 이를 어찌 생각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지금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진짜 아무 일도 없는 것인가. 새해에는 아프고 힘든 일 말고 서로 보듬고 서로 사랑하며 희망으로 가득한 함께의 세상이 되자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새해의 첫 달이 지나가고 있다. 각자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벌써부터 흔들리지는 않는지 돌아보자. 함께 사는 세상은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아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여 나부터 만들어가는 거다. 모두 실천은 못한다 하더라도 시도와 노력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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