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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 홍성남 칼럼] 정치인 단식 소환에 생떼로 비치는 이재명 대표의 단식 농성

[백서 홍성남 칼럼] 정치인 단식 소환에 생떼로 비치는 이재명 대표의 단식 농성

  • 기자명 홍성남 논설위원
  • 입력 2023.09.1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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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단식, 약자의 최후 저항 수단마저 야릇하게 만들며  
●선진화의 대한민국에 맞지 않는 개발에 편자라는 코스프레  

홍성남 논설위원
홍성남 논설위원

[서울시정일보 홍성남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8월 3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여 투쟁의 수단으로 단식 카드를 사용했다. 명분은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일본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과 전면적 국정쇄신”을 요구했다.  

단식은 약자의 최후 저항 수단이다. 곡기를 끊는 죽음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국민에게 알려 대의명분을 이루는 일이다. 대체로 힘이 없는 야당 대표의 행위였다. 정치인 단식의 성공 요건은 명분과 진정성 그리고 인지도이다.

이 대표의 단식은 인지도는 강하지만 명분과 진정성은 약하다. 성공 요건이 높지 않고 출구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단식에 다른 변수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즉 방탄 단식이라는 시각이다.

이 대표가 내건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는 대의명분은 모호하다. 또한 “일본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과 전면적 국정쇄신” 주장도 일본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의 약화로 탄력을 잃었다. 지난 6월 26일 우원식 의원이 일본 오염수 방류 반대를 주장하며 7월 11일까지 15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그때 이 대표는 우 의원에게 단식투쟁 중단을 요청했다.

국정쇄신 요구 명분도 약하다. 민주당은 국회의 의석에서 다수당이다. 그것도 법률을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거대 의석이다. 약자가 아닌 강자이다. 강자가 약자의 저항 수단을 쓸 때 국민의 관심과 지지는 약하다. “자기들 맘대로 법을 만들면서”라는 비아냥이 따른다.

다음은 진정성이다. 단식은 투명해야 한다. ‘정말로 굶느냐’에 대한 국민의 의심은 어느 때든 단식의 당사자를 불문하고 제기된다. 그런데 이 대표는 여러 이유로 농성장을 자주 비웠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농성하고 경호상 이유로 당대표실에 머물렀다. 텀블러의 음료에 대한 의심도 깊어지면서 ‘출퇴근 단식’ ‘웰빙단식’이라는 비아냥과 조롱이 터졌다. 단식은 의심받는 순간 진정성을 잃는다.

세 번째는 인지도다. 이 대표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힐난의 눈총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원로들과 당내 대선 경선자였던 이낙연 전 후보도 방문해 단식 중단을 부탁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애초부터 검찰 수사 진행을 방해하려는 전략”이라며 “수사 방해용 단식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검찰의 사건 조사와 당의 무대응 원칙이다.  

이 대표의 단식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16년 6월 7일 성남시장 때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 철회를 요구하며 17일까지 11일간 단식 농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차원의 문제해결을 약속하고 김종인 대표가 만류해 중단했다. 개인 지지 세력을 확장해 대선주자로 부각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단식투쟁은 선택 과정과 요구사항이 국민에게 설득을 얻지 못하면 실패한 투쟁이 된다.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이재명 대표의 단식은 시작은 쉬워도 끝내긴 어렵다는 것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대표의 단식을 계기로 정치인의 단식이 소환되며 회자 되고 있다. 국민에게 가장 깊게 각인 된 단식은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단식 농성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3주년인 1983년 5월 18일 야인으로서 언론 통제 전면 해제와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 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6월 9일까지 23일간 단식했다.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했지만, 단식을 이어갔다. 그러나 주변의 설득 끝에 “앉아서 죽는 것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중단한다”며 단식을 멈췄다. 가택연금 해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대를 얻어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 민주화 투쟁의 공동전선 형성 계기를 만들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0년 10월 8일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20일까지 13일간 단식했다. 1991년 지방선거가 열렸고, 1995년에는 자치단체장 선거가 시행되어 뜻을 이뤘다. 김 전 대통령은 1977년 진주 교도소에서 면회와 변호사 접견 제한에 항의하며 6일간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야당 정치인 시절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바꿨다. 하지만 이후의 단식은 특정 정책에 대한 요구나 정치적 선명성 추구 등을 위한 수단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도 단식투쟁을 했다. 1995년 12월 3일 5.18 특별법으로 갇힌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감옥에서 12월 31일까지 28일간이었다. 단식 중 쓰러져 병원에 호송되었지만 강행하다 중단했다.

정치인의 단식을 소환해 보면 단식의 명분과 진정성 그리고 지지도에 따른 단식의 결과가 확인된다. 또한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른 저항 수단으로서 단식의 생명성과 방향성도 가늠된다.

2001년 8월 23일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은 언론사 대주주 구속 등 언론탄압의 중단을 요구하며 9월 11일까지 20일간 단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만류로 단식을 중단했지만, 그의 단식은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 중 처음으로 하는 단식이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2003년 11월 26일 참여정부 인사의 비리 의혹 특검을 요구하며 12월 5일까지 10일간 단식했다. 보수정당 대표의 최초 단식이었다.

2005년 3월 3일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행정도시법 국회 통과에 반대하며 3월 15일까지 13일간 단식을 벌였다. 여성 의원의 장기간 단식으로 주목받았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2005년 10월 26일 쌀개방 국회 비준안 저지를 요구하며 11월 24일까지 29일간 단식했다. 정치인의 단식 중 가장 긴 단식이었다. 쌀 개방 협상을 위한 국회 비준안은 통과됐다. 그는 2004년 7월에도 이라크 파병 반대를 요구하는 단식과 12월 쌀협상 재협상 요구 단식 등 여러 차례 단식농성했다.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은 2007년 6월 7일 제주 군사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7월 3일까지 27일간 단식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은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함께 2007년 3월 2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하며 4월 19일까지 25일간 단식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도 2007년 3월 8일 FTA 비준을 반대하며 4월 2일까지 26일간 단식했다.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도 옥중 단식했다. 2009년 6월 3일 정치적 탄압에 항의한다며 무기한 옥중단식에 들어가 23일까지 21일간 단식했다.

아주 특별한 단식도 있었다. 2007년 11월 8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낸 권철현 의원은 16일까지 8일간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대선 출마 포기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했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도 2011년 11월 13일 FTA 정상적 비준과 국회 폭력 추방을 촉구하며  22일까지 10일간 단식했다. FTA 문제 등으로 야당 의원들이 단식 농성을 한 적은 있었지만, 여당 의원의 단식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때 2014년 8월 19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지정을 놓고 단식 투쟁하는 김영오 씨를 말리기 위해 28일까지 10일간 단식했다. 당권주자로 부각 되던 때 많은 지지를 얻게 되고, 진보 진영에서 신임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특별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2014년 8월 22일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월호특별법 통과를 주장하며 9월 14일까지 24일간 단식했다.

단식은 야당 대표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단식도 있었다. 2016년 9월 2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자 정세균 국회의장 퇴임을 요구하며 10월 2일까지 7일간 단식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 이었다.

새누리당 원외당협위원장 등 5명은 2016년 11월 13일 이정현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23일까지 11일간 단식했다. 이정현 대표가 12월 당 대표를 사임하면서 단식투쟁은 중단되었다.

2017년 10월 10일 조원진 대한애국당 공동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반대하며 23일까지 14일간 단식했다. 구속 연장은 결정됐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2018년 5월 3일 조건 없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11일까지 8일간 단식하다 건강 악화로 중단했다. 트루킹 특검은 관철됐다.

2018년 12월 6일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했다. 여야 5당 선거법 개정 합의로 9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에 지정돼 본회의에 올랐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2023년 7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 명분으로 5년 만에 재차 단식에 돌입해 20일 만에 중단했다.

이학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9년 9월 15일 조국 사퇴와 문재인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며 10월 4일까지 19일간 단식했다.

2019년 11월 20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영수 회담을 요구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철회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저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저지 등을 주장하며 27일까지 9일간 단식했다. 건강 악화로 중단되지만 지소미아 철회 조건부 연기와 당내 지도력 공고와 정치적 결속력을 강화했다.

이외에도 김근태, 임종석, 임종인, 권영길, 김진태 등 다수의 정치인이 단식 농성했다. 단식은 시작과 끝을 정하기 어렵다. 방식에 대한 제한을 정하는 것도 애매하다. 역대 정치권에선 다양한 이유로 정치인들의 단식이 있었다. 민주화와 지방자치의 시작 등은 거물급 정치인의 단식이 기폭제가 되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단식 농성은 정치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달성 이후의 단식 농성은 정치투쟁으로서 정치환경과 국민 의식 변화 등으로 과거와 같이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폭발성 있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서 한 단식투쟁 이후의 단식 농성은 그 효용성이 대체로 반감되고 있다. 건국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와 선진화의 대한민국 이정표에서 선진화 단계인 현재 국민은 의회 민주주의에 입각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 농성은 저항 수단으로서 단식의 생명성이 우리 정치사에서 종언을 고하는 듯하다. 국민은 극단적인 방법의 정치문화가 개선되고 성숙해지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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