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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보혁. 민주주의와 당론

[칼럼] 김보혁. 민주주의와 당론

  • 기자명 김보혁 논설위원
  • 입력 2023.10.02 18:23
  • 수정 2023.10.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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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혁 (신한대학교 국제통상지역중소기업연구소 소장)

김보혁 논설위원
김보혁 논설위원

[서울시정일보 김보혁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정치가 혼란스럽다.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보수와 진보 정당 간 세력다툼이 치열하다. 당리당략(黨利黨略)의 정당 정치와 국익과 공익보다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이들이 과연 국민과 국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지 의심하게 한다.

자유를 추구하는 보수 여당과 평등을 내세우는 진보성향의 야당 간 정책적 경쟁과 수권 노력은 필수적이고 정상적이다. 그러나 다름에 대한 존중과 내 확신이 틀리고 상대방도 옳을 수 있다는 전제가 없는 흑백 논리로 정파적 주장이 난무하는 우리 정당 정치에는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고 국가 발전을 이루기 위한 여야 간 진지한 토론과 타협의 정치가 국민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대선 선거 결과와 정당 지지도 추이를 보면, 국민의 좌·우 및 중도 성향은, 각각 삼 분의 일 정도다. 국민의 정당에 대한 지지는 좌우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어, 상생과 협력이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에서는 당헌·당규, 공직선거법, 당 정책 등을 통하여, 당원이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공천후보자 기초자격 시험”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공천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공직선거 후보자의 자격시험을 통한 정량적 평가 요소 도입은, 당시 여론 조사 결과 62.3 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 공천에 시험을 도입해 공정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참신한 점이 있었지만, 하향식 공천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고, 시험을 잘 본다고 정치를 잘할 것인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토론과 타협이 실종되고, 맹목적 비난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정치 현실에서,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소양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봉사의 자세, 그리고 경청과 소통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정치개혁을 사람의 문제로 보고, 물갈이도 해보고 시험이라는 정량적 평가도 시도해 보았다. 그 결과 96년 이후 매번 총선의 초선 비율이 모두 40%를 넘었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점점 더 대립하고 정치의 난맥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면, 새로운 사람이 더 잘할 것이라는 전제도, 검증이 필요해 보이며 아마도 이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치 시스템에서 대립적이고 투쟁적인 정치문화를 바꾸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가장 개선해야 할 급선무는 정치인들이 “사람이 아닌 국민에게 충성”할 수 있도록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근간이 되는 정당 운영부터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정당 운영에서 대표적인 비민주적 요소로 “당론”, “당 대표”, 그리고 “하향식 공천”을 들 수 있다. 우리 정치가 관행과 관성으로 유지하고 있는, 세 가지 비민주적 요소들로 인해, 정치문화와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당권을 가진 특정인에게 충성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헌법 제46조 2항(“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과 국회법 제114조의 2(자유투표)에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羈束)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국회의원은 당선되면 국회법 제24조(선서)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하게 되어 있다. 당론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헌법과 국회법 어디에도 민의를 대변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각자의 양심 대신 당론에 따라 국회에서 투표해도 된다는 규정은 없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양심에 따라 성실히 국회에서 투표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당론이라는 “전체주의적 투표지시”에 의해, 국회의원 각자가 독립된 국민의 대표로서 제대로 된 임무를 수행하기보다, 거수기 역할을 하게 되는 현실은, 민의가 반영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정치에서, 당에 의한 일방적 지시인 당론은, 국가 이익 보다 자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헌법과 국회법에도 근거가 없는 당론은, 당 대표나 그의 측근인 소수의 당 지도부에 의해 정해지며, 국회의원은 당론으로 인해 때로 민의와 소신 그리고 양심에 반하는 투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이 당론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당 지도부가 차기 선거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익보다 정파적, 당 대표 개인의 이익이 개입될 여지가 많은 당론은 없애고 국회 자유투표를 통해 여야를 떠나 각자 뛰어난 식견과 경륜과 양심을 갖춘 국회의원들의 개별적 판단을 모아 국사를 결정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할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있었던 투표가, 국회의원들은 당 지도부와 극렬지지자들의 압력 아래에서 진행되는 것을 생중계로 전 국민은 지켜보았다. 가결이라는 투표 결과에 불만을 품은 지지자와 당 지도부가 나서, 배신자 색출, 해당 행위자 징계, 공천 불허, 공천 불바다, 문자폭탄 등으로 위협하는 추태를 보였다. 일부 의원들은 비밀 투표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표 내용을 휴대전화에 찍어 공개하기도 했다. 권위주의적 독재 국가와 정당에서나 있을 법한 이러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명백히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정치를 전체주의화 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에 매우 역행하는 행태이다.

우리의 정당들은 당 대표라는 제도를 두어, 대표가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하게 한다. 당 대표는 주요 당직 추천 및 임면, 당무 전반에 관하여 집행 조정 및 감독, 당 예산편성, 당헌 당규에 따라 확정된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권을 갖고 공천 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민의 민의를 반영해야 할 입법부를 사실상 여야 당 대표와 소수의 당 지도부가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충성하며 책임 정치를 하게 하려면, 당 대표가 공천에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해당 지역당원들과 주민들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방 자치 역시 지방 의회 의원들이 지역 현안에 대해 당파를 떠나 무엇이 지역 주민을 위하는 것인가를 찾는 개방된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당론과 공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 당협위원장의 의사에 정파적으로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현 체제로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어렵다. 지역 당협위원장은 현지의 영향력을 가진 유지 혹은 토호 세력과 밀접하게 연계되기 쉽고 지역 주민보다 이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형성된 여론에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 자치를 위해서도 지역 당협위원장의 공천권은 해당 지역당원과 주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하향식 공천은 정치인이 선거기간에만 주민에게 충성하고, 일단 당선되면 주민이 아닌 공천권자에게 충성하는 구조를 굳히게 되는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당 체제에서 하향식으로 공천받아 공직자가 선출된다면, 진정한 민의를 반영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양당 체제에서 상. 하원 원내 대표가 있으나, 이들의 역할은 공천과 전혀 관련이 없고, 당의 공식 입장 표명이나 의회 내 의사 진행을 위한 조정자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 미국 국회의원은 사람에게 충성할 필요가 없고, 자기 지역 국민과 당원의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도 중앙당에 의한 당론과 공천에 큰 영향력을 갖는 당 대표제를 없애고,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필요한 경선을 필수적 경선으로 바꾸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57조의2(당내경선의 실시)①에 “정당은 공직선거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하여 경선을 실시할 수 있다.”라는 임의 경선 규정을 “경선해야 한다”라는 필수 경선 규정으로 법률을 개정해서, 공정한 경선의 실질적 실행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당마다 당 대표 제는 없애고 당 원내 대표가 입법부의 원활한 입법 활동을 위해, 당의 리더로서 기능적으로 필요한 역할만 하게 하여, “당 대표 주권 국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초(超)법적 권한을 가진 “당(黨)대표제”와 “당론”, 그리고 “하향식 공천시스템”을 바꾸어야, 헌법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를 실현할 수 있다.

국민의 뜻을 섬기는 정치 시스템이 확고하게 구축되어야, 국회의원, 지방 의회 의원들이 각자 독립된 헌법 내지 법률기관으로서 각자의 양심에 따라, 민의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고, 진영 간 극심한 대립과 다툼은 합리적인 토론으로 대체되고,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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