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학칼럼] 서머싯 몸 '레드'에서 사랑과 이별을 말하다.

[문학칼럼] 서머싯 몸 '레드'에서 사랑과 이별을 말하다.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5.30 08:27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은 이별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별한다.
변화는 사랑이 아닌 사람이 변하는 것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여덟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열 살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 숙부의 보호 아래 학창 시절을 보냈고 런던에서 세인트토머스 의학교를 졸업했다. 산부인과 경험을 옮긴 첫 작품 ‘램버스의 라이저’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자신감을 얻고 작가로 전업한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작가 수업을 하고, 1928년 이후 프랑스 남부 카프페라에 정착했다.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와 고갱을 모델로 예술 세계를 파고든 '달과 6펜스', 성공에 눈먼 작가를 풍자적으로 그린 '케이크와 맥주', 한 미국 청년의 구도적 여정을 담은 '면도날' 등의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소개하는 작품 '레드'는 1919년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도착한 빨강머리 젊은 선원 레드는 탈영한 해군 병사였다. 아폴로 상을 닮은 수려한 용모를 한 레드는 아름다운 원주민 처녀 샐리를 만나게 되고 20살과 16살의 청춘은 사랑에 빠져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에 영국 포경선이 정박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레드는 질 좋은 담배를 얻기 위해 온갖 과일을 따서 포경선으로 갔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레드는 섬에 돌아오지 않았다. 좁은 섬에서 한 여인과의 사랑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웠는지 아니면 잠시 다녀오려고 했는지, 납치를 당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샐리는 슬픔에 빠져 미칠 것만 같았다.

닐슨은 스웨덴의 지식인으로 25년 전 폐결핵에 걸려 앞으로 살 날이 1년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태평양 한 모퉁이의 섬에 요양차 왔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뛰어난 19세의 원주민 여인 샐리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져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러나 끊임없는 구애와 설득끝에 결국 샐리와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그녀는 옛 사랑을 한없이 선망하며 산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대머리에다가 배가 튀어나와 아주 천하고 추하게 생긴 거구의 사람이 작은 화물선을 타고 섬으로 왔는데 닐슨 부부의 집으로 왔다. 닐슨은 이 사람과 대화를 하던 도중, 풀어 헤친 셔츠 사이로 보이는 빨간 털을 보면서 바로 아내의 옛 애인인 레드라는 것을 눈치챈다. 이런 자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혐오스럽고 남루한 사람이다. 그 때 외출했던 샐리가 들어오고 펑퍼짐하고 심드렁한 중년의 아낙네가 돼 버린 샐리와 뚱땡이 레드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닐슨은 그 여인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낭비, 웬 낭비!'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뚱땡이 레드와 늙어버린 샐리에게서 지난 세월의 역함을 느끼고 섬을 떠날 준비를 한다.

전설의 미남, 사랑의 화신이었던 레드는 보잘것없는 배에 술에 쩔어있는 배불뚝이 선장으로 돌아왔고 샐리는 검붉고 살찐 원주민 노파로 변해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샐리를 그토록 사랑한다던 닐슨은 떠나려 하고 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을 파괴한 것은 무엇인가.

레드는 섬의 상인에게 통조림을 전하려고 섬에 들렀다. 수십 년이 흐르고 레드가 돌아왔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한 레드와 샐리, 수십년을 사랑해왔던 그녀에게서 관심을 끊으려는 닐슨, 이들은 모두 사랑의 패배자들이다.

소설 중의 한 문장이다. “사랑의 비극은 죽음이나 이별이 아닙니다. 그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과거에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하게 되어도 괜찮아진 여인을 바라보는 일은 끔찍하게 괴롭습니다. 사랑의 비극은 관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며 변해가는 모습은 외형이 변한 것이지 내면이 변한 것이 아니다. 즉, 외면을 사랑하는 것은 변할 수 있고 결국 그 변화는 사랑이 아닌 사람이 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루만 못 봐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연인이 그냥 무덤덤하게 되거나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서로 궁금하지 않는 무관심한 사이로 변질되는 것,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닌 사람의 이별인 것이다. 사랑은 이별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별한다.

저작권자 © 서울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