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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임종'에서 보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

염상섭의 '임종'에서 보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6.20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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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삶에 대해 강한 애착
최선을 다해 삶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염상섭(1897~1963)은 서울 출생으로 일본 게이오 대학 문학부에서 수학하였고 1920년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활동하였다. 1921년 '개벽'에 발표한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되며 '삼대', '만세전', '두 파산' 등의 대표작이 있다.

작품은 1949년 '문' 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한 사람의 죽기 직전 심리 변화와 병자를 둘러싼 가족들의 심리를 그린 작품으로, 사실주의의 원리를 정확히 실천한 작품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한 집안의 가장 '병인'이 뇌내출혈(뇌일혈)로 쓰러진다. 급한 고비는 넘겼으나 간신히 연명해 가는 수준이다. 처음엔 한의를 불렀는데 이 병은 한의에는 맞지 않는다고 물러났었다. 그래도 인사불성에 빠질 뻔한 것을 한약으로 머리의 피를 내려 위급함은 모면하였고 그런 다음 병원에 입원하여 두 번이나 피를 빼내고, 명을 부지하는 중이다.

‘병인’은 통증 때문에 모르핀 진통제로 괴로움을 잊는다. 처음엔 네 시간마다 주사하던 것이 세 시간, 두 시간으로 줄어들더니, 오밤 중에라도 의사를 불러 주사를 놓게 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병인’의 가족들은 돈 걱정이 여간 드는 게 아니어서 퇴원을 시켜 집에서 임종을 맞도록 하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갑자기 C라는 젊은 위문객이 나타나 엉뚱하게 재단을 설립하려 하는데 ‘병인’을 이사직에 추대하려는 공론이 있다고 말한다. ‘병인’은 그 말을 듣자 병을 낫고자 애쓴다. 그러나 청년이 병색을 눈치채고는 서둘러 꽁무니를 뺀다.

저녁 무렵에 들른 의사에게 주사를 맞은 뒤 의사는 병자의 동생 ‘명호’를 불러내 빨리 퇴원시키는 게 좋겠다고 권유한다. 병자가 약을 빨아들일 힘조차 없으니 생명이 오늘 내일이라는 뜻이다. 병자는 동생이 불려나가는 걸 보고는 초조하다. ‘명호’는 차도가 있어서 퇴원하라는 것이라고 둘러대고 한약을 먹어보자고 하며 병인을 안심시키고 퇴원준비를 한다. ‘병인’의 아내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가 위독한 것을 알고는 병인을 둘러서서 기도를 한다. 병인은 원래 불교를 좋아했으나 천주교를 믿는 간호사의 권고로 어느새 탁자 위에는 성수 병까지 받아놓고 있었다.

자동차를 불러 ‘병인’을 태울 때,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주사 한 대를 놓게 했다. 집에서 운명하게 하려는 배려였지만 ‘병인’은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죽고 만다. ‘병인’은 죽은 후 선산에 묻어 달라고 미리 유언을 하였지만 가족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장례를 치른다. 주인공 ‘병인’은 가난한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병이 회복되기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하여 있음을 알면서도 살고 싶다는 본능에 한약을 지어 오라거나 방문객이 말해준 어떤 단체의 고위간부직을 탐낼 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가족들은 ‘병인’의 심정을 알면서도 병원비를 걱정하고 장례와 죽음 이후를 둘러싼 현실적 계산에 바빴다.

작품은 말한다. 인간은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 남아있는 자들은 자신의 살아갈 방편을 찾는다.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사이는 관계의 단절에 앞선 이기가 발동하는 자리일 수 있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순환임을 말해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은 당장은 길어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여름 나절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사라지는 소나기처럼 짧다.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내 손에 잡을 것은 무엇인가. 최선을 다해 삶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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