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학칼럼]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 인간의 반성과 회개를 말하다

[문학칼럼]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 인간의 반성과 회개를 말하다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4.18 08:48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 지적
인간은 늘 반성하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감각으로 프랑스 문학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가, 아멜리 노통브(1967 - ), 외교관 아버지 덕택에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방글라데시, 미얀마, 중국 등에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보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1992년 25세 때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프랑스 비평가들로부터 '천재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는데 섬뜩하고 매혹적인 작품으로 전 세계에 걸쳐 독자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노벨문학상 수상자 80대의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는 평생 하지 않던 인터뷰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들에게 모멸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작가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메타포를 들먹이며 유식한 척 하는 기자들은 타슈의 신랄한 어투 앞에서 무너진다. 글쓰기를 불알, 성기, 입술에 비유하기도 하는 등 말 꼬리를 물고 넘어지는 타슈 앞에서 인터뷰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그들은 타슈를 더 이상 대문호가 아닌 뚱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첫 번째 기자부터 네 번째 기자까지 남자기자들은 모두 실패하고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기자인 여성기자 ‘니나’와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남성우월주의자이며 여성 혐오자인 타슈에게 여기자 '니나'는 온갖 모욕에도 끄떡하지 않고 타슈의 한 작품에 대해 끈질기게 파헤친다. 바로 '살인자의 건강법'이다. 여기서 건강법이란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타슈는 사랑하는 사촌 누이 레오폴딘과 어린 시절을 떠나게 되는 날 죽여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로 평생 남기 위해 잠도 거의 자지 않고 한 겨울에도 수영을 했으며 거의 물속에서 살면서 숲에서 나는 버섯을 주식으로 삼는 이상한 건강법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폴딘의 다리 사이에서 피가 나는 것(생리)을 보고 레오폴딘을 죽인다. 레오폴딘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만 남겨두었고 여자가 되는 것은 죽어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한 치의 죄책감도 없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모조 자궁일 뿐 생리가 시작되면 여성들은 다 죽여야 한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이론을 아주 정성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레오폴딘이 어른이 돼서 죽었다면 자신은 어른이 되었는데도 60년 넘게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은 레오폴딘 이후 누구와도 사랑을 하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으며 글만 썼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책에 적으면서도 감옥에 가지 않는 걸 보고서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없다고 환희에 차 있는 모습까지 보인다. 어린 사촌 누이를 죽여 놓고 너무나도 뻔뻔하고 떳떳하고 자신만만한 타슈의 모습을 보면서 삐뚤어진 신념이 어떻게 살인자를 양성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는데 타슈는 레오폴딘이 바랬다고 하며 끝까지 구원해줬다고 믿는다.

마지막에 니나에게 니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고 타슈가 바라는 대로 니나는 그의 목을 졸라 죽인다. 소설에서는 여러 형태의 죽음이 등장한다. 첫째 인터뷰한 기자들은 기자로서의 자존심과 존엄성이 사라진 것으로 해석, 일종의 사회적 죽음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소설에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과거에 타슈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기기 위해 죽인 레오폴딘이 있다. 흉측한 모습으로 죽음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타슈도 결국 여자기자가 죽인다. 소설에서의 모든 죽음은 아름답지 않고 흉측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여러 죽음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살인자의 건강법에 대해선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처럼 보이는 그의 괴상한 식습관만 나올 뿐이다.

죽음을 두 달 앞둔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와 어설픈 기자들을 통해 기존의 '문학'을 둘러싼 가식적인 세태를 상징하고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 아름답던 유년기를 유지하려고 살인을 했지만, 막상 살인 이후로는 게걸스럽게 먹기만 해서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흉측한 고도비만의 모습이 된 타슈를 통해 인간의 위선을 목격한다. 그 위선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어느 곳에도 도사리고 있다. 쓰레기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탔다는 설정은 겉으로 화려하고 도덕적이며, 높은 지위의 삶을 살고있는 사람일지라도 속은 썩은 고름으로 가득한 돼지와 같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주면서 겉으로는 착하고 이해심 많고 혼자 도덕적인 것 같지만 않은 흉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을 지적한다. 작품은 스스로에게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타인에게도 진실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늘 반성하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