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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단절과 혐오

[칼럼]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단절과 혐오

  • 기자명 민병식 논설위원
  • 입력 2023.06.08 05:20
  • 수정 2023.06.0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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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경청과 공감하는 것.
원활한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는 약속을 존중해야 한다.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스위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페터 빅셀(1935 ~ )은 스위스 루체른 출생으로 1946년 ‘사실 블룸 부인은 우유 배달부를 알고 싶어 한다’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스위스의 모든 교과서에 그의 글이 실려 있을 정도로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한다. 대표작으로 ‘계절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못 말리는 우리 동네 우편 배달부’ 등이 있고 스위스 문학상. 요한 페터 헤벨 문학상, 고트프리트 켈러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책상은 책상이다’ 라는 이 단편은 1969년에 출간된 단편소설 모음집에 들어있다. 어떤 나이 많은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작은 도시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었는데 늘 똑같은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 지겨웠던 그는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원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드디어 그가 분노하기 시작한다. 달라져야 한다고 소리치던 그는 불현듯 왜 침대를 사진으로 부르지 않는 것인지 생각하며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의 이름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는 침대를 사진으로 책상을 양탄자로 의자는 시계로 신문은 침대로 바꾸고 거울은 의자로, 시계는 사진첩으로 양탄자는 옷장으로 불렀다. 그는 모든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남자가 아니라 발이라 불렀다. 그리고 발은 아침이라 부르고 아침은 남자라고 부른다. 파란 공책을 사서 자신이 바꾼 새로운 단어들을 적고 하루 종일 이 일에 매달린다. 너무 바빠져서 사람들을 만날 시간도 없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이름을 바꾸어 부른 나머지 원래 이름을 모두 잊게 된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의 말을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어떻게 부르는지 한참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점점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더 심각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하고만 대화를 했다. 결국 외롭고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주고자 한 시도가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작가는 1960년대 말에 이 작품을 쓰면서 산업화에 따른 인간소외와 의사소통의 부재를 이야기 하려 했다고 한다. 그렇다. 작품은 소통을 이야기한다. 소통은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경청하는 것이며 공감하는 것이다. 책상은 반드시 책상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소통을 위한 서로 약속이다. 서로 간의 원활한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는 약속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은 없는가. 고집, 아집, 독선, 궤변 등 주인공처럼 소통을 거부한 채 혼자만의 방에 갇혀서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만이 옳고 남의 의견이나 생각은 틀리니 깡그리 무시하고 배척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정치든 사회든 이쯤 되면 소통의 부재가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내편이 아니면 모두 틀렸다는 단절과 혐오다. 그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어서 나오길 바란다. 책상은 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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