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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불량품은 반품 수리가 답이다

[섬진강칼럼] 불량품은 반품 수리가 답이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8.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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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대문에 여닫는 문짝이 없는 지리산 천은사 심원암(深源庵)의 모습이 아름답다.
사진 설명 : 대문에 여닫는 문짝이 없는 지리산 천은사 심원암(深源庵)의 모습이 아름답다.

[서울시정일보 황문권 기자] 오래된 논란이다. 어떤 것이 학생을 위한 옳은 교육이고 학교를 만드는 것이냐를 두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통으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다른 학교로 보내는 전학과 전근이다.

먼저 비위나 비리가 드러난 교사를 다른 학교로 발령 전근시키는 제도다. 지금은 개선되어 엄격히 제한 강력하게 조치하고 있는 일이지만, 과거의 사례를 들면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상대로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저질렀을 경우, 다른 학교로 보내 없던 일로 하였는데, 문제는 그 성범죄자가 교사의 직분으로 전근 간 학교의 학생들은 어찌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김대중 정권 때부터 비위나 비리가 드러난 교사들을 특히 학생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들을 파면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교육부가 교사들의 교권보호 정책으로 내놓고 있는 안들을 보면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성에 차지 않는다.

다음은 이른바 학폭을 저지르거나 교사의 교권을 침해하는 등등 문제가 된 학생을 다른 반 또는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일인데, 이 경우 역시 그 문제아와 함께 공부해야 할 다른 반 학생들과 전학 간 학교와 학생들의 피해는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보상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잘났다는 사람들이 주야장천 떠벌리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과 학습권을 위해서, 특히 문제아 자신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교육이냐는 것이다.

논을 정리하면,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를 다른 학교로 보내면, 국가는 그 성범죄자를 선생님이라는 존칭과 존경의 이름으로 보호하는 꼴이 되고, 그 학교의 학생들은 성범죄자 앞에 그대로 무방비로 노출되듯이….

폭력을 저지르는 등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웹툰 작가의 아들 발달장애 학생도 마찬가지다) 같은 반 학생들의 학습 분위기를 망치는 문제의 학생을 다른 반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면, 다른 반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알기 쉽게 직설로 이야기하면, 왜 내 자식이 아무런 인과도 없는 문제아들로부터 일방적으로 피해를 봐야 하고, 애초에 가정교육이 잘못되고 반성도 모르는 문제아들을 위해서, 원치 않는 희생과 피해를 감수해야 하냐는 것이다.

학문과 인간으로 갖춰야 할 사회성 등등을 배우는 성장기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문제아들로부터 허비하면서 망쳐야 하냐는 것이다.

문제아를 먼저 생각하는 학교 교육은 근본이 잘못된 것으로, 이제야말로 피해 학생을 먼저 보호하고 생각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왜냐하면 같은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 등등 이른바 쪽팔림을 당한 학생들은 심리적으로 극복이 어렵고 여차하면 평생의 고통인 정신병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불특정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문제지만, 그 알량한 인권과 학습권이라는 미명으로, 문제아를 보호하고 교육하는 차원에서 다른 반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것이, 문제아 자신을 위한 교육이냐는 것이다.

부연하면, 혹 나를 기본교육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하는 소린데, 나는 딸 하나를 두었지만, 그 아이가 말귀가 열린 초등학교 시절, 절대로 너보다 어려운 친구들을 무시하지 말고, 어려운 친구를 도울 때는, 반드시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고, 도움을 받는 친구가 자존심을 상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어린 딸에게 단단히 교육했고, 다행히도 아이는 학교에서 교우관계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한때는 어려운 친구들을 돕다 함께 왕따를 당하는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으나, 저보다 부족하고 어려운 친구들을 무시하거나, 왕따를 시킨 일은 없었다.

거듭 알량한 인권을 주장하는 이른바 진보 교육자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은 딱 두 가지다. 

첫째는 그럼 너는 그런 문제아를 너의 자식 곁에 두고 너의 자식에게 그 문제아를 위해서 희생과 피해를 감수하라고 하겠냐는 것이다.

아마도 백이면 백 모두 자기 자식 인생을 망치는 일이라면서, 결사반대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기 자식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학교를 찾아 전학시키는 위선자들이 이 사람들인데, 정말 중요한 것은, 희생이든 감수든 그 결정을 왜 당사자인 아이가 아닌 부모인 너희가 하냐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아이들의 인권이라는 것은, 진심이 아닌 인권이라는 말을 팔아 먹고사는 도구라는 의미다.)

두 번째는 성경에서 말한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을 놔두고,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을 끝까지 찾아서 돌아온 것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을 안전한 우리로 보호한 후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결론을 지으면, 답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불량품은 반품 수리가 답이다. 공정한 학교의 교육에 협조하지 않는 문제아들은 일정 기간 가정으로 보내서 일차적 책임이 있는 부모와 함께 반성과 재교육을 하도록 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아들은 특수반이나 특수학교를 신설하여 수용하면 된다. 바른 교육을 고민하는 전문 학자들과 당국의 심사숙고가 있기를 바란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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