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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장철 초대 칼럼. 삶의 끝자락에서의 미로...“좋은 자식들과 나쁜 자식들”

[칼럼] 신장철 초대 칼럼. 삶의 끝자락에서의 미로...“좋은 자식들과 나쁜 자식들”

  • 기자명 신장철 논설위원
  • 입력 2023.09.07 16:31
  • 수정 2023.09.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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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책이 보이지 않는 비극한 현상

신장철 논설위원
신장철 논설위원

[서울시정일보 신장철 논설위원] 나이듦과 질병, 인간이면 누구든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다 겪는일이라고 치부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내가 존경하는 이유의 원천이 어디에 있겠는가를 생각할때마다 ‘어머니’를 생 각하게 된다. 참으로 아련하고, 어떤때는 슬프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삶과 죽음, 나이듦이란 어떤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어떤 종말을 맞을수 있을가’에 대한 예측가능함이 있어야 하는 데 사실 현재의 우리 사회구조는 그러하지 못하다.

이를 다시 사회적 관점에서 이야기해보자.

현대 사회에서의 탄생과 죽음은 대부분 병원에서 이루어진다. 이전의 시대에 비해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그 만큼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요구되는 기간이 길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어떻게 병원비를 마련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각 개인들이 자신의 인생 끝을 생각하면서 가장 큰 두려움이 되었고, 병원비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에 죽음은 곧 공포가 된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생명과 건강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는 없었지만 인간의 삶에서 단지 생물학적으로 오래살고 아프지 않은 것만 소중하게 여긴적도 없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령화’라는 현상과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노년의 삶이 길어진 국민들은 어떻게 대우하고 돌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건강하게 활동할 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병들고 나면 적당한 병원을 찾아가고, 또는 요양병원을 찾아가서 품위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각 개인이 직접 감당해야 하는 문제이다.

아니 기꺼히 책임지겠다는 자식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게 바쁘기 마련이고, 현재 사회의 나쁜 삶을 살면서 ‘노인들 돌보기와 병행하기’라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구나 대부분 오래살기를 바라며, 부유하고 윤택한 삶을 추구한다.

문제는 막상 현대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노년의 관점에서 보면 부질없어 보인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성공한 인생인지, 실패한 인생인지 가름하기 어려운 만큼, 노년을 요양시설에서 보내는 사람도 많아졌다. 또한 사회적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육체, 젊음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노년의 삶이 그저 남은 인생은 아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을수 밖에 없다는 존재의 유한성에 대해 생 각하지 않는 정부, 그리고 인간이란 삶의 긴 기간을 타인의 선의와 노동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정부, 어찌보면 소수일 수밖에 없는 젊고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의 기준이 되는 국가는 건강할 수 없다.

그런점에서 고령화 사회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성숙의 계기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노년의 삶이 경우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것이 노인들의 처지와 외양이다.

젊은이들은 가꾸건 안가구건 젊은 모습 그대로 나타나는 반면, 노인들은 살아온 자취에 따라 몸의 상태뿐만 아니라 겉모습도 다르다. 또 질병을 앓는 빈도나 수명, 아플때 치료를 받는 정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따라서 개인적인 문제로만 돌릴수 없는 것이 ‘건강과 수명’이다.

노인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는 단지 노인에게 소득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 지하기 위한 물질적인 기반도 매우 중 요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노인연금을 주고, 전철표를 무료로 탑승하게 하는 예우가 다는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가족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회적 관계이고, 실제 아이들과 노인,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중요한 당위이지만, 가족을 특권화하여 가족 울타리에 있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화하는 기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가족’이란 끈끈한 공동체가 될수도 있지만,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남보다도 못할 수가 있다.

실제로 가족관계 내에서도 착취와 폭력이 종종 이루어진다. 특히 가족은 언제나 새롭게 만들어 지는 것이기도 하다. 혼인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족도 있고,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서로간에 친밀함을 나 누고 돌보는 관계도 현실세계는 존재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고, 그 돌봄 노동을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현 국가의 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대책을 내놓 아야 한다.

“노년의 인생에 소중한 것은 무엇이 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 인가?”라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질문을 정치권에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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