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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 - 이 시대의 가장 필요한 가치를 말하다

[문학칼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 - 이 시대의 가장 필요한 가치를 말하다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8.1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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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필요한 인간적인 마음, 위로와 이해, 존중의 마음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는 도쿄 출생으로 일본 다이쇼 시대(20세기 초, 1912-1926)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예술지상주의 작품이나 이지적으로 현실을 파악한 작품을 많이 써 신이지파로 불린다. 주로 일본이나 중국 설화집에서 제재를 취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라쇼몬', '코', '게사쿠 삼매경', '지옥변', '톱니바퀴'화'갓파' 등이 있다.

이 작품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1916년에 ‘신사조' 창간호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작가의 데뷔작이다. 다른 이의 불행을 기뻐하고 입방아 찧는 인간의 이중 심리를 묘사한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케노 마을의 승려, 젠치 스님은 궁중 내 도량에서 왕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독경을 읊는 나이구 스님이다. 그런데 젠치 스님은 그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인데 이유는 길다란 코가 얼굴 한가운데에서부터 턱까지 덜렁덜렁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십이 넘도록 코로 인해 상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지만 경건한 승려 신분 때문에 겉으론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자신의 큰 코를 걱정한다. 마을 사람들은 젠치 스님이 승려 신분인 것을 외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세상 사람이었다면 그런 코를 가지고는 장가조차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코가 그 모양이어서 출가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지경이다.

어느 날, 젠치 스님의 심부름으로 교토에 다녀온 제자가 의사에게서 코를 짧게 만드는 방법을 배워온다. 젠치 스님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넌지시 얘기를 꺼내고, 제자는 그런 스님을 위해 의사에게 배운 방법대로 시술한다. 시술이라고 해봐야 큰 코를 뜨거운 물에 담근 뒤 발로 밟는 게 전부인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코가 짧아져서 평범한 인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야릇한 비웃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코가 근질거리며 열이 나더니 다음 날 아침 다시 예전처럼 큰 코로 변해 버렸다. 그때 젠치의 마음은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아무도 비웃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기다란 코를 새벽녘 가을 찬바람에 덜렁거리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의 젠치 스님은 대여섯 치나 되는 긴 코 때문에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없고 사람들에게 늘 웃음거리가 되었다. 누구나 젠치 스님의 코를 가졌다면 신체적 콤플렉스로 인해 사회생활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작품에서 코는 외모를 상징하지만 그 외에 신분, 재산, 학력, 직업, 장애 유무 등 눈에 보이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세상으로부터의 편견이나 차별의 존재를 말한다. 보기 흉할 정도로 긴 코를 가진 젠치 스님을 비웃고 자격지심으로 고민하던 스님이 겨우 불행에서 벗어났으니 주변 사람들은 축하해 주어야할텐데 흉을 보고 즐길 거리가 없어진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재미를 위해 다시 스님을 불행에 빠뜨리고 싶어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사실이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은 헤아리지 않고 누가 어떻게 되는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학교폭력의 방관자나 동조자와도 같다. 바로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한 다수의 폭력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차별과 경멸, 험담, 따돌림, 가짜뉴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절어 사는 현대사회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겉치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바로 인간적인 마음, 위로와 이해, 존중의 마음인데 그것들은 포장이 아닌 진실한 자기 성찰에서 나옴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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