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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아리아스 수아레스의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에서 보는 나이 듦의 지혜

[문학칼럼] 아리아스 수아레스의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에서 보는 나이 듦의 지혜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8.2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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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앞에 무릎 꿇은 사랑과 아름다움과 청춘
세대는 물려주고 계절의 변화처럼 순환되는 것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에두아르도 아리아스 수아레스(1897~1954)는 콜롬비아 아르메니아 주 출생으로 원래는 치과 학을 공부한 의사이다. 이 작품은 1944년 작가의 소설집 ‘늙는다는 것과 나의 가장 유쾌한 이야기’라는 소설집에 게재된 단편이다.

작품의 배경은 1940년대의 콜롬비아다. 집을 떠나 여행객으로만 살아온 오십대 중년 남자, 콘스딴띠노가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고향 이곳을 저곳을 걷다가 인디오 상점의 싸구려 물건 들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어디서 한 사십 살은 지났을 한 여인이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본다. 자신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버린 여인은 바로 그의 사촌 여동생 메르세데스였다. 콘스딴띠노가 정열을 다해 사랑했던 20년 동안 한 시도 잊지 않았던 그 여인, 그러나 그 아름다웠던 그녀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했는지 폭삭 늙은 얼굴이었다.

20년 전 콘스딴띠노는 사촌 여동생 메르세데스를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결혼하고자 했으나 근친혼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어머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고 그 이유로 주인공은 고향을 떠난다. 그 사이 메르세데스는 결혼을 했고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두고 있었으며 남편은 사업으로 크게 부자가 되었다. 집으로 초대받은 주인공은 메르세데스의 가족을 만나고 남편 로드리게스의 권유로 그 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녀의 딸 로사리오는 그녀가 젊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의 가족들은 처음 몇 주 동안은 손님으로서 극진히 예우를 다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해진다. 그러나 메르세데스의 딸 로사리오만은 예외였고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를 다정하게 대해준다.

가족들의 무관심과 귀찮아함이 심해지자 콘스딴띠노는 그녀의 가족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집을 떠나겠다고 말하는데 오직 로사리오만 떠나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콘스딴띠노는 로사리오을 위로하기 위해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여관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귀중품을 모두 그녀에게 주면서 자신이 죽으면 로사리오가 모두 간직하라고 말하며 보석보다 중요한 것은 오직 젊음과 아름다움뿐이라고 말한다. 떠나던 콘스딴띠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베란다에서 로사리오가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로사리오는 메르세데스의 젊은 날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마음씨도 다정하다. 그러나 세월은 그에게 로사리오를 사랑할 열정보다 사랑을 분별할 지혜를 주었다. 결국 20년 전 콘스딴띠노의 사랑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깨졌지만 지금은 2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본인 스스로 떠난다.

얼마 전 모 정당 혁신위원장이었던 사람이 청년과의 좌담회를 하면서 “왜 나이 들은 사람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가, 왜 미래가 짧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과 일대일로 똑같이 표결해야 하는가”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되었다. 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하게 해야 한다는 여명비례투표제를 이야기했다가 노인은 물론,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물론 나중에 해명과 사과를 하긴 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을 갖고 있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고는 너무 가볍다.

이 시대의 노인이 누군가. 한국 전쟁을 거쳐 폐허가 되었던 나라에 터를 닦고 독일 간호사로, 광부로, 열사의 중동 사막 건설 노동자로 일해 조국 발전의 기둥을 세웠으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월남전 파병으로 목숨을 바쳤던 분들 아닌가. 그분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나이 듦이란 육신은 노화해 가지만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한 지혜를 물려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부모 없이 나온 자식이 있던가. 기존 세대가 낳고 기르고 가르친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세상을 이끌고 또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그렇게 세대는 계절의 변화처럼 순환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경로효친 사상이 옅어져만 가는 요즘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가왕으로 칭송받으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래 한 소절을 되뇌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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