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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눈을 감고 걷는 체험과 체득의 이야기

[섬진강칼럼] 눈을 감고 걷는 체험과 체득의 이야기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7.0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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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오른발을 들어서 바로 지금 진리를 향하여 즉 그대가 원하는 바를 향하여 한 걸음을 내딛어 나가라는 혜철국사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거북이다
사진 설명 : 오른발을 들어서 바로 지금 진리를 향하여 즉 그대가 원하는 바를 향하여 한 걸음을 내딛어 나가라는 혜철국사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거북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이번에는 맨발로 눈을 감고 걷는 효과에 대한 체험과 권장의 글이다. 본론에 앞서 일러 둘 말은, 최근 내가 날마다 구례읍 봉산을 맨발로 올라 능선을 따라 걷기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효과에 대하여, 쓰고 있는 이런저런 글들에 대하여, 그냥 얻어들은 귀동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젊어서부터 나름 몸으로 체험 체득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 “지리산 호랑이”로 불리며 지리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의 존경을 받던, 진정한 지리산인 노고단 산장지기 함태식(1928년~2013년 4월 14일 별세 향년 86세) 선생이, 당시 20대 후반으로 지리산에 전해오고 있는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이른바 신이 감추어두었다는 전설의 명당(明堂)과 굴(穴)을 찾아 크고 작은 골짜기들을 샅샅이 훑으며, 바람처럼 싸돌아다니던 나에게 지어준 별명이 “지리산 산신령”이었다.

이처럼 젊은 날 지리산에서 체험 체득한 걷기에 대한 지식으로, 1999년 5월의 참혹한 전복사고에서 내가 살아났고, 오늘 봉산을 맨발로 걸어 오르는 원천이 되었는데....

내가 굳이 오래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걷는 운동에 대한 나의 체험과 체득이, 모든 사람들에게 100% 적용되고 옳은 것은 아니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믿고 참고하여 볼만하다는 의미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맨발로 눈을 감고 걷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안전이 보장된 장소에서 100% 눈을 가리거나, 또는 꼭 감고 한 걸음을 내딛어보면, 예민한 사람은 눈을 감고 걸어보기를 권하는 이유를 단박에 깨달아 알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 동서남북 어디로 걸어도 안전이 확보된 운동장 중앙에서, 제자리걸음으로 몇 바퀴를 돈 후, 자신이 눈을 뜨고 왔던 정문을 찾아  한 걸음을 내딛어보면 (방향을 알 수 있는 소리 냄새 바람 빛 등등 아무런 알림 없이,) 굳이 몸의 감각을 살리는 치유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즉 건강한 사람이라도 눈을 감고 걷는 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알 것이다.

특히 내가 날마다 봉산 능선을 눈을 감고 걸어서 오르듯이 (봉산 능선처럼 반드시 안전이 확보된 장소여야 하고 가파르지 않은 살짝 오르막이 좋음,) 그런 조건의 공간에서 눈을 감고 걸어보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부연하면, 일반적인 보폭과 속도로 1,000걸음 10분 안팎의 거리인 봉산 남쪽 능선을 따라 오르는 이름 없는 정자에서 정상인 봉성루까지, 눈을 감고 걷고 있는 내 경우를 보면, 처음엔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자주 눈을 떴지만, 지금은 컨디션이 좋은 경우에는 서너 번 뜨고 정상까지 간다.

문제는 이러한 이유가 자주 걷다 보니 소위 눈 감고도 한다는 말 그대로, 코스에 익숙해진 탓에 눈을 감고 걷는 일이 쉬워진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나의 감각 기능이 그만큼 되살아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래전 불행한 전복사고로 잃어버린 감각과 기능들을 되살리는 재활운동으로 걷기를 하면서, 눈을 감고 걷는 시도를 한 것은, 심청전 심청의 아버지 심봉사의 마음과 그 삶이 어떠했을지, 간접 체험을 해보자는 것으로 장난삼아 했던 것인데, 막상 해보니 마음으로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았고, 그것이 눈을 감고 걷는 운동의 시작이었다.

특히 사람의 오감을 깨우고 살려, 노화로 잃어가는 시력과 발명하는 치매를 비롯한 각종 질환들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은 물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은, 눈을 감고 걷는 행위를, 불교의 핵심사상인 깨달음의 세계로 나가는 공부와 체험으로 본다면, 이보다 더할 수 없는 것으로, 누구든 종교적인 편견을 버리고 하려고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아무 때나 직간접으로 체험 체득하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승과 세 명의 제자가 야밤에 정자에서 대화를 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벌어진 이야기, 삼불야화(三佛夜話)라는 선화(禪話)에 나오는 깨우침의 이야기, 등불은 이미 꺼지고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에서, 법연선사(法演禪師)가 세 명의 제자에게 던진 “각자 한마디씩 말해보라” 즉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살아있는 명답으로 선객들에게 전해오고 있는, 원오극근(圓梧克勤)이 말한 발밑을 살펴본다는 간각하(看脚下)를 직접 체험하여 볼 수 있으며....

금강경(金剛經)의 핵심사상인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을 마음으로 깨달아 실상이 뭔지를 알아채는 것은 물론 마땅히 머무를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여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마다 봉산의 남쪽 능선을 눈을 감고 걷고 있는 내 경우를 보면, 구례군에서 야자수 매트를 깔아놓은 등, 그런대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만약 야자수 매트가 깔려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편하게 걷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눈을 감고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것은, 빠르게 걷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더 많은 땀이 난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어려운 일이다.

안전한 야자수 매트가 정상까지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내 마음에서 느껴지고 몸이 반응하는 것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마다, 오직 바로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중요할 뿐, 내딛는 발이 왼발이냐 오른발이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지나온 길도 의미가 없고 가야 할 길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안전하게 만들어놓은 봉산 능선 숲길이 아니고, 자의적으로 운동 삼아 눈을 감고 걷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산 숲에서 길을 잃은 맹인이라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다급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또는 심청전 심봉사가 위기에 처한 딸 심청을 구해야 하는 일이라 한다면, 지금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상상하여 보면, 눈을 감고 내딛는 한 걸음의 운동이 어떤 의미이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면서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재한 사진은, 내가 오랜 연구 끝에 찾은 혜철국사가 전하는 법으로, 가끔 인용하여 세상에 알리고 있는 동리산 태안사 경내에 있는 혜철국사의 비석(碑石)을 받들고 있는 받침돌인 귀부(龜趺) 즉, 거북이가 허공을 향하여 우측 발톱을 힘차게 들고, 앞으로 나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진실로 쉼 없는 하늘처럼, 한 순간도 현상에 머무르는 바 없이, 끊임없이 자신을 개혁하고, 세상을 개혁하여 나가라는, 국사의 가르침인 무설지설(無說之說) 무법지법(無法之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건대 맨발로 눈을 감고 걷는 이들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오감을 깨우고 살리는 건강한 삶과 함께 무설지설(無說之說) 무법지법(無法之法)을 깨달아 아는 깨달음의 길이 되기를 바란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2023년 7월 5일 박혜범(朴慧梵)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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