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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몽유도원도는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인가?

[섬진강칼럼] 몽유도원도는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인가?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7.17 19:34
  • 수정 2023.07.1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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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안평대군의 친필 제서(題書)와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몽유도원도다.
사진 설명 : 안평대군의 친필 제서(題書)와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몽유도원도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정묘년(丁卯年) 4월 20일 밤 자리에 누우니,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깊은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중략>-- 

이에 가도(可度, 안견(安堅))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옛날부터 일컬어지는 도원이 진실로 이와 같았을까? 뒷날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옛날의 그림을 구하여 나의 꿈과 비교하게 되면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꿈을 꾼 후 3일 그림이 완성되었다. 비해당(匪懈堂)이 매죽헌(梅竹軒)에서 씀, (비해당은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 용(瑢)의 호(號)다.)

사진 설명 : 안평대군의 친필 제서(題書)와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몽유도원도다.

위 내용은, 1447년(세종 29년) 4월 23일 (양력) 5월 7일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학문을 좋아하여 시문(詩文)과 그림에 뛰어났고, 서법(書法)은 매우 기절(奇絶)하여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명필(名筆)로 알려졌으며, 중국의 사신들이 올 때마다 그의 필적을 얻어 가곤 하였다는, 당대 조선 최고의 문인 화가였던 나이 29세의 안평대군이 또 다른 천재 화가인 안견(安堅, 생몰연대 미상)을 불러 자신이 꿈속에서 보았던 도원(桃源)을 그리게 한 후 직접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라는 이름을 짓고 그 내력을 쓴 발문 서두와 말미의 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면, 신분이 세종의 왕자였던 연유로, 전해지고 있는 여러 찬사의 기록들이 조금 과장되었다 하여도, 1447년 (양력) 5월 4일 밤 꿈을 꾸고 (나이가 엇비슷한) 친하게 벗하던 천재 화가 안견을 불러 꿈을 이야기하고 비단에 그리게 한 후 3일 뒤 (5월 7일) 그림이 완성되자. 직접 짓고 쓴 발문과 몽유도원도의 서체를 보면, (사진 참조) 서법(書法)은 매우 기절(奇絶)하여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명필(名筆)이라는 찬사가 결코 허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안평대군이 자신이 꿈속에서 찾아가 보았던 무릉도원을 직접 그리지 않고 안견을 불러 그리게 했느냐는 사유를 추측해보면, 산수화 즉 그림의 실력만큼은 안견이 훨씬 정교하고 뛰어났음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혹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때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덧붙이면, 내가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날을 1447년 5월 7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윤달이라는 기록이 없을뿐더러, 안평대군이 비몽사몽간에 찾아간 무릉도원은 도화(桃花)가 피는 봄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어진 공달 즉 윤달이라면 음력 4월 20일은 양력 6월 3일로 초여름이므로, 도원의 꿈과는 맞지 않거니와, 인간의 심성에서 보면 제아무리 천하의 안평대군일지라도 철 지난 꿈을 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1447년 (세종 29년) 봄날 당대 최고의 천재였던 안평대군과 안견 나이 엇비슷한 두 사람이 합작하여, 비단에 그려놓은 그림 몽유도원도는, 시대의 배경과 인물들의 역사적 면면들 그리고 미술사적 차원에서 보면, 흠잡을 데 없는 명작이고 보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안평대군이 발문 끝에 언급한 “뒷날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옛날의 그림을 구하여 나의 꿈과 비교하게 되면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한 대목이다.

훗날 무슨 말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 안평대군이 576년 후, 구례읍 봉산에서 문이 없는 문을 드나들며 사는, 허허당(虛虛堂)의 허생(虛生)이 한마디 할 것을 안 것은 아니지만, 안평대군의 장담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오늘 내가 의문을 던지는 것은, 아득한 옛날 도연명이 쓴 꿈 이야기 도화원기와 안평대군이 꿈 이야기로 그린 몽유도원도가 아니고, 안평대군의 꿈이다.

역사와 미술사적 가치가 아닌, 그림이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차원인, 제목 그대로 몽유도원도는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이냐는 본질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것이 되기에 하는 말이다.

 발문의 기록에 의하면, 마지막 봄이 가는 5월 5일(대개 6일이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임) 불생불멸의 무릉도원을 믿고 꿈꾸었던 당사자인 안평대군과 안견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안평대군은 자신이 간밤 꿈속에서 찾아가 거닐며 보았던 무릉도원을 3일 내내 이야기하고, 안견은 아무도 쉽게는 가지 못하는 전설의 선계(仙界)인 무릉도원을, 간밤 꿈에서 찾아가 놀았다는 안평대군의 생생한 이야기로 3일 내내 들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하는데….

발문과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은 3일 내내 그 불생불멸의 신들이 산다는 선계(仙界)인 무릉도원을 그림으로 그려 재현하고 있는 감흥과 이따금 서로 주고받는 술에 취하고, 그림을 완성한 7일 밤에는 안평대군은 아무도 보지 못한 도원을 꿈속에서 보았고, 안견은 아무도 그리지 못하는 생생한 도원을 그림으로 재현했다는 가슴 벅찬 기쁨에, 둘이 서로 죽이 맞아 대취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지금쯤은 그때 그 봄날에 마신 술과 흥에서 깨었을 안평대군과 안견 두 사람에게 몽유도원도는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이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지 그게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예를 들어 이것을 21세기 오늘의 현실로 재현하여 누구의 꿈이냐고 따져본다면, 제아무리 불생불멸의 무릉도원을 믿고 꿈꾸었던 두 사람일지라도, 아차 싶을 것이다.

굳이 장자의 꿈이 아니라도, 본래 우리네 사람의 인생은 꿈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실체가 없는 허(虛)인데….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인생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꿈속의 인간인 안평대군이 간밤 자신이 꾼 또 다른 꿈속에서 보았던 무릉도원을, 꿈을 깬 다음 날 또 다른 꿈속의 인간인 안견을 불러 이야기하고, 또 다른 꿈을 꾸며 사는 꿈속의 인간인 안견은 타인인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또 다른 꿈속의 인간, 그것도 이미 오래전에 가고 없는 꿈속의 도연명(陶淵明·365~427)이 꾼 꿈속의 이야기인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바탕으로 그린 것이므로, 정작 완성된 몽유도원도는 누구의 꿈을 그린 것이냐는 의문이고 물음이다.

벌써 며칠째인가? 글을 쓰고 있는 잠시 창문 밖에서 요란한 소리로 퍼붓고 있는 장맛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면서, 온 나라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장맛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로남불로 부패할 대로 부패해버린 패거리 정치이고,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악한 정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 당 저 당 누구누구 가릴 것 없이, 정치하는 사람들 특히 국회의원이라는 개들의 앞에 맹목적으로 줄서기를 하면서 맹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저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는 개처럼 그런 개로 짖어대며 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진실로 누구의 꿈속에서 짖고 있는 개냐는 것이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2023년 7월 17일 박혜범(朴慧梵)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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