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섬진강칼럼] 노자와 맹자의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보다도 못한 우매한 국민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들이다

[섬진강칼럼] 노자와 맹자의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보다도 못한 우매한 국민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들이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7.13 22:22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설명 : 장맛비 오락가락하는 길에서 죽어 널브러진 비둘기 한 마리가 망조가 든 우리들 대한민국을 경고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진 설명 : 장맛비 오락가락하는 길에서 죽어 널브러진 비둘기 한 마리가 망조가 든 우리들 대한민국을 경고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대체로 한문으로 쓴 옛 문헌의 기록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은,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라. 크게 엇나가지만 않는다면 대체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만약 옛 기록에 적시된 사안의 정확한 상황과 해석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숙고하며 살펴야 할 것은, 사건 당시의 시대와 문화는 물론 기록한 사람이 가지는 신념과 문화적 또는 학문적 사고와 성향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로 한정하여, 똑같은 문장의 시구(詩句) 또는 단어가 있다면, 일반적으로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이것을 조정의 일을 기록하는 사관이 썼느냐, 공부하는 유생이 썼느냐. 승려가 썼느냐. 기생이 썼느냐, 또는 젊은이가 썼느냐 늙은이가 썼느냐에 따라서, 의미는 물론 해석이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엄혹한 시대였던 조선시대의 기록들을, 문명한 오늘날의 시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그가 누구이던 자신의 할머니를 이해하려면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와 문화는 물론 삶의 방식을 이해해야 하고, 어머니를 이해하려면 어머니가 살아온 시대와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필수라는 것이다.

옛 사람 또는 옛 일을 알고 싶으면, 오늘을 살고 있는 자신의 시각으로, 옛날을 보고 평가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100% 실패한다.

엊그제 노자의 도덕경을 빌어 썩어빠진 한국의 정치현실을 비판한 “여야 정치인들은 잡것들 개잡놈들이고 개잡년들이라는 의미다.” 제하의 글을 두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해명을 한다면 짚으로 만든 개 또는 개새끼를 뜻하는 추구(芻狗)를 오늘 우리 시대의 문화와 시각으로 해석한 것일 뿐 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해석이 그렇다 하여도 점잖은 문구를 인용할 수도 있음을 잘 안다.

문제는 털이 없는 조그만 개새끼를 뜻하는 구(狗)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인데, 역사를 보면 본래 개를 뜻하는 견(犬)이 있었고, 후에 털이 없는 개새끼를 뜻하는 구(狗)가 나온 것이므로, 글자가 생겨난 원인을 살펴보면, 추구(芻狗)는 당시나 지금이나 풀 또는 짚으로 만든 개새끼가 정확한 해석이기에, 그 연장선상에서 쓴 개잡놈들과 개잡년들은 욕이 아니며 욕이라고 할 수도 없다.

부연하면, 털이 없는 개새끼를 뜻하는 이 추구(芻狗)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을 추측하여 보면, 개를 길러 잡아먹으며 제물로 바치는 원시문화가 변하여, 짚으로 만들어 제상에 올리는 문화로 바뀌면서, 별개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무엇이 어쨌건 이 개새끼라는 의미의 추구(芻狗)를 욕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문화로 욕이 될 뿐, 해석을 함에 있어서는, 당시나 지금이나 욕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론은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정당인들 정치인들에게는 개새끼들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국민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민심이기에, 개잡놈들이고 개잡년들이라는 표현은, 그나마 사람을 뜻하는 놈과 년을 넣어 대접을 한 것이므로, 욕이 아니며 욕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하나 진실로 안타까운 것은, 노자가 성인불인(聖人不仁) 이백성위추구(以百姓為芻狗)라는 글을 남기고 떠난 후, 맹자(孟子)가 왕에게 이르기를, 임금이 신하들을 보기를 자신의 팔다리와 같이 여긴다면, 신하들 또한 군주를 보기를 자기의 생명같이 여길 것이고, 임금이 신하들을 자기가 기르는 개와 말로 본다면 신하들 역시 임금을 저잣거리 행인으로 볼 것이라고 하였는데,.....

오늘 문명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태를 보면, 국민인 자신들을 상대로, 날마다 악의적인 편 가르기를 하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이른바 국민들을 똥개로 취급을 하면서, 똥개 훈련으로 지새고 있는 저 사악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을 신처럼 받들면서 미치고 환장을 하고 있는데......

장담하건대 오늘 우리들이 저지르고 있는 이 어리석음의 대가는 우리들 자신들과 자식들에게 혹독한 형벌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옛 사람이 말한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개새끼들로 본다는 추구(芻狗)는 양반이고, 노자와 맹자의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보다도 못한 우매한 국민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들이다.

긴 말이 필요 없이, 일전에 언급했던 조선판 섹스 스캔들인 30년 면벽참선이 헛된 거짓이었다는 황진이가 늘 떠들고 다녔다는 지족선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옛 문헌의 기록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해석에 따라서 상황과 진실이 달라질 수 있음을, 잘 알 수가 있는데, 다음은 그 기록이다.

매언지족노선(每言知足老禪) 삼십년면벽(三十年面壁) 역위아소괴(亦爲我所壞) 맨날 황진이가 소문내고 다녔다는 이 기록의 진실 여부는 따질 것 없이, 끝 문장인 역위아소괴(亦爲我所壞)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30년 면벽참선을 했다는 지족이라는 늙은 노승 역시 내가 그 처소에서 무너뜨렸다고 할 것인가, 내가 그를 파계시켰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처소에서 자빠뜨렸다고 할 거냐는 것이다.

재미삼아 좀 더 적극적이면서 자극적인 해석으로, 끝의 괴(壞)를 순수한 우리말로 해석하여, 이른바 조선의 이름난 사내들을 사냥하고 다녔다는 황진이가 선사를 홀려 자빠뜨렸다는 것인지, 아니면 선사가 황진이에게 홀려 (황진이의 품으로) 자빠졌다는 것인지, 그게 그거 같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달라지고 이야기는 재밌어 진다. 로맨스가 되기도 하고 야설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당대 섹스의 심벌이었고 적극적인 섹스로 전국의 뭇 사내들을 사냥하고 다녔고, 스스로 말했듯이 30년 면벽으로 소문난 늙은 선사까지 표적을 삼아 그의 처소로 쳐들어간 것이 황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기록의 해석은 물론 황진이가 어떤 여인이었는지, 당대에 용인된 남녀의 섹스문화가 어떠하였고, 미화된 황진이가 아닌 진짜 황진이를 알 수 있기에, 저마다 나름의 해석을 해 보라는 것이다.

결론은 노자가 말한 바른 정치의 도를 깨우치는, 짚으로 만든 개새끼라는 추구(芻狗)의 해석이었고 연장선상이었으므로 욕이 아닐뿐더러, 온 나라 국민들이 익히 알다시피 여야 국회의원들을 개새끼들이라고 하는 것이 민심이니, 틀린 말이 아니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2023년 7월 13일 박혜범(朴慧梵)씀

 

저작권자 © 서울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