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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보는 삶과 죽음의 의미

[문학칼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보는 삶과 죽음의 의미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2.11.2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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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모든 위선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짜 삶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1886년에 발표된 중편 소설로 죽음 앞에 선 한 남자의 이야기로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부패한 시대상과 인간 실존에 대한 정교한 해부와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긴 톨스토이의 걸작이다.

1880년대 항소법원 판사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가 신문에 났다. ​이반 일리치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특별보좌관과 검사를 거처 지금의 항소법원 판사에 이르기까지 무난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삶이기도 했다. 항소법원 판사로 승진하면서 지금의 저택으로 이사했는데, 인테리어를 하던 어느 날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여주려고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지면서 옆구리를 다친다. 조금 아프긴 했지만 이내 금방 괜찮아 졌고 이내 잊어버렸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상처는 그를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몰아넣는 기폭제가 된다. 원인 모를 병을 앓으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동안 직장 동료들은 그의 고통과 두려움을 가벼운 장난처럼 대하여 가족조차도 그를 위해 진심으로 마음 아파해주지 않는다. 이반 일리치가 원한 것은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보듯 가엾게 여겨주는 것이었고, 아이를 안고 달래듯 다정하게 다독여주고 입 맞춰주고 그를 위해 울어주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불쌍히 여겨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반 일리치에게 그는 병이 들었을 뿐 죽는 것이 아니며 안정을 취하고 치료하면 훨씬 좋아질 거라는 거짓말만 할 뿐이다. 이반 일리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사람들의 거짓 위로와 거짓 동정이었다.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은 이반 일리치가 죽고 나서도 여전했다. 그의 동료들은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죽음과 가져올 자신과 지인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가 하면 죽은 사람은 자신이 아닌 바로 이반 일리치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장례식에 참석하고 미망인을 위로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남았다는 생각을 하고 동료들과 모여 카드놀이 할 계획을 궁리하기도 한다. 이반 일리치의 아내 역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연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에만 골몰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가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는 자기 합리화로 인간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극심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이반 일리치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의 진심어린 걱정과 위로가 아니었을까. 집사 게라심과 시종 표도르는 일리치의 병구완을 극진히 하고 아들만이 극도로 비통해한다. 자신의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하리라 생각했던 아내와 지인들은 허울뿐이다.

스스로 삶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고 믿었던 이반 일리치가 죽음 앞에서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통해 톨스토이는 죽음을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지, 모든 위선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인간임을 말해주고 있다. 삶과 죽음의 인간사, 치열했던 지난 내 삶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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