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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구례읍 카페 “허밍”에서 본 실상,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

[섬진강칼럼] 구례읍 카페 “허밍”에서 본 실상,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5.05 21:39
  • 수정 2022.05.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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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길가는 사람을 유혹하고 있는 구례읍 오거리 카페 “허밍” 간판과 카페 주인의 철학이 담긴 글귀다.
사진 설명 : 길가는 사람을 유혹하고 있는 구례읍 오거리 카페 “허밍” 간판과 카페 주인의 철학이 담긴 글귀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오늘 오전 이따금 오며가며 지나칠 때마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폴 고갱”(1850-1903년)의 글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유혹하던 길가 허름한 카페 “허밍”에 들어가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평소 지날 때마다 이 지리산 구례읍에도 “폴 고갱”에게 반해서 사는 사람이 있나보다 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때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오전 처음 들어가 본 카페 주인과 카페의 첫인상은 의외였다.

얼핏 보아 특별하게 화장을 하거나 꾸밈이 없는 중년의 여주인은 “폴 고갱”이 사랑한 원시의 섬 타히티 여인들을 보는 듯, 어디서나 만나는 지리산 구례의 아낙네였고,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흔히 손바닥만 한 공간에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기대했던 “폴 고갱”의 작품을 복사한 싸구려 액자 한 점이 없었다.

다만 정면 허름한 벽에 화가 최영숙의 작품 한 점을 걸어놓았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말 그대로 촌스러운 소박한 공간 그대로가 멋스러움이고 작품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매번 사람들로 붐비는 번잡하고 비좁은 오거리 청자다방에 염치없이 앉아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참 미안하고 민망한 일이었는데, 카페 “허밍”은 오거리 버스 정류장과는 지척이라, 가끔 길게 남은 버스 시간을 기다리면서, 맘 편하게 차 한 잔을 마시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3천원 선불을 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마시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껴보는데, 길가는 나를 유혹하였던 기대했던 고갱의 전용 공간이 아니어서, 약간 실망스럽긴 하였지만, 게재한 사진에서 보듯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라는 단문의 글귀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가게 밖 길가에 써 놓은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폴 고갱”의 눈에 보이는 것을 거부하고 뛰어넘는 철학과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라는 카페 주인의 생활철학이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실망했던 카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흔히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흔한 말이지만, 결코 아무나 쉽게는 하지 못하는 일이 누구처럼이 아닌 내가 나답게 사는 일이고, 인생을 깨우치는 진리의 가르침인데, 저 진리의 말을 깨닫고 행하고 있는 얼핏 보아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카페 주인이 달리 보였다.

시대와 언어는 달라도,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한 존재라며, 인간 개인의 존엄을 깨우치는 진리의 말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아니더라도, 서산대사가 제자인 사명대사를 한방에 깨우쳤던 가르침의 교육이며, 내가 하나 뿐인 딸이 말귀를 알아듣고 사물을 구분하기 시작할 때부터, 만사를 제쳐두고 가장 중점을 두었던 철학적 사고를, 허름한 카페에서 보고 있으려니, 카페 주인이 달리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은 물론 이름 모를 모든 벌레들과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자연에서 자연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그 자체로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예를 들어 사람을 꽃으로 비유한다면, 사람 개인의 존재는 날마다 새롭게 피는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아름다운 꽃이기에, 날마다 오는 하루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피는 아름다운 꽃들이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누구처럼이 아닌 바로 자아를 깨달아 이른바 내가 나답게 사는 일이 시작이며 완성이기에 하는 말이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옛 사람들이 전해오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서 날마다 맞이하는 하루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시간이고 공간이기에, 날마다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들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피는 아름다운 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촌부의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결론을 지으면,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화가 “폴 고갱”의 고뇌와 철학이 발현된 그 처음이, 누구처럼이 아닌 고갱이 고갱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었기에, 카페 주인이야말로 진실로 고갱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게재한 사진은 다 비운 커피 잔을 일부러 들고 계산대로 가서, 카페 주인의 허락을 받고 현장 그대로 촬영한, 촌부가 반한 글귀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폴 고갱의 유혹에 홀려 카페에 들어갔다가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를 본 것은, 이른바 허상을 따라 들어갔다가 실상을 본 것이니, 오늘 하루도 나는 내가 나답게 살았다는 생각이다.

강물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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