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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종일 잔뜩 흐린 봄날 오후 마음껏 흔들리며 쓰는 글

[섬진강칼럼] 종일 잔뜩 흐린 봄날 오후 마음껏 흔들리며 쓰는 글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4.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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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한 사진은 내가 이 강에 앉아서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겨우 살려낸 하얀 동백꽃이다
게재한 사진은 내가 이 강에 앉아서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겨우 살려낸 하얀 동백꽃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어제 구례읍에 나갔다가, 이따금 만나는 이들과 나와 구례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생전 처음 노래방에 가서 연타로 100점을 맞았던 이야기를 했었다.

종일 잔뜩 흐린 봄날 오후, 어제 내게 노래를 잘 부를 것 같지 않다면서 웃던 이들이 생각나, 그때 생각지도 못한 100점에 나도 놀랐었고 사람들이 놀랐었던 그 노래를 검색하여 다시 들으며, 그 시절을 함께했었던 기억 속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흥에 젖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그때 그 기억 속에 있는 반가운 아이에게서 안부의 전화가 왔다.

90년대 초 그때 그 아이가 그때의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50이 다된 중년의 여인이 되어서, 스승의 달 5월이 되었다며, 오래도록 건강하시라는 안부의 인사를 전해왔는데, 가슴 뭉클한 목소리를 듣고 보니, 왜 하필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 사는 일들이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다.

당시 12월 크리스마스가 지난 어느 날 난생 처음 지금 구례농협 앞 어느 건물 지하실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노래방엘 갔었고, 가서 아이들의 권유로 처음 부른 곡이 1986년 문주란이 리메이크한 노래 “백치 아다다”였으며, 그 노래가 팡파르를 울리는 100점이었고, 놀란 아이들의 앙코르로 다시 부른 노래가 1987년 임주리가 부른 “립스틱 짙게 바르고”였는데, 이것마저도 연타로 100점이 나와서 함께 갔었던 일행들로부터 시샘 아닌 시샘을 받은 일이 있었다.

부연하면, 내 인생에서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노래방에 간 기억을 모두 합하면, 지금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대략 20회는 못될 것 같은데(?) 내가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난생 처음 간 노래방에서 처음 부른 노래였고,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타로 100점을 받은 탓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때 그날 밤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떠나는 아이들을 위한 보호자 겸 저녁 회식은 물론 찻값과 노래방 등 일체의 비용을 지불하는 물주로 갔었고,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날 밤 노래방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부른 문주란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였다.

그때 내가 난생 처음 노래방에 가서 처음 부른 노래가 문주란의 “백치 아다다”였던 것은, 평소 흥얼거리는 이른바 18번이기도 하였지만, 노래방에 대하여 뭐가 뭔지도 모르는 탓에, 그냥 아이들이 부른 문주란의 노래를 따라 생각난 것이 그것뿐이었다는 뭐 그런 의미였을 뿐이었다.

이어 앙코르 박수를 받으며 부른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내 인생에서 모질게도 춥기만 하였던 88년 그 겨울날, 헤어지면 서로 잊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내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내 운명의 첫사랑 그녀를 위하여, 가끔 한잔 술에 취하면 혼자서 흥얼거리는 노래였는데, 여하튼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것도 연타로 100점을 맞았다. (이후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이 노래들을 불러보았지만, 한 번도 100점을 맞은 일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득한 기억 속에서 온 뜻밖의 전화 한 통에 한껏 흔들리고 있는 내 감정을 따라 글을 쓰다 보니, 기억 속의 기억들이 나를 착각에 빠지게 하고 있고, 나는 지금 그 기억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생각이 난다. 그 무렵 구례고등학교 총각 선생님으로 인기를 누리며, 나와는 친하게 벗하며 지냈던 김정현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나이 차이는 있어도, 서로 통하는 연유로, 가끔 구례읍 봉산 숲에서 밤을 새며, 봉산이 취하는지, 밤이 취하는지, 아니면 둘 가운데 누가 먼저 취하는지, 말도 안 되는 객기를 부리며 지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껏 취했을 때, 계용묵 선생의 단편소설 “백치 아다다”의 주인공 벙어리 여인 아다다는 진실로 진실한 사랑을 원했었고, 못난 그놈은 단순히 여자를 원했던 차이였는데, 그 차이를 아느냐고, 총각 선생은 절대로 이해를 못할 거라며 웃었던 일이...

그리고 총각이었던 김정현 선생님도 좋아했던 노래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함께 웅얼거리며 내 경험을 빌어서 했던 말.....

돌이켜보면, 모질게도 춥기만 했었던 88년 그 겨울날, 우리 서로 이제는 그만 헤어져야 한다고,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그리고 이제 가면 잊겠다고 맹세하고 절규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살아있는 한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글쎄 그녀도 나처럼 그걸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깨달고 가슴을 칠 때, 그녀는 바다보다 더 먼 땅 미국으로 가버렸다고......

아마도 “립스틱 짙게 바르고”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은 물론 가수도 지금 내가 절감하고 있는 것을 체험이든 감정이든 알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저리 부를 수 없는 것이라고, 그리고 머잖아 이 노래가 대한민국 사내들의 가슴을 울려버릴 거라고 했었는데, 예측대로 몇 년 후 대유행을 했었다.

34년 전 모질게도 춥기만 했었던 88년 그 겨울날 잊지 못할 인연을 잊기 위해서 바다보다 먼 땅 미국으로 가서 다시는 소식이 없는 그녀가 생각이 난다.

생각해보면 “예순”이라는 그녀의 이름 그대로, 이제는 나이 예순이 넘어 지금의 나만치나 늙었을 것인데, 흰머리로 늙었을 그녀가 상상은 되지만, 안타깝게도 내 기억 속에 있는 그녀는, 언제나 마지막 헤어진 그 겨울날의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정보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 우연히 미국 펜실베이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을 듣고 가슴을 쳤었는데, 그때 내가 어떻게든 그녀를 찾지 않은 것은, 만약 오늘 이후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인연이 있다면, 그날이 언제일지는 몰라도, 그 인연 속에서 만나야 한다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후회만 가득이다.

게재한 사진은 내가 이 강에 앉아서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겨우 살려낸 하얀 동백꽃이다. 처음 와서 붉은 홑 동백꽃을 사다 뜰에 심었다 실패하고 사람들이 버린 동백을 어떻게든 살리자며 살렸고, 며칠 전 드디어 하얀 꽃을 피워냈는데, “비밀스런 사랑”이라는 꽃말 그대로 마음의 울림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며, 만약 지금이라도 신이 허락한다면 이 하얀 동백꽃을 바다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은데, 마음과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월이 안타깝기만 하다.

종일 잔뜩 흐린 봄날 오후, 온갖 기억 속의 감정에 흔들리고 있는 내 심사는, 그냥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한데, 한 잔이라 마시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겨우 간신히 버티며 참고 있다.

지금 꾹꾹 누르고 눌러 간신히 참고 있는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그 순간 그걸 핑계로 내 눈물은 넘치는 강물이 돼버리고,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은 깊은 바다가 되어서, 모든 것들을 침몰시켜버릴 것만 같아서, 그런 내가 보기 싫어서 참고 있으려니, 가뜩이나 회색빛 하늘이 더욱 흐리기만 하고, 불어대는 봄바람은 뼈가 시리도록 차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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