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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강변 풀숲에 핀 찔레꽃을 보면서

[섬진강칼럼] 강변 풀숲에 핀 찔레꽃을 보면서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5.1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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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찔레꽃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오늘 오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강을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잠시, 길가 강변 풀숲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찔레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5월의 햇볕에 반짝이고 있는 그 모습이, 마치 젊은 날 가능한 작고 잘게 조각조각 찢어서, 길가 풀숲에 던져버린 연애편지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하고 웃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시절 정신없이 쏟아냈던 그 많은 단어들이, 또렷이 생각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분위기는 참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낯간지러운 내용들이었고.....

젊은 날 밤을 새며 눈보다 더 흰 새하얀 편지지에다,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열정과 보고 싶은 마음을 글로 쓰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구겨서 던져버리고, 찢어버린 편지지가 몇 장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 대충 생각해도 두꺼운 편지지 수십 권은 되지 않을까싶다.

특히 내 경우에는 간밤에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써놓은 편지를, 아침을 먹고 우체국으로 나가 부치기 전에, 반드시 다시 읽어보고 밀봉하는 버릇이 있는 탓에, 어떤 날에 쓴 편지는 너무 부끄러워서, 또 어떤 날에 쓴 편지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또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차마 부칠 수가 없어서 끝내 부치지 못하고, 힘을 준 손톱 끝이 아플 정도로, 밤을 새며 애써 쓴 연애편지를 가능한 작고 잘게 조각조각 찢어서 길가 풀숲에 던져버리기 일쑤였었는데......

강을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내 눈에 보이고 있는 한 무더기 하얗게 핀 찔레꽃이, 까마득한 젊은 날의 기억 속에 있는, 작고 잘게 조각조각 찢어서 던져버린 연애편지처럼 보이고, 찔레꽃 향기는 그 시절 첫사랑 그녀의 체취처럼 느껴져서, 느낌 그대로 얼른 다가가서 스마트폰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오전에 스마트폰에 담아 저장해 둔 잊고 있던 찔레꽃 사진을 다시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처음 오전에 보았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면, 어디서 찔러오는지도 모르게 찔러오는 찔레꽃 가시처럼 내 마음이 아프기만 하고, 쓸쓸한 기억만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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