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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를 위하여 쓰는 글

[섬진강칼럼]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를 위하여 쓰는 글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1.12.23 23:17
  • 수정 2021.12.23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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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역사의 기록에 처음 나오는 구례(求禮)의 행정 명칭과 지금의 구례가 의미하는 것과, 역사 속에서 그리고 문화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대단히 놀라운 것으로 전국의 지명 가운데 이만한 것은 사실상 없는데, 다음과 같다.

본래 백제 때에는 곡성군(谷城郡) 속현으로 구차례현(仇次禮縣)이라 하였고 통일신라 이후 757년 구례현(求禮縣)으로 개칭하여 오다 1449 연산군 5년 사람들이 나라에서 금지한 도참을 보고 연구했다하여(당시에는 도참서를 보거나 연구하는 것 자체가 역모에 해당되었음.) 구례현을 폐했다가, 1507년 중종(中宗) 2년에 복현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데.......

구례(求禮)가 처음 기록에 나오는 이름인 구차례현(仇次禮縣)의 의미를 풀어보면, 사람들이 원수 구(仇)를 착각하고 잘못 해석하는 연유로, 여러 가지 오해들을 하고 있는데, 이는 구(仇) 자가 원수를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의미도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탓으로, 해석을 하면 성인군자들이 예(禮) 즉 도리를 구하는 고을이 정답이다.

이것을 누구나 알기 쉬운 순수한 우리말로 풀어보면, 군자(君子) 즉 임금이 나라를 잘 살게 하고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 선비와 바른 도리 즉 사람과 도(道)를 구하는 고을이라는 의미가, 유교사상과 한자문화가 결합하면서, 구차례현(仇次禮縣)으로 표기된 것이며, 통일신라 이후 757년 지금의 구례현(求禮縣)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는 임금이 도리를 구하는 고을을, 도리를 구하는 고을로 압축한 것이다.

한마디로 구례(求禮) 군자가 즉 “나라의 임금이 도리를 구하는 고을”이라는 의미가, 통일신라 후 도리를 구하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을 알기 쉬운 역사의 기록으로 살펴보면, 이것이 바로 지리산(智異山)이며, 법화사상의 핵심인 화삼귀일(會三歸一)의 도를 행하여, 고려를 창업 왕이 된 것이 왕건이었고, (고려사와 송광사지에 기록되어 있음,) 이성계가 여기 지리산 구례 바위굴에서 비결을 얻어 왕이 되었으며, 흔히 이성계가 무너지는 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나왔다는 꿈의 해몽이 구례 오산 약사여래가 제시하고 있는 3승1승의 변형이다.

태종 9년(1409) 윤 4월 13일, 이성계 무덤인 건원릉(健元陵)에 세운 비문(碑文)을 보면,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금척(金尺)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것을 주면서 말하기를,(마이산 산신을 뜻하며 기록이 있음.) ‘공(公)은 마땅히 이것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잡으리라.’ 하였으니, 하(夏)나라의 현규(玄圭)와 주(周)나라의 꿈과 동부(同符)하다고 하겠다. 또 어떤 이인(異人)이 대문에 와서 글을 바치며 이르기를, ‘지리산(智異山) 암석(巖石) 가운데서 얻은 것이다.’ 하였는데, 거기에는, ‘목자(木子)가 다시 삼한(三韓)을 바로잡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을 시켜 나가서 맞이하게 하였더니,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구례군 문척면(文尺面)의 지명인 문척(文尺)과 금척(金尺)은 절대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같은 의미로 보면 됨)

여기서 말하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이 되는 신화의 창조에 등장하는 이인(異人)의 이야기는, 태조 왕건으로 하여금 고려를 창업하게 한 도선사(道詵寺 현, 사성암) 도선국사 비문의 기록과 도선국사가 왕륭을 찾아가서 왕건의 탄생을 예언한 이야기와 똑같은데, 일반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만, 여기서는 무궁한 지혜와 진리의 땅 지리산(智異山)과 같은 것으로, 한마디로 지리산의 지리(智異)에 통달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알기 쉽게 지리산 산신령 정도로 이해하면 됨) 

중요한 것은 오랜 옛날 삼한의 시대부터 구례가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를 구하고, 그 도리를 전하여 널리 행하는 땅이며, 정치적으로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두 왕조의 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구례였음을 알 수가 있다.(정사와 야사에 입증할 자료들은 많다.)

대표적으로 이러한 역사가 잘 전해지고 있는 것이, 호남지방 모든 군현의 지명을 가사로 만든, 저 유명한 단가(短歌) 호남가(湖南歌)에 잘 나타나 있는데, 다음은 이에 관한 대목이다.

“곡성(谷城)의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닌가.”

대대로 좋은 성군(聖君)의 정치로 나라와 백성들이 길이 태평하기를 바라는 왕조를 찬양하는, 위 호남지방 군현의 지명을 가사로 만든 호남가 가운데 구례의 대목을 쉬운 우리말로 해석하면, .....

“곡성(谷城) =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선비들이, 구례(求禮) = 바른 도리를 구하여 흥덕(興德) =널리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니, 부안제가(扶安齊家) = 이것이 바로 백성들이 서로 화합하며 안락하고 즐거운 나라다.”는 뜻으로, 즉 이러 이러한 연유로 바로 지금이 태평성대라는 의미인데, 한마디로 조선 왕실에 바치는 정치적 찬양가로 보면 된다.

명심할 것은, 여기서 흥덕(興德)의 덕(德)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사람다움 즉 도리와 인격의 완성으로 보아야 하고, 제가(齊家)의 가(家)는 나라로 보는 것이 왕조를 찬양하는 호남가 맥락에 부합하여, 촌부 나름 해석을 하였는데, 사람마다 지명을 가사로 사용한 호남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주제인 구례(求禮)의 본뜻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풍수사상 즉, 전래하는 천신숭배사상이 하나의 도(道)와 학문과 문화로 정립된 것이 지리산 구례이고, 지리산에는 도참과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두렵고 무서운 불문율의 경고가 있으며,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지자체 일들에 관하여, 다시는 관여하는 글을 쓰지 않기로 맹세를 한 촌부가, 스스로 한 약속을 깨고, 봉산의 난개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다음과 같다.

(불의를 보거나 알면서도) 눈이 있음에도 보고도 말하지 않은 자는, 그 두 눈을 멀게 할 것이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않은 자는, 그 입을 봉하여 벙어리로 만들 것이고, 뻔히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자는 3대에 걸쳐 패가망신시킨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부연하면, 구례의 자랑이며 자긍심 가운데 하나인, 나라가 망하던 구한말 당시 매천 황현 선생이 글을 배운 선비의 도리를 다하겠다면 스스로 자결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불문율로 전해지는 이러한 정신문화의 사고가 바탕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꼭 믿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누구라고 인적사항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나이든 구례 사람들이 훤히 알 만한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 지리산을 함부로 훼손하다 생목숨이 끊어지는 비명횡사를 당하거나, 비참하게 죽었거나, 망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음을 익히 잘 알 것이다.

땅이 무슨 조화를 부려 사람의 일들을 좌지우지하겠는가마는, 이 땅이라는 것이 역사와 문화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함부로 땅을 훼손하면, 특히 산을 훼손하면, 반드시 응징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산을 잘못 건들면, 산사태 등 재앙을 당하는 것은 필연이고, 본질이 훼손되어 세상의 외면을 받음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치이며, 이것이 자연이 응징하는 벌이며, 사람 자신이 스스로 파는 자신의 무덤이고, 반드시 받는 피할 수 없는 업보다.

게재한 사진에서 보듯, 작금 군민들 몰래 구례군이 훼손해버린, 구례읍 봉산(鳳山)의 난개발을 두고, 구례읍 주민들은 물론 생각이 있는 군민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역사적 문화적 차원에서, 봉산의 존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보복을 당하는 각오를 하고 글을 쓴 보람을 느끼며, 봉산을 지키기 위하여 뜻을 모으고 있는, 구례 군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알기 쉽게 구례 여중에서 순복음 교회까지, 일직선으로 대략 (정확한 수치는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음) 높이 7미터, 폭 50미터, 길이 250미터로, 봉산의 밑동을 L자 형으로 파헤쳐, 봉산을 언제고 산사태가 상존하는 재앙의 산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의 상식을 벗어난 구례군의 끔찍한 난개발에서 보듯......

앞으로 문제는 봉산을 어떤 가치로 볼 것이며, 개발과 보호의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고, 특히 이번의 사례에서 보듯, 선출된 군수와 부패한 공무원들의 작당으로부터, 천혜의 조건을 갖춘 구례의 자연환경을 지켜내면서, 길이 보호 보존하는 문제는 온전히 구례 군민들의 몫이며,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인데.......

앞으로 어떤 군수가 선출되어 무슨 작당을 하던, 군민들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오래전부터 구례군이 온 나라 국민들을 향하여,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이며, 이 표어는 사진에서 보듯, 구례읍 초입에 있는 군청 앞 로터리에 크게 홍보하고 있으며, 구례군에서 발간하는 크고 작은 모든 홍보물에 사용하고 있으며 구례군 곳곳에 입간판으로 써 붙여 놓은 것이 구례군인데, 이 군 공무원들이 획책하는 각종 사업들이 구례군의 슬로건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옛사람이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한 뜻이 무엇이겠는가? 군민들의 인화를 헤치고 구례읍 봉산을 산사태가 상존하는 재앙의 산으로 만들어버린 공무원들과 군수는 반드시 응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례 군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꼭 봉산이 아니더라도 산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절개해버린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세상 어떤 토목건축 학자들을 불러다 세워도 고개를 흔들 일이고, 구례중앙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일을 시켜도, 저 따위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사실이 이러함으로, 중앙정부 감사를 청구하여, 몇몇 활쏘기를 취미와 운동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19억이라는 혈세를 사용하여, 산을 이렇게 절개해도 되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그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숨은 의도는 없었었는지를 가려, 처음 입안한 말단 기획자부터 결재라인에 있는 모든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고, 필요하다면 군수 낙선 운동이라도 벌여서, 구례 군민들의 뜻을 확실하게 하는 것만이, 봉산을 살리고 지리산과 구례를 살리는 일이기에, 뜻있는 군민들의 분명하고 확실한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제아무리 하늘이 베푸는 아름다운 산과 강과 자연이 있다 해도, 사람의 인화(人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이 고통을 받는 사람의 지옥이 될 뿐이기에, 구례의 자연환경과 문화는 구례 군민들이 지켜야 하고, 아마도 머지않은 훗날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존되는 미래의 구례에 대한 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땅이 되고, 제일 살기 좋은 땅이 될 것이기에, 오늘의 불의를 반드시 응징하여, 구례의 미래를 지켜 가기를 바란다.

섬진강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2021년 12월 23일 박혜범 씀

사진 설명 : 구례군 슬로건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와 끔찍하게 파헤쳐진 봉산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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