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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엄동설한에 다시 불러보는 봉산단가(鳳山短歌)

[섬진강칼럼] 엄동설한에 다시 불러보는 봉산단가(鳳山短歌)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1.12.2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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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구례의 상징인 붉은 산수유 열매다.
사진 설명 : 구례의 상징인 붉은 산수유 열매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어제 촌부가 논한 구례군과 곡성군의 역사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 정리하면, 지금의 곡성군은 백제 당시 욕내군(欲乃郡)이었고, 별칭으로 욕천군(浴川郡)이라 하였으며, 옛 곡성군사를 기록한 책의 이름을, 욕천지(浴川誌)라 하였는데, 처음 욕천군 관아가 자리했던 죽곡면 당동리 위치를 보면, 보성강과 섬진강 두 강물이 합하는 압록(鴨綠)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을임을 알 수가 있다.(구례와 공유하고 있는 압록에 관한 역사와 지리의 풍수는 생략함)

통일신라 후 757년, 강을 중심으로 하는 욕천(浴川)이 산을 중심으로 하는 곡성(谷城)으로 개칭되면서, 구례를 속현으로 두었으며, 삼한시대 여러 소국의 연합이었던 마한(馬韓)의 어떤 정치세력이 어떻게 존재했는지 알 수 없고, 백제 당시 기록 또한 전무하여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지명과 행정이 함께 이어오는 관례로 보거나, 지리적으로 처음 땅이 생긴 때부터, 같은 지역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은 물론 풍수사상으로 보아서, 구차례현이 욕내군의 속현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고, 이것이 곡성과 구례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다른 증거는, 마한과 백제 당시 중국과 일본의 사람들이 섬진강을 통해서 교역을 하였으며, 백제의 남하 이전에 (259년 ~ 307년) 법화사상이 섬진강을 통해 곡성으로 처음 유입된 기록이 있음으로,(기록으로는 최초) 구례 즉 구차례현과 곡성 즉 욕내군은 백제 이전 오랜 옛날부터 불가분의 관계로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역사의 기록이 어떻다 하여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논하는 글 자체가, 구례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기술하는 것이고, 특히 호남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므로, 별 의미 없는 욕내군의 설명을 생략하고, 편의상 통칭 백제 당시부터 곡성군 속현이라 하였음을 밝힌다.(지적은 맞지만 사실상 시빗거리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 구례의 봉산(鳳山)이 왜 그토록 중요한 존재인지를 입증하여 주는 것이, 전북 남원시 자료인데, 남원시의 옛 이름이 용성(龍城)에서 대방군(帶方郡)이 되었고, 남원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서의 이름을 용성지(龍城誌)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해석을 하면, 용성(龍城)은 풍수지리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용이 지키고 보호하는 고을이라는 뜻이며, 이른바 전설의 비기에 기술된, 남해에서 섬진강 강물을 거슬러 온 청룡이 승천하는 형상을 말한 것인데.....

현 구례구역 앞 섬진강 강가 즉 옛 잔수진(潺水津)을 지키고 있는, 조그만 바위산인 병방산(丙方山)이 용의 꼬리이고, 섬진강을 따라 곡성군과 남원시를 거쳐 계속 이어진 길고 긴 능선의 마지막 정점인 만복대(萬福臺)를 용의 머리로 보았던 풍수사상에서 만들어진 지명이며, 대방군(帶方郡)은 불교가 유입되기 전 지리산의 옛 이름이 삼신사상(三神思想)에서 비롯된 방장산(方丈山)인데, 이 방장산이 허리에 두른 띠처럼 남원을 빙 둘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복대를 머리로 치켜든 용이 성(城)처럼 지켜주고 있다는 용성(龍城)의 의미와, 방장산이 허리띠처럼 남원을 빙 둘렀다는 대방(帶方)의 의미는 하나의 산 하나의 능선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같은 존재다.

사람들마다 용성(龍城)의 의미와 풍수에서 말하는 용(龍)을 다르게 볼 수도 있으나, 남원시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면, 왜 용성이라 하였는지를 잘 알 수가 있다.

특히 용성지를 보면, 백제의 고룡(古龍 옛 지명)이 용성(龍城)과 대방(帶方)으로 이어진 것임을 알 수가 있고, 조선 말기까지 남원부 관할이었던 고달(古達)이 현 곡성군에 편입된 고달면(古達面)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이는 용성의 의미가 지리산 만복대에서 구례구역 앞 병방산까지 이어진 길고 긴 준령을 뜻하는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지금 곡성군 고달면 가정마을(구례읍 논곡리)에서, 용방면(龍方面)과 광의면으로 이어지는 땅이 남원의 관할이었고, 아득한 옛날부터 섬진강을 거슬러오는 왜구들의 노략질이 극심했음을 상기하면, 모든 기록들은 이와 입술처럼 맞아 떨어지는 일이다.

참고로 남원부에서 지었다는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전라도라 하는 데는 신산(神山)이 비친 곳이라~~~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묻어온다. 우장을 두르고 삿갓을 써라 어여어여어여루 상사듸여~~”로 시작되는 작자 미상의 농부가(農夫歌) 발상지가 지금의 구례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광의면 일대에서 농부들이 부르던 농요를 원형으로 보면 된다. (구례의 역사와 문화를 논할 때, 지금의 행정관할로 보면, 답을 찾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앞에서 설명한 곡성의 욕천(浴川)과 남원의 용성(龍城)에서 보듯, 군자들이 도리를 구한다는 구례군의 별칭이 봉성(鳳城)이며, 옛날부터 구례의 역사를 기록해온 군지(郡誌)의 이름을 봉성지(鳳城誌)라고 한 것은, 구례읍 주산인 봉산(鳳山)이 곧 구례의 핵심 가치(혈)임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얼핏 보면 볼품없는 나지막한 그저 그렇고 그런 흔한 야산인 봉산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존재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봉산이 상징하는 봉황은 예로부터 성군(聖君)의 출현을 알리는 신령하고 상서로운 영물이며, 지혜롭고 어진 임금을 상징하는 새이며, 현재 청와대를 상징하는 깃발과 각종 의전행사의 배경과 문서의 바탕 문양이 봉황임을 상기하고.....

여기에다 욕천(浴川)의 곡성은 강이 중심이고, 용성(龍城)의 남원은 산이 중심이고, 봉성(鳳城)의 구례는 세상을 태평성대로 이끄는 성군(聖君)을 상징하는 신령한 새 봉황이 중심이니, 이것으로 봉산(鳳山)의 역사적 정신적 문화적 가치는 물론, 대대로 군민들의 정서와 정신사상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이외에도 봉산을 지명과 풍수로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할 이야기는 많지만 생략하고,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봉산을 보면, 봉산이 상징하는 성군(聖君)의 정치는, 흔히 말하는 왕조를 칭하는 것이 아니고,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말함이고,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대승사상 즉 법화사상과 화엄사상이 구현하는 시방법계 즉 반드시 구현해야 하는 참된 인간세상의 상징이다.

끝으로 촌부가 가끔 봉산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성군(聖君)의 정치를 말하면, 사람들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며 비웃는데, 지금과 같이 민주주의 발달은커녕, 언어 자체가 없었던 절대 왕조의 체제하에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라는 사실이다.

글쎄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어쩌면 국민들이 몇 년에 한 번씩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바람직한 정치문화가 성군의 정치일 수도 있다는 것이 촌부의 생각이다.

본래 정치의 근본은 국민들을 배불리 먹이며 즐겁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인데, 선출되는 대통령들마다 실정으로 실패하고, 본인들과 국민들이 다 같이 수난을 겪는 것은 물론, 지금 역사상 최악의 후보들을 두고, 눈곱만큼이라도 덜 나쁜 놈을 가려야 하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대선에서 보듯,.....

지금의 민주주의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부침이 있겠지만,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과연 그 궁극의 끝은 어떤 세상일까?

아마도 날마다 자고나면 발전하는 과학과 문명을 따라서, 함께 발전을 거듭하는 민주주의 궁극의 끝은,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꿈꾸어 온 이상세계 즉, 정신적 물질적 모든 유형무형의 것들이, 가장 잘 발달되고 완비된 세상,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꿈꾸는 꿈들을 자유롭게 이루어가는 세상은, 가장 바람직한 인간정신이 구현되는 세상이고, 인간복지가 차별 없이 실현되는 세상일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봉산이 꿈꾸는 성군의 정치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촌부의 생각이다.

봉산이 꿈꾸는 성군의 정치, 그거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 훌륭하고 어진 부모 밑에서,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가정과 같은, 그런 의미의 국가체제를 생각하면 될 것이고, 과학문명이 발달하는 미래의 국가체제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고, 그래야 할 것이다.

정리를 하면, 장문의 글이 아니고서는 쉽게는 논할 수 없는 역사와 문화를, 짧은 단문으로 알기 쉽게 요약하여 전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문맥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본질이 구례(求禮)의 의미가 무엇이고, 봉산(鳳山)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것이므로, 당장은 산사태가 상존하는 재앙의 산이 돼버린 봉산의 난개발을 막고, 구례의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논의가 있기를 바라며, 오래전 그러니까 대략 30년 전 1990대 초 촌부가 가장 절망했던 시절에 지었던 봉산단가(鳳山短歌)를 여기에 게재한다.

=봉산단가(鳳山短歌)=

봉산(鳳山)이 푸르른 뜻은
봉황(鳳凰)을 보고자 함인데

봉황은 어디로 가고
참새만 노니는가.

뜰 마당 바람소리
무심한 꿈으로 돌아드니

그리운 임은 만나기 어렵고
청춘은 봄눈처럼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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