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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칼럼] 한동훈이 사는 길은 거침없이 살불살조하며 나가는 50대 기수론”이다

[섬진강 칼럼] 한동훈이 사는 길은 거침없이 살불살조하며 나가는 50대 기수론”이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12.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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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아침 하늘의 구름과 해다.
사진 설명 : 아침 하늘의 구름과 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2020년 10월 16일 좌천되는 검사 한동훈을 보면서, 촌부가 쓴 “검사 한동훈을 위하여” 제하의 글에서, 시간은 검사 한동훈 편이라고, 이순신 장군도 백의종군을 하였는데, 검사 한동훈이 못 할 게 뭐냐며, 반드시 한동훈의 시간은 올 것이니. 조급해 하지도 말고 어떻게든 견뎌내라고 했었던 관계로, 지금 자신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한동훈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한동훈의 사주와 관상에 관하여 물어오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다만 시대와 민심을 통해서 한동훈을 보았고, 한동훈을 통해서 시대와 민심을 보았을 뿐, 흔히 관상과 사주팔자라고 하는 것은 허구이며, 혹세무민하는 사기극이기에, 나는 믿지 않는다. 

시대를 바탕으로 사람을 보거나, 거꾸로 사람의 됨됨이를 통해서 시대를 보는 것이지,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만물은 (사람은 물론 천하도 민심도 권력도 재물도 사랑도 심지어는 위기와 기회까지도,) 본래부터 주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는(민심과 권력과 재물과 사랑 등등) 주인이 없는 공물(公物)이라 하는 것이고, 흔히 예로부터 전하는 성인(聖人)들은 때때로 쉼 없이 변화하는 이것을 알아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며 사랑한 것이지, 사람의 관상이나 사주팔자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한동훈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말이다.

지금 혹한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동훈의 현상은, 흔히 말하는 팬덤으로 만들어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한동훈 자신이 만든 것은 더욱 아니다.

물론 한동훈의 관상도 아니고, 타고 난다는 사주팔자는 더욱 아니다. 시대와 사람들이 (민심이) 사람을(한동훈) 이렇게 만들었다. 시대와 사람이라는 민심이 함께 작용하여 만들어진 인물이 지금의 한동훈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절대불변이고 상수냐 하면 이건 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늘과 시대와 (사람) 민심 이들 셋은 그 자체가 스스로 필요에 따라 쉼 없이 변화하는 실상이기에, 한동훈의 현상은 말 그대로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뿐, 절대불변의 상수가 아니다.

지금 한동훈이 처한 상황을 전래하는 도참비법으로 풀어 해석하면, 적벽강에 부는 동남풍일 뿐이고, 불타는 화염지옥인 상방곡(上方谷)에 쏟아지는 한때의 소나기일 뿐이다.

해석하면, 제갈공명은 동남풍을 이용하여 적벽대전을 승리 모두를 살리며 자신도 위기에서 벗어났고, 상방곡에 쏟아진 소나기는 제갈공명에게는 죽음의 비였지만, 사마의에게는 사지에서 벗어나 사는 기회가 되었던 것처럼, 한동훈에게 지금 요동치고 있는 정국과 민심은 절호의 기회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문제는 한동훈이 자신에게 온 이 절호의 기회를 분명하게 알고, 이것을 잘 활용하여 나라를 구하고 민생을 살리며, 자신이 사는 지혜가 있느냐는 것이다.

직설로 이야기하면, 이제야말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고, 정국 구상에 골몰하고 있는 한동훈이야말로, 자신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기에, 한동훈을 주시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3년 전 보았던 한동훈의 지혜와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나도 궁금하다.

본시 사람은 능멸과 모욕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보다 더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능력은 각각으로 다른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 인생 일대 절호의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한동훈에게 봉산 촌부가 해주고 싶은 한마디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용기와 지혜로 거침없이 나가라는 것이다.

엄동설한의 혹한에 법당의 불상을 끌어다 도끼로 장작으로 패서 불을 지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용기와 지혜가 참된 구함이고 참된 행이며 진리다는 말이다.

문제는 한동훈이 사심(私心) 없이 휘둘러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면서, 법당의 불상을 장작으로 쪼개 세상을 구하고 민생을 살리는 거침없는 도끼의 존재가 무엇이어야 하는 것인데….

나이 만 51세 젊은 한동훈이 치켜들고 휘두르는 사심 없는 도끼는 “50대 기수론”이 답이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면 그것으로 국민이 간절히 소원하는 부정부패 척결은 물론 세대교체라는 인적 청산 등등 만사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고, 누구나 빨간불에 멈추고 파란불에 건너는, 참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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