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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보는 진짜 위선은 무엇인가

[문학칼럼]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보는 진짜 위선은 무엇인가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10.0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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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지고 순수해져야 한다.
진짜 위선은 마음을 감추고 착한 척하는 얼굴이다.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빙허 현진건(1900-1943) 선생은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고, 1921년 발표한 '빈처(貧妻)'로 인정을 받기 시작 '백조(白潮)'동인으로서 '운수 좋은 날', '불' 등을 발표하여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불린다. 또한, 당대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조기에 일본 유학을 다녀왔지만, 드물게 친일에 가담하지 않은 몇 되지 않는 작가 중 한 명이다.

B 여사는 C 여학교의 사감으로서 얼굴은 누렇게 뜬 곰팡이 슬은 굴비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못생겼으며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칠 만큼 엄격하고 매서웠다. 특히 남학생에게 온 러브레터가 있으면 당사자 여학생은 사감실로 끌려가 자신이 아는 남학생이건 모르는 남학생이건 혹독하게 당해야 했으며 남자를 마귀로 표현했고 연애가 자유니 신성이니 하는 것은 악마가 만들어낸 소리라고 했다.

당연히 남자의 면회는 시켜주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의 면회도 따돌리기 일쑤여서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해 교장의 설교까지 들었어도 막무가내,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가을에 들어 기숙사 어디선가 속살속살하는 말과 웃음소리가 밤이 깊어 새어 나오는 때가 있어 도깨비의 장난이 아닌가 무서워하다 이웃집 이야기나 딴 사람의 잠꼬대겠지 하며 안심하고 자는 일이 학생들에게 있었다.

어느 날 공교롭게도 한 방에 자던 세 학생이 한꺼번에 잠을 깨어 남녀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연애하는 남녀가 몰래 만난다는 생각에 구경하러 가자고 하여 소리 나는 곳으로 찾아간다. 소리 나는 곳은 바로 B 사감의 방이었다. 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학생들에게 온 러브레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B 사감 혼자서 연인들끼리 연애할 때의 장면을 모노드라마처럼 하고 있었다. 첫째 처녀는 미쳤다고 생각하고 둘째 처녀는 불쌍하게 생각했으며 셋째 처녀는 손으로 고인 눈물을 씻었다.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다. 당연히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전통 규범이 자리 잡고 있는 시대였을 것이다. 그 시절에 교사에 사감이었을 정도면 B 사감은 상당한 엘리트 여성이었을 것이다. 아주 똑똑하고 지적이며 학생도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는 통솔력을 가진 여성, 그러나 그녀가 연애를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짐작하다시피 바로 그녀의 못생긴 외모 때문이다. 요즘 같으면 성형수술이라도 하겠지만 그 시절엔 방법이 없었겠다. 겉으론 남성을 혐오하고 연애를 반대 하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사랑을 그리워했던 그녀의 마음은 어찌 보면 이중적이라기보다 당연한 본능에 가깝다.

B 사감의 위선적인 심리 상태가 역겹거나 무서운 건 아니다. 진짜 위선은 따로 있다. 겉으론 착한 척, 순수한 척하며 속에 악마성을 감추고 있는 표리부동한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짜 위선은 아마도 이기, 무시, 독단, 군림, 이런 마음들을 감추고 있는 가면 쓴 착한 척하는 얼굴일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지고 순수해져야 한다.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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