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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나쁜 놈들 말고, 진짜 어리석은 놈이 누구냐

[섬진강칼럼] 나쁜 놈들 말고, 진짜 어리석은 놈이 누구냐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3.2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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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구례읍 봉산에서 촌부가 공들여 살려낸 한 그루 산수유나무가 피우고 있는 한 송이 꽃이다.
사진 설명 : 구례읍 봉산에서 촌부가 공들여 살려낸 한 그루 산수유나무가 피우고 있는 한 송이 꽃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몇 년 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이가 분노와 적개심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스스로를 방안에 가둬버린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촌부를 찾아왔다.

그러는 이유가 뭔지를 들어보니, 사건 자체가 산전수전 다 겪은 촌부조차도 상스런 욕이 절로 나오게 하는 것으로, 돈에 매수된 썩어빠진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짜고 학생들의 성적을 비롯하여 학생부 자체를 조작하는 전문적이고 고질적인 반교육적인 범죄였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면서 생활하는 룸메이트를 비롯하여, 이른바 돈과 권력을 가졌다는 학부모들과 부패한 교사들이 음모한 조직적인 성적조작의 범죄를 목격하고 항의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관련 교사들과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벌인 자신에 대한 음해와 왕따 등등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버린 끝에, 사실상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한 반사회적인 괴물이 되고 있는 학생의 마음을, 또래들이 갖는 보편적인 수준으로 되돌려 놓을 방법이 촌부에게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난감했었다.

겉으로 드러난 것 말고, 혹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 그 아이만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민이 있을까 싶어, 그 아이를 데리고 강으로 나가 강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물었는데, 더는 감추거나 특별한 것이 없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탓에, 아이를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보낼 처지도 못되고, 어떻게든 아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분노와 적개심을 추스르고 학교로 돌아가서 평범한 학생으로 학업을 마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당시 아이를 설득할 묘수를 찾지 못한 촌부가 느낀 것은, 아이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스스로 무능함을 절감하는 쪽팔림이었다.

순간적으로 세상 온갖 성인군자들은 물론 동서양의 위인들과 영웅들이 남긴 어록을 뒤지며, 아이에게 교훈이 될 만한 사례들을 찾는 등, 나름 잔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빼도 박도 못할 외통수에 걸려버린 것이 나 자신이었다.

그런 어색함에 말문을 잊고 강물만을 바라보고 있던 잠시 촌부의 눈에 비친 것은 흐르는 물 가운데 섬처럼 홀로 버티고 있는 바윗돌이었고, 그 바윗돌 하나가 아이를 살리는 기적의 묘수가 되었는데, 그 바윗돌을 두고 촌부가 아이와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산 저 산 모든 골짜기의 물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의 집집마다에서 내버리는, 온갖 더러운 물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다 받아들여, 쉼 없이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이 강을 세상이라 하고, 저기 강 가운데 홀로 있는 바윗돌과 저 바윗돌을 지금 바로 스쳐 지나가고 있는 흐르는 강물을 사람으로 비유하면, 네가 분노하고 있는 그 더러운 담임선생이라는 놈과 룸메이트는 무엇이고, 그러는 너는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쉼 없이 흘러가고 있는 강물 가운데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믿음직한 바윗돌을 자신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러면 달리 생각해서 만일 저 바윗돌과 강물이 목적하는 것이, 바다로 나가는 것이라 한다면,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윗돌을 비켜 돌아 흘러가고 있는 강물과, 저 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바윗돌,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현명하고 어리석으냐고 물었다.

쉽게 말해서, 성적을 조작하는 담임선생과 학생 그놈들이 나쁜 놈들인 건 알겠는데,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기서 진짜 어리석은 놈이 누구냐는 것이다.

잠시 촌부가 묻는 의도와 의미를 생각하다 머뭇거리며 강물이 현명하고 바윗돌이 어리석다고 하는 아이에게,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가 뭐냐고 다시 물으니, 설명이 조금 길긴 했어도 분명한 것은, 아이는 촌부가 묻는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챈 것은 물론 충분히 이해하며 내면에서 소화를 시켜내고 있었다.

맞다.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다. 지금 네가 분노하고 있는 그 더러운 놈들이라는 담임선생과 학생이 강물이라면, 저들의 안중에는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의식과 반성은 물론 너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없을뿐더러, 벌써 오래전에 저 산굽이를 돌아서 가버리고 없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저 바윗돌처럼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저 혼자 남아서 분노와 적개심으로 외치고 있는 미친놈 어리석은 놈이 “너”이고, 그런 너의 어리석은 모습을 네가 진실로 깨닫고 보았다면, 다음은 어떡해야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으니,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엄마에게 학교에 가겠다고 말하겠다고 하였고, 그 후 학교에 등교하여 졸업까지 하였다.

지난 해 들은 소식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현역으로 병역을 마친 아이는 혼자 벌어서 대학을 마치고, 반도체 회사에 취업하여, 농사를 짓는 아버지에게 대형 트랙터를 사주는 등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루어가고 있다 하였다.

그 여름날 촌부를 찾아왔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에게 촌부가 권한 것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는 초나라 굴원(屈原 기원전 약 340~278)이 지은 어부사(漁父辭)를 읽어보고 진실로 어리석은 놈이 누구인지를 생각하여 보라는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가고 없는 일제의 망령에 사로잡혀 헤매며 밥을 빌고 있는 이 땅의 우매한 식자들을 보고 있으려니, 몇 년 전 고등학생의 일이 떠올라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주절거려보았는데....

진실로 오늘의 우리들이 얼음보다 차가운 머리와 가슴으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진짜 어리석은 놈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쁜 놈들 말고 스스로 어리석음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와 국민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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