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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연기자와 객석에서 보고 있는 관객은 한 사람이지만, 둘 다 허상이다

[섬진강칼럼]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연기자와 객석에서 보고 있는 관객은 한 사람이지만, 둘 다 허상이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3.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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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며칠 전 촬영한 신파극의 주인공 한 마리 꿀벌이 강변 배수로 콘크리트 벽을 기어가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설명 : 며칠 전 촬영한 신파극의 주인공 한 마리 꿀벌이 강변 배수로 콘크리트 벽을 기어가고 있는 장면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며칠 전에 쓴 “봄날 한 마리 꿀벌이 연기한 짧은 신파극을 보고”라는 제하의 글을 읽은 지인으로부터 난감한 질문을 받았다.

“과연 촌부인 나는 날마다 신파극을 연기하고 있는 주인공인지, 아니면 그 신파극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인지, 어느 것이 내 역할이고 내 참모습인지..... 한참을 생각하다 나야말로 실없는 놈이라며 한바탕 웃었다”는 대목을 가지고, 이게 뭔 소린지 궁리를 하다 직접 들어보자 하고 전화를 한 것인데, 정확히는 질문 자체가 난감한 것이 아니고, 질문의 답이라고 하는 답을 어떤 말로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게 난감한 일이었다.

지인의 말은, 글에서 이야기하는 상황을 보면, 무대 위에서 신파극을 연기하고 있는 연기자와, 객석에서 관람을 하고 있는 관객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같은 한 사람으로, 이는 손오공도 할 수가 없는 일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름 격식을 갖춘 질문의 어투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을 향해서 말장난을 하고 있다는 힐난이었다.

쉽게 말하면, 혹 이것이 판타지 소설이나 SF영화에서처럼, 순간 이동이 가능한 세계라 하여도, 무대 위와 객석이라는 공간이 다르고,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연기자와, 객석에서 관람을 하고 있는 관객이 엄연히 다른데, 즉 공간도 다르고 사람도 다른데, 어떻게 동시에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면서 객석에서 관람이 가능하냐는 것이다.(말장난이 지나치다는 면박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사람이 가지는 인식을 초월하는 차원이 다른 별세계 신들의 세계라 하여도, 절대로 가능하지 않는 상황을, 가능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촌부는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사기꾼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렇다면 그대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바로 그러한 때에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이냐고, 옛 사람들의 흉내를 내어 뻔한 소리로 되물어주려다가 꿀컥 삼키고, 혹 경계(境界)를 아느냐고 물었다.

경계를 안다고 하는 그에게, 경계를 안다면, 그 경계의 속에는 스스로 분별하고 있는 또 다른 경계와 경계가 있음도 잘 알 것인데, 지금 그대가 보고 있는 경계와 경계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으며, 무엇이 있다고 하는 그 경계의 실체는 어디서 비롯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경계에는 시간과 공간이 있고 “나”라는 자신도 있고, 그리고 또 그 속에는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며, 자신이 분별하여 놓은 온갖 것들이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로 존재하는 불멸의 참모습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물결들은, 물이 바람이라는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본래 실체가 없는 허상이듯, 우리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인식하며 살고 있는 저마다의 경계라는 것 또한 근본이 없는 허상이라고, 경계라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낸 착각이며 허상이라는 설명하려다가, 이미 그에게 스스로 정해놓은 답이 있는 이상, 촌부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딱 한마디만 하였다.

날마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연기자와, 객석에서 그 연기를 보고 있는 관객이, “나”라고 하는 마음이 어떠한 경계에 이끌리고 부딪혀 만들어 내고 있는 허구이고 허상이라는 것을 안다면......

말인즉슨, 무대 위에서 신파극을 연기를 하고 있는 연기자와, 객석에서 보고 있는 관객은 한 사람이지만, 실상은 둘 다 실체가 없는 허구이고 허상이라고......

무대 위의 연기자와 객석의 관객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만나고 있는 “나”라는 한 사람의 존재가, 바로 날마다 때때로 쉼 없이 부딪히는 경계에서,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작동하여 만들어내고 있는 허상이라는 것을 안다면,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것이라고, 그 말 한마디만 하였다.

강물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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