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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실상과 허상 대가리와 가슴의 이야기

[섬진강칼럼] 실상과 허상 대가리와 가슴의 이야기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2.02.2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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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작가 김만근 선생의 “존중”이다.
사진 설명 : 작가 김만근 선생의 “존중”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처음 인류가 생겨난 오랜 옛날부터 문화적 역사적으로 병치하고 있는 정치의 행태를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보면, 통치자는 대가리고 국민은 가슴이다.

이렇듯 처음 시작부터 병치하고 있는 불가분의 관계인 대가리와 가슴의 흥망을 보면, 항상 그렇듯 (통치자) 대가리는 (머리) 대가리를 굴려서 권력을 잡는 일에 성공을 하면, 대가리는 끝없는 성취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망하여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그 역사는 아픔 자체를 모르는 종이에 기록되어, 서고(書庫)의 깊은 어둠 속에 묻히는 또 다른 어둠이 될 뿐이다.

한마디로 통치자인 대가리가 실패하여 망하면, 머리인 대가리를 잘못 굴렸을 뿐이라며, 모든 죄를 머리인 대가리에 묻지만, 정작 머리인 대가리는 가슴이 없는 무감각이기에, 아프지도 않고 통증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나 흥망성쇠를 알고 느끼는 (국민) 가슴은 살아있는 세포에 역사가 기록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두고두고 통증을 느끼며 아파한다. 그래서 가슴은 가슴이 아프다. 많이 아프고 아파한다. 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온 몸으로 소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픈 건 오로지 통증을 느끼고 아는 가슴이 감당해야 할 가슴의 몫이기에,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이고, 맨날 아픈 건 가슴뿐이다.

결론을 지으면, 대가리가 굴리는 대가리의 역사는 아픔 자체를 모르는 종이에 기록되어 시간 속으로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세상의 흥망성쇠를 알고 느끼는 가슴은 살아있는 세포에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아파하는 것이다.

수많은 대가리들의 흥망성쇠가 우리들의 가슴속 세포에 기록되어 있고,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속 세포에 기록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이고, 지금 온 나라의 가슴들이 아픈 이유가 이것이다.

사실이 이처럼 명확하고 분명함에도, 매번 때마다 등장하는 대가리들이 실패하고, 그럴 때마다 가슴들이 아파하고 있는 것은.....

통치자라는 대가리가 쓰는 머리인 대가리의 꼭짓점은 항상 현실정치라는 실상에 있고, 실상에서만 볼 수가 있지만, 국민이라는 가슴은 실상에서는 볼 수가 없고, 대가리가 만들어내는 대가리의 허상을 통해서만 보이고 느끼는 것이 가슴이기 때문이다.

(머리)대가리만 굴리는 (통치자)대가리가 흥망성쇠를 알고 느끼는 (국민)가슴의 아픔을 어찌 알 것인가! 언제나 그렇듯 대가리는 열심히 대가리만 굴릴 뿐 실상은 아무것도 이행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항상 어느 시대건 대가리가 망할 때는, 대가리가 대가리의 꼬임 수에 빠져 가슴을 보지 못할 때 망한다.

가슴을 보지 못하고 가슴이 무엇을 아파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대가리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 지금까지 역사와 함께 기록되고 병치돼온 일이 이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세상이 아름답고 인생의 가치가 그만큼 소중하다고 하는 것은 세상이 부질없고 인생이 부질없음을 깨달아 알기 때문이다.

허상을 알기 때문에 그만큼 아름답고 소중하며 삶이 아픈 것이다. 마치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허상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실상을 깨닫고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섬진강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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