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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서 보는 사랑의 가벼움에 대한 역설

[문학칼럼]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서 보는 사랑의 가벼움에 대한 역설

  • 기자명 민병식 논설위원
  • 입력 2024.02.20 08:11
  • 수정 2024.02.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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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에 대한 솔직함,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 내밀한 원초적 고백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아니 에르노(1940 ~ )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릴본 출생으로 루앙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후 정교사 와 교수 자격증을 취득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인 ‘빈 옷장’으로 등단, 이후 자전적인 소재의 글들을 많이 썼다. 프랑스 여성으로는 최초로 2022년 "개인 기억의 뿌리, 소외, 집단적 구속을 밝혀내는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여성의 낙태권 문제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등 페미니스트 작가로도 유명하다.

작품은 외국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자전적 소설이니 여자는 아니 에르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을 발표하고 작가는 ‘자신의 욕망만을 표현한 일기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다’ 등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 남자가 연하의 유부남이다. 즉, 불륜인거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있는 동안 시계를 멀리 치워 놓는다. 한편 남자는 늘 시계를 차고 있다. 시계를 힐끔거리는 남자의 시선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것이 여자의 사랑에 장애가 될 수는 없다. 여자에겐 온통 남자뿐이다.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은 물론이거니와 떨어져 있는 시간, 약속하고 기다리는 시간, 남자가 함께 있다가 떠나는 시간까지도 오로지 남자 생각뿐이다.

여자는 불안하다.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몇 시간뿐이었고 만남이 지나면 또 다시 오랜 기다림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짜에서 멀어질수록 고통과 불안은 커지고 그의 전화를 받지 못하면 그가 자신을 떠난 게 아닌지 불안해한다. 결국 둘은 종국에 파경을 맞고 여자는 차라리 강도가 들어와 자신을 죽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큰 고통에 빠진다. 그런 주인공이 남자가 떠난 뒤 두 달 정도 지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여자의 단순한 열정은 어쩌면 너무 강렬해서 사랑의 주체가 비극의 결말을 맞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작품의 결말대로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의 흐름에 무디어져 옛 추억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사는 동안 상대를 불문하고 이렇게 강렬한 사랑에 빠져 본다는 것은 어쩌면 일생에 한 번 올지 말지 하는 행운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논리도 이 단순한 열정을 정면으로 뒤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작품을 대함에 있어 논리적으로 접근할 독자는 이 작품을 읽고 도덕적, 비도덕적 경계로 나누어 판단할 것이다. 하필이면 유부남, 하필이면 불륜 등의 사회적 통념에 의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설사 작품이 작가의 자서전적 성격을 띠고 있을지라도 옳다, 그르다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살면서 성인(聖人)처럼 하나의 흠결도 없이 도덕적으로 살아왔는가. 때로는 남을 욕하고 때로는 남의 사생활을 떠벌리며 자신의 쾌락의 도구로 삼고 때로는 잘난 우월감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내려다보지는 않았는지 돌아 볼 일이다. 덧붙여 어쩌면 강력한 사랑의 마법에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는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작품은 사랑이 모두였던 여자의 단순한 열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격정적인 사랑을 했던 자신을 긍정했던 것이 더 좋았고 사랑에 빠져 자신조차 잊고 사랑하는 상대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헤어진 이후에 그 행복했던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다시 오기 힘든 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삶에서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솔직함이다. 요즘처럼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시대에 사랑의 조건에 집과, 차, 현금 보유고 등 순수한 쇳물에 불순물을 거를 수 없는 시대에 자신의 사랑에 솔직해질 수 있을까. 물론 소설의 주인공인 작가는 때론 비통함, 때론 괴로움, 때론 자존감이 무너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 내밀한 원초적 고백은 어쩌면 조건 없는 사랑은 찾아 볼 수 없는 이 시대의 가벼움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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