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섬진강칼럼] 오늘 처음 창문 밖에 핀 노랑 백합꽃을 보면서

[섬진강칼럼] 오늘 처음 창문 밖에 핀 노랑 백합꽃을 보면서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3.06.19 19:48
  • 수정 2023.06.19 19:56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설명 : 오늘 처음 핀 노랑 백합꽃이다.
사진 설명 : 오늘 처음 핀 노랑 백합꽃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마음 흔히 말하는 마음, 우리네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일러 마음이라 할 것인가.

이 질문을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이른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즉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식(意)이라는 여섯 개의 기관을 가진 사람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즉 사람이 가진 오감(五感)인 색(色) 눈으로 볼 수 없고, 성(聲) 소리로 들을 수 없고, 향(香) 냄새로 분별할 수 없고, 미(味) 맛으로 알 수 없고, 촉(觸) 손으로 만져서 느낄 수 없고, 그리고 마지막 이 오감의 실체와 실상을 깨우치고 있는 법(法)을 통해서도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이 가진 마음, 분명히 존재하나 실체가 없는 마음을, 누가 어떻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도 간간이 마음의 실체를 찾는 이들이 나를 찾아와서 묻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솔직하게 고백하면 젊은 날에는 이것이 마음이고 마음이 이것이라며 당당하게 설명하고 큰소리를 쳤었는데, 흰머리로 늙은 지금은 뭣도 모르고 혼자서 잘난 체 호기를 부렸던 젊은 날의 객기가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각설하고, 예로부터 전하고 있는 전설에 이르기를, 지리산 구례에는 이인(異人)들이 사람들 가운데 섞여 살면서 도를 전하여, 대대로 인연이 있는 이들을 깨우치며 세상을 구한다 하였는데, 며칠 전 야밤에 구례읍에서 만난 이가 바로 그런 異人의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늦도록 차를 마시면서 그가 나에게 질문하는 것들과, 그리고 무엇이라고 확신하며 주장하는 것들에 대하여, 그런 그의 열정과 몸짓은, 아직은 젊은 탓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날 밤 그 사람은 내가 보고 다시 확인하는 젊은 날의 내 모습이었기에, 늙은 내가 젊은 날의 나를 만나 질문하고 답하는 우스운 꼴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날 밤 그 자리에서 마치 젊은 날의 나와 판박이라고, 늙은 내가 젊은 나를 보는 것 같다고 웃고 말았는데, 오늘 처음 창문 밖에 핀 노랑 백합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노랑 백합꽃이 활짝 핀 소식을, 젊은 날의 나는 마음껏 전하는데, 늙은 나는 다만 그를 생각하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을 뿐, 그에게 처음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할 방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 눈에 비친 꽃, 사진기로 촬영한 한 장의 사진처럼,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 꽃이, 내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 그 사람의 눈에 비치고 마음에 깃드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말해서 지금 내가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느끼는 노랑 백합꽃의 모습과 꽃이 핀 소식을, 그대로 온전하게 전할 방도가 없다는 의미다.

부연하면, 옛 사람들이 말과 글로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말문을 닫은 불가설(不可說)의 의미가 이것과 이것에 대한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끝으로 다시 또 젊은 날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조심스럽지만, 마음이라는 것, 마음을 깨달아 부처가 되고 싶다는 이에게, 그토록 갈구하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은, 바로 지금 스스로 깨달아 행하는 것임을, 오늘 처음 창문 밖에 핀 노랑 백합꽃 소식으로 여기에 전한다.

마음이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오.

흔히 사람들이 마음을 찾고 찾았다 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마음이 쉼 없이 만들어내는 허상을 착각한 것일 뿐, 진실로 마음을 찾고 찾은 것이 아니라오.

마음이란

안다고 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오.

쉼 없는 마음이 쉼 없이 일으키는 생각이라는 망상과 분별을 잘못 인식하여 안다고 하는 것일 뿐, 진실로 마음은 마음을 안다고 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오.

마음이란

비운다고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오.

흔히 사람들이 마음을 비웠다고 하는 것은, 바라는 바를 스스로 포기한 것을, 마음을 비웠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진실로 마음은 비운다고 비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비우고 비워진 것이 아니라오.

마음이란

채운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오.

흔히 마음을 채웠다고 하는 것 또한, 마음이 일으키는 욕망을 쫒아간 것을, 마음을 채웠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진실로 마음을 채우고 채워진 것이 아니라오.

마음이란

다시 말해서 비운다고 비워지는 그릇이 아니며, 채운다고 채워지는 그릇이 아니라오.

마음이란

실체가 없어 증명할 수 없는 연유로, 이름 하여 그 이름이 마음일 뿐, 그 뿐.....

다만 실체가 없는 마음을, 형상으로 보고, 실체로 확인하려는 어리석은 사람의 망상이 있을 뿐이라오.

문(門)이 없는 허허당(虛虛堂)에서

2023년 6월 19일 허생(虛生) 박혜범(朴慧梵)씀

저작권자 © 서울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