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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다시 어지러운 세상에 전하는 원효대사의 자루 없는 도끼

[섬진강칼럼] 다시 어지러운 세상에 전하는 원효대사의 자루 없는 도끼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1.06.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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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년 전 원효대사의 시대나, 2021년 지금이나, 대권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게임은, 참요(讖謠) 즉 은밀하고 특별한 메시지를 퍼트려 상대를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신들에게 민심이 모이게 하는 방법과 과정

사진은 삼한을 통일한 원효대사가 전하고 혜철국사가 이어 후삼국을 통일 고려를 창업한 묘법을 후세에 전하고 있는 국사봉(國師峯)과 전설의 미인 보살(菩薩)의 모습
사진은 삼한을 통일한 원효대사가 전하고 혜철국사가 이어 후삼국을 통일 고려를 창업한 묘법을 후세에 전하고 있는 국사봉(國師峯)과 전설의 미인 보살(菩薩)의 모습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준다면
작아지천주(斫我支天柱)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기존의 해석임>

흔히 사람들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깨달고, 마음의 대 자유를 얻어 세상의 번뇌를 벗어난 원효대사가 지어 부른 위 가사에서, 자루 없는 도끼 몰가부(沒柯斧)는, 여자의 성기(性器)인 음문(陰門)으로, 하늘을 받칠 기둥 지천주(斫我支天柱)는, 원효대사 자신의 성기인 남근(男根)으로 해석하여, 음담패설의 하나로 전하고 있는데, 과연 자루 없는 도끼는 무엇이고, 하늘을 받칠 기둥은 무엇일까?(홀로된 과부와 잠자리를 하여 나라를 구할 인재를 생산하겠다는 해석도 같은 맥락임)

원효대사가 장안의 저잣거리에다 퍼트린 이 노래를 듣고, 과부가 된 자신의 딸인 요석공주(瑤石公主)를 원효대사에게 짝 지워주었다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년) 김춘추의 이야기는 사실이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원효와 요석공주의 로맨스는 김춘추의 왕권이 안정된 어느 해의 일인데, 654년 3월 진덕여왕이 죽고 김춘추가 왕이 되었고, 원효와 요석공주가 결혼하여 낳은 아들 설총은 655년생이니, 원효와 요석공주의 로맨스는 자동으로 654년의 일이 되는데, 이는 왕권을 두고 심각하게 다퉜다는 역사의 기록과 시간이 서로 다른 것으로 맞지 않다.

이로부터 627년 후 1281년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一然)이, 원효와 요석공주의 로맨스에 관하여 어떤 기록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여, 원효불기(元曉不羈)에 기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길고 긴 세월 속에서, 원효와 김춘추의 사이에 있었던 역사를 잘못 해석하였거나, 와전된 잘못된 기록을 본 것이다.

왜냐 하면, 인류역사와 자연주의 관점에서 보면, 도끼가 남성이 갖는 힘의 상징은 될 수 있어도, 여성의 성기는 될 수가 없고, 무엇보다도 천하의 원효대사가 춘정(春情) 즉 성욕을 해소하기 위하여 꾸민 것이라 한다면, 당시 원효대사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진골혈통의 새집(처녀들)들을 두고, 굳이 낡은 헌집(과부)을 찾은 격으로, 이치에도 맞지 않거니와, 이어지는 앞뒤의 문맥들이 어색하기만 하다.

물론 단순하게 과부를 통하여, 자신의 욕정을 풀겠다하는 것은, 요석공주에 대한 원효대사의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한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렇다 하여도 원효대사의 삶과 배치되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지금이야 아들을 못 낳는 것이, 남자의 문제로 밝혀졌지만, 옛날에는 아들을 못 낳는 것이 100% 여자의 책임, 여자의 죄로 인정되고 있었음을 안다면, 이미 전쟁에서 죽은 남편으로부터, 딸만 둘을 낳은 과부를 통하여, 즉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자로 확인된 과부(요석공주)와 잠자리를 하여, 나라를 구할 인재를 생산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상식 밖의 일이다.

이와 같이 역사와 문화 종교 개인의 사고를 바탕으로 보면, 진덕여왕이 3월에 죽고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고, 원효대사가 이 노래를 부른 이 모든 일들이 김춘추가 권력다툼을 벌이던 654년 이 해의 일이고, 이후 김춘추는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여 국가의 체제를 새롭게 정립하고,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틀 마련하였는데, 드라마틱한 격동의 역사 속에서, 원효대사의 이 노래를 대비시켜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처음 글자가 만들어진 연유를 보면, 임금을 뜻하는 왕(王)자의 근원이 도끼이니, 도끼는 곧 왕이며 왕권의 상징이고, 손잡이 자루는 전쟁의 도구인 칼과 창은 물론 괭이나 낫 호미 등등 각종 연장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경영과 지혜 즉 법(法)의 상징이므로, 자루 없는 도끼 몰가부(沒柯斧)는 당시 진덕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은 왕실의 상황으로, 주인이 없는 왕권 옥좌를 말함이다.

여기에 더하여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사실을 대입하면, 자루 없는 도끼 몰가부(沒柯斧)는 끊임없는 반란과 권력다툼으로 지새는 무능한 신라의 왕실을 지칭한 것이고, 하늘을 받칠 기둥 지천주(支天柱)는 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 정체성 정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특히 654년 3월 진덕여왕이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죽자 왕의 추대와 폐위를 결정하는 화백회의를 장악한 상대등(上大等)이 왕손 알천(閼天)에게 섭정을 맡겼으나, 김유신과 알천이 뜻을 맞추어,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원효대사가 저잣거리에서 부른 노래를 보면, 이와 입술처럼 딱 부합하는 크나큰 의미와, 극적인 반전의 역사가 있다.

하여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작아지천주(斫我支天柱)는 당시 진덕여왕이 후사를 정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임자가 없는 신라의 왕권 옥좌를 말함과 동시에, 김춘추를 부추기고 격려한 것으로, 즉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김춘추가 대권을 갖도록 김춘추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저잣거리에서 여론몰이를 한 것이다.

당시 왕에 추대된 알천이 굳이 사양하고, 대신 김춘추를 추천하여, 김춘추가 세 번 사양한 다음 부득이 즉위했다는 기록은, 신라 왕실에서 진덕여왕이 죽은 뒤, 자루 없는 도끼 즉 주인 없는 옥좌를 두고, 극적인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극적인 반전과 반전을 거듭했던 격변의 해인 654년 원효대사가 부른 노래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작아지천주(斫我支天柱)는 김춘추 네가 왕이 된다면 우리가(원효대사로 대변되는 강력한 지지 세력들)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격려와 약속임을, 이후 원효는 삼국통일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고, 김춘추는 왕이 되어 삼국통일의 정치를 하였고,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간 것을 보면, 김춘추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일을 도모한 것임이 분명하고 명확해진다.

그러므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관계는, 왕위에 오른 김춘추가 함께 삼국통일의 뜻을 모은 원효대사를 혈족으로 묶어두기 위하여, 과부가 된 자신의 둘째 딸을 내어준 것이, 훗날 와전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고 올바른 역사다.

한마디로 김춘추와 김유신의 관계(처남과 매제), 김춘추와 원효의 관계(장인과 사위) 원효와 김유신의 관계(외조부와 손녀사위)를 보면, 이들 삼국통일의 주축이었던 세 사람이, 고전적인 방법 그대로를 답습하여, 정치적 관계와 인간적 관계를 혼인을 통하여 하나로 결속한 것이다.

참고로 660년 백제가 망하기 전, 백제의 민심을 흔들어버린 신라여신월(新羅如新月) 신라는 초승달과 같고, 백제원월륜(百濟圓月輪) 백제는 둥근달과 같다는 이 말은,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작아지천주(斫我支天柱)와 같은 것으로, 시대의 변화나 정치적 징후를 예언하거나 암시하는 참요(讖謠)인데, 이는 삼국통일이라는 신라의 대업을 기획하고 김춘추를 지지했던 세력들 즉 원효대사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 연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끝으로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잠자리를 한 뒤 실계(失戒)를 하였다면서, 스스로 민간인의 옷을 입고,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하였다는 이야기 또한 사리에 맞지 않다.

일찍이 당(唐)으로 가는 구법(求法)의 유학길에서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 사고와 사물의 경계를 벗어나 버렸고, 나고 죽는 생사의 경계마저 초월하여버린 원효대사가, 과부의 배꼽 위에 있던 배꼽 밑에 있던,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승복을 입고 벗음이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이미 일체유심을 체득하고 있는 원효대사에게는 과부의 배꼽이나, 승복의 입고 벗음이 무의미한 일이며, 이 역시 요석공주와의 관계가 잘못 와전되어, 후대에 사실처럼 고착돼버렸고, 그러한 연유로 가사를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654년 원효대사가 부른 노래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작아지천주(斫我支天柱)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허락한다면
(김춘추가 주인이 없는 옥좌(玉座)를 맡는다면)
우리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돕겠다. : 김춘추를 지지하는 세력들)

정리를 하면, 1,360년 전 원효대사의 시대나, 2021년 지금이나, 대권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게임은, 참요(讖謠) 즉 은밀하고 특별한 메시지를 퍼트려 상대를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신들에게 민심이 모이게 하는 방법과 과정이다.

부연하면 이미 시작된 명년 3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최재형과 윤석열을 음해하는 이런저런 소문들과 이른바 출처가 없는 윤석열에 관한 파일 또한 같은 것이다.

끝으로 게재한 사진은 삼한을 통일한 원효대사가 전하고 혜철국사가 이어 후삼국을 통일 고려를 창업한 묘법을 후세에 전하고 있는 국사봉(國師峯)과 전설의 미인 보살(菩薩)의 모습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더도 덜도 말고 명년 3월 9일 치러지는 대선에서는, 부정하고 부패한 내로남불의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면서, 우리시대의 부끄러운 과제인 동서화합과 남북통일을 기초하는 21세기 삼한통합을 이룩할 제3의 원효대사와 김춘추와 김유신과 같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큰 뜻을 가진 후보와 세력이 대권을 쟁취하기를, 통합과 화합의 강 섬진강 국사봉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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