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칼럼]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섬진강칼럼]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 박혜범 논설위원 <hmk0697@hanmail.net>
  • 승인 2020.05.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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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책략인 “높이 나는 새는 맛있는 과일을 탐하다가 죽고, 못 속에 있는 고기는 좋은 미끼를 욕심내다 죽는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법망에 걸려 망한 것이, 어찌 춘추시대 어리석은 오왕(吳王) 부차(夫差) 뿐이겠는가?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해질 무렵, 지역사회를 위한 참다운 사회운동을 펼치겠다며, 첫걸음을 시작하고 있는 젊은 후배와 세간의 화제인 윤미향을 두고,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하다, 나름 지조를 지키겠다고 애쓰며 한평생을 살아온 촌부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묻기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말하고, 다음의 내 경험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지만, 사람에 관한 일이라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정확한 년도와 날짜를 밝힐 수는 없지만, 내가 강으로 나오기 전 대략 10년 전 어느 산기슭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생활비를 털어, 묻혀버린 항일독립운동의 유적들을 발굴, 유적보호에 온 힘을 다하던 때의 일이다.

그때 그 산골짜기에서 인간적인 교우는 없었지만, 자칭 로비의 천재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일삼으며 사는, 잘 안다면 안다고 할 수가 있는 어떤 승려로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방해하지 말고 묵인하기를 바라는, 이른바 현금의 뇌물을 받고 깜짝 놀라 되돌려 준 일이 몇 번 있었다.

내가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이 눈물겨운 항일독립운동의 유적을 보호하는 일에, 당신으로부터 어떠한 후원이든 선물이든 받을 이유가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나에게 난감해하던 그 승려가, 어느 날 차를 타고 지나가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의 선물이라며 로션크림 하나와 영양제를 샀다고 전해주는 것을 받은 일이 있었다.

처음엔 받지 않겠다고 사양하며 옥신각신하다, 이따금 차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거리에서 오해의 소지도 있고, 안다는 인사로 딸의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는 것까지 거절하는 것은, 관계가 어떻고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 해도, 서로 아는 처지에 매정하다 싶어, 찝찝하지만 받아들고 집에 와서 풀어보니, 두툼한 현금봉투와 함께 로션크림 하나와 영양제인 정관장 홍삼정 하나가 들어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의 선물이라는, 그 승려의 태연한 말장난에 또 당했다 싶은 생각에, 조심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로션크림과 영양제인 홍삼정 정관장을 검색하여 보니, 국산 로션크림은 딸의 선물이 분명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영양제인 정관장 홍삼정(240그램)은 현금과 함께 나에게 주는 뇌물이 분명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승려를 찾아가서, 애초에 말한 대로 딸에게 주는 선물만 고맙게 받겠다 말하고, 유적들을 보호하는 일에 두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내 입막음으로 준 현금 봉투는, 잘못 넣은 것 같다며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비록 어린 딸이지만, 애초에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은 내가 쪽팔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로션크림을 딸의 책상에 놓아두고, 받아서는 안 될 것을 받은 나를 자책하는 의미로, 정관장 홍삼정은 뜯지도 않고, 내 눈에 잘 보이는 책상 앞 책꽂이에 놓아두고 지금까지 보고 있다.

내 비록 섶에 누어 잠을 자고, 쓸개를 문지방에 매달아 놓고, 드나들 때마다 핥았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도 아니고, 그럴 정도의 일은 더욱 아니지만, 무엇이 되었든 무심결에 아무 것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에게,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은 나의 실수를 자책하고, 앞으로 좀 더 세심하게 살펴 조심하며 삼가겠다는 다짐과 경계의 의미로, 자칭 로비의 천재라는 그 승려가 준 정관장 홍삼정을 내 눈앞 책꽂이에 놓아두고, 포장지의 붉은색이 바래버린 지금까지 두고 보고 있는 것이다.(사진 참조)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고 촌부인 나를 꼬박꼬박 존경하는 선생님이라 칭하며, 나름 바른 세상을 위한 사회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첫걸음을 하고 있는 젊은 후배에게 내가 해준 조언은, 이해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이런저런 인정으로 올무처럼 조여 오는 것들을 일일이 가려서 뿌리치는 일도 어렵지만,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 일으키는 유혹으로부터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것이다.

바라건대 비록 전라도 산골 벽촌이지만, 군청이라는 관아의 공무원들과, 지역 토호들이 한통속이 되어, 통째로 부패해버린 지역사회를 일신하려는, 나름 깊고 신선한 사회운동의 뜻을 세운 후배에게, 섶에 누워 잠을 자고 쓸개를 핥으며 절치부심하는 구천에게, 문종이 건의한 책략 “높이 나는 새는 맛있는 과일을 탐하다가 죽고, 못 속에 있는 고기는 좋은 미끼를 욕심내다 죽는다.”는, 그리하여 어리석은 오나라 부차(夫差)를 죽이고 멸망시킨, 저 유명한 고사를 여기에 전한다.

끝으로 문종의 책략인 “높이 나는 새는 맛있는 과일을 탐하다가 죽고, 못 속에 있는 고기는 좋은 미끼를 욕심내다 죽는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법망에 걸려 망한 것이, 어찌 춘추시대 어리석은 오왕(吳王) 부차(夫差) 뿐이겠는가?

작금 온 나라 국민들을 경악시키고 있는 두 얼굴의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 또한 스스로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문종이 말한 이 법에 걸려버린 탓이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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