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섬진강칼럼] 문재인의 “민주적 통제”가 목적하는 것은 무엇일까?

[섬진강칼럼] 문재인의 “민주적 통제”가 목적하는 것은 무엇일까?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2.09 10:17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소한 간장 된장 고추장은 훔쳐 먹었어도, 다음에 살림을 할 사람들을 위해서 장독들은 깨지 않았고, 욕심껏 쌀을 훔쳤어도, 더 좋은 농사를 짓기 위한 논밭을 정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6년 사진자료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박정희가 추구한 유신의 나라
전두환이 추구한 정의로운 사회
문재인이 추구하는 민주적 통제

과거의 정권과 현재의 정권인 이들 세 명의 정권이 내건 명분을 보고, 사람들은 무엇을 같다하고 무엇을 다르다 할까?

1972년 10월 17일 국민들의 압도적인 찬성투표로 개헌 선포된, 대통령에게 강력한 통치권을 부여하는 유신의 나라는, 우리사회의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박정희가 내건 대의명분 그대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 정부가 국가발전을 주도하는 시대였다.

박정희는 이것으로 목적했던 케케묵은 낡은 제도와 의식을 일신, 역사 이래 숙원이었던 해마다 춘궁기에, 국민들이 도처에서 굶주려 죽는 죽음의 보릿고개를 없앴고,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안정시켰으며, 국가를 산업국가로 진입시켰다.

한마디로 박정희가 주도한 녹색혁명의 마침표인 쌀의 자급자족을 1976년 이루었고, 동시에 경인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를 차례로 완공하였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누리는 모든 안락과 풍요의 시원이다.

1979년 10월 26일 국가의 수반인 박정희가 살해된 혼란한 정국에서,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1981년 1월 창당한 “민주정의당”이 내건 정의사회구현은, 유신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낡고 부패한 정치판을 일신하고, 국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의명분이었고, 전두환 역시 최소한 86아세안 게임과 88올림픽을 대미로 장식하여, 식민지와 노비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죽어 살던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저임금으로 먹고 사는 가내공업 만년 하청업자의 수준인 국가경제를 차원 높게 업그레이드시켰다.

굳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보는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강산이 몇 번을 바뀌고 시대가 변하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사고와 문화를 향유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까지, 박정희와 전두환을 향하여 세상 온갖 욕들을 해대고 있는, 이른바 자칭 민주화세력들과 운동권세력들의 시각에서 보아도, 박정희와 전두환은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은 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예를 들어 최소한 간장 된장 고추장은 훔쳐 먹었어도, 다음에 살림을 할 사람들을 위해서 장독들은 깨지 않았고, 욕심껏 쌀을 훔쳤어도, 더 좋은 농사를 짓기 위한 논밭을 정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 그럼 지금 2020년 문재인이 외치고 있는 “민주적 통제”는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며, 과연 이것이 시대에 부합하며, 진실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일까?

사람들마다 판단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인권을 위해서 국가의 공권력인 검찰 권력을 “민주적 통제”로 관리 개혁한다는, 뭐 대충 그럴싸한 신종 미사여구를 만들어, 마치 절대 왕의 보검처럼 휘두르고 있는, 문재인의 “민주적 통제”가 목적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 만물은 그 바른 쓰임이 있는 것이라. 문재인이 말하는 “민주적 통제”라는 이 말의 바른 용도를 생각해보면, “민주적 통제”는 국민이 불의하고 부패한 정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의 용어가 분명하다.

한마디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검찰의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고 드러난 비리들을 감추기에 급급하며, 정권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언어가 아니며 절대로 해서도 안 되는 짓이라는 말이다.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본시 헌법이 정한 바에 의하면, 군부의 무력(武力)은 밖으로부터 오는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방위하고, 검찰의 공소권(公訴權)은 나라 안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이 두 개의 수레바퀴는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의 안녕을 위한 것이지, 특정 정치권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역사 이래 가장 개화됐다는 한국사회, 그것도 인간 개인의 인권이 국가의 제도와 법리보다 우선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문재인이 말하는 “민주적 통제”가 목적하는 것은, 판사 검사 경찰을 사실상 청와대 권력을 지켜주는 개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 양심을 가진 국민들의 판단이다.

부연하면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평가를 하면, 문재인이 내건 명분인 “민주적 통제”는, “민주주의의 국가, 정의로운 사회구현”이라는 전두환이 내걸었던 명분보다 더 기만적이고 반민주적이며 사악하다는 것이 쉬쉬하며 수군거리는 저잣거리의 민심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민주적 통제”라는 말로 혹세무민하면서, 자신들의 부정부패를 은폐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보고, 끝없이 권력에 엎드리며 부화뇌동하고 있는, 간도 쓸개도 없는 식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우매한 화과산 원숭이들의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바라건대 더 늦기 전에, 건강한 상식을 가진 양심 바른 우리 국민들이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목소리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절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은 정의로운 양심을 가진 젊은 의사 리원량(李文亮·34)을 죽이고, 수많은 자국민들과 온 세상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모든 것들을 권력으로 통제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크게 깨닫는 바가 있기를, 경자년 정월 대보름날 달집을 태우는 불에 간절한 소원으로 빈다.
 

저작권자 © 서울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