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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학술단체 긴급 호소문

[문화 현장]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학술단체 긴급 호소문

  • 기자명 김동길 대기자
  • 입력 2023.09.0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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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의 일방적 철거 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기 바랍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전경이다. 문화유산인 아카데미극장이쳘거 위기에 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전경이다. 문화유산인 아카데미극장이쳘거 위기에 있다.

[서울시정일보 김동길 대기자] 역사·기록·문화·예술·건축·사회 등 다양한 학제를 망라한 28개 학술단체가 공동으로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긴급 호소문”을 9월 4일(월) 발표했다. 

 한국영화학회, 한국사회학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극예술학회, 한국문화사회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등 ‘단관극장’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근대문화유산으로의 보존이 다양한 학술적, 역사적, 사회적 의의를 찾는 길이라는 데에 공동의 문제의식을 갖는 28개 학술단체는 이날 긴급 호소문에서 “아카데미극장은 이미 그 자체로 문화적, 역사적 활용가치가 충만한 희소성 높은 근대 문화유산”이며, “전 세계적으로 역사문화유산 건물(heritage building)의 보존과 그에 따른 안전상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철거’라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시간과 예산이 소요되더라도 다양한 방식의 정책적 접근을 통해 문화유산의 보존과 안전관리 양자를 동시에 취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 왔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국가적 유산을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잘 고치고 가꾸”면 “그 어떤 천편일률적인 지역사회 개발 사업보다도 원주를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 줄 것”이라면서 원주시가 아카데미극장의 “일방적 철거 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기를 촉구했다.

학술단체들은 이와 함께 원주시에 “이미 선정된 문체부 ‘유휴공간 문화재생’ 사업비 39억원을 수용”할 것, “아카데미극장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역사유적으로 보존”할 것, “극장의 원형을 보존하되 석면지붕을 교체하고 보수를 통해 안전성 있는 건물로 개조”할 것, 그리고 “극장의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극장의 문화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노력에 협조하여 극장의 활용가치를 극대화”시킬 것을 호소했다.

 다음은 긴급 호소문 전문이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긴급 호소문

 아카데미극장을 일방적으로 철거하려는 원주시 정책에 우려를 보내며

전국에 얼마 남지 않은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을 호소합니다.

지금은 단관극장(單館劇場)이라 불리는 단일 스크린의 대형 극장건물은 1998년 한국에 첫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한국인들의 일상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영화관의 원형적 형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느덧 멀티플렉스가 영화관의 기준이 되고 단일 스크린으로는 영화시장의 경쟁에서 극장운영이 결코 쉽지 않은 생태계가 되면서 우리 일상에서 단관극장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갔습니다. 극장 운영만 종료되고 건물들은 보존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마저도 부동산 시장의 논리와 개발이 가져다 줄 것만 같은 혜택에 대한 기대 속에서 대부분 허물어지며 신기루처럼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에 남은 단관극장은 1960년에 문을 연 경동극장, 1963년의 원주 아카데미극장, 그리고 1968년에 화재로 재건축한 광주극장 뿐입니다. 커피숍으로 내부를 모두 고치고 운영되는 경동극장을 제외하면 극장으로서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아카데미극장과 광주극장 뿐이며, 아카데미극장은 국내에서 단관 극장 형태를 유지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아카데미극장은 1998년 이전, 그러니까 20세기의 한국인들이 영화라는 당대 최고의 대중문화를 즐기기 위해 함께 모여 웃고 울며 여가를 보내던 삶의 흔적을 간직한 매우 희귀한 장소인 것입니다. 장소가 간직한 기억은 그 장소를 구성한 건축물의 구체적인 양식에서, 그 내부에 배열된 설비와 장식에서, 그리고 그 장소를 둘러싼 주변 환경들과 그 장소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몇 장의 기록사진으로 그 장소를 찍어서 남긴다고, 그 장소에 대한 몇 가지 문서 기록을 남긴다고 그 장소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역사와 한국인들의 삶의 기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장소를 허물고 그곳에 다른 구조물이 들어서는 순간 우리 사회는 중요한 과거의 기록을 영원히 유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너무 많이 유실해왔고, 이제 아카데미극장이라는 매우 희귀한 장소가 오랜 사투 끝에 아직까지 살아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연구자들은 이처럼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공연장과 주차장 등을 새로 짓겠다는 원주시의 정책에 큰 우려를 표합니다. 아카데미극장은 이미 그 자체로 문화적, 역사적 활용가치가 충만한 희소성 높은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을 추진하는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이미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 문제가 되는 건물 안전성에 대한 부분은 건물의 철거라는 방식의 단순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해법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역사문화유산 건물(heritage building)의 보존과 그에 따른 안전상의 문제, 특히 주변 주민의 건강에 대한 위협이나 건물의 붕괴 위험 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오랜 연구와 정책적 관심의 대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이와 같은 문제를 대면해 온 다른 많은 국가들에서 ‘철거’라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시간과 예산이 소요되더라도 다양한 방식의 정책적 접근을 통해 문화유산의 보존과 안전관리 양자를 동시에 취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 왔음은 주목해야 합니다. 일례로 역사문화유산 건물이 많은 이탈리아가 구조 안전성 모니터링(Structural Health Monitoring)을 통해 일궈온 방대한 정책 운용 사례들은 좋은 참고 지점이 될 것입니다.

지금 원주시에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이 건물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아무런 역사도 없는 새 구조물을 세울 것인가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국가적 유산을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잘 고치고 가꾸어 그 문화적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를 강구하는 것임이 마땅합니다.

주지하듯이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원주를 포함한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의 주요 거점 사업입니다.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원주 지역 주요 유료 관광지 입장객은 당일 여행으로 다녀가는 체험형 콘텐츠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원주 내 문화체험을 통한 관광활성화는 상대적으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카데미극장이 지닌 풍부한 문화적 기억을 활용한다면 그 어떤 천편일률적인 지역사회 개발 사업보다도 원주를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아카데미극장을 잘 보존 활용한다면 이는 세대를 넘나들며 레트로 문화와 영화 애호가들에게 원주를 관광지로서 찾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주요 ‘성지’를 찾는 해외관광객들에게도 매력적인 추천 여행지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원주시라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희소하고 특색 있는 문화유산을 잘 활용함으로써 더 장기적인 시민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시라는, 원주를 찾고 향유하며 원주의 경제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잠재적 방문자들로서 드리는 제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원주시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부인들의 간섭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원주시와 한국사회 전체가 우리의 과거를 잘 보존하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어 가기 위한 공동의 과제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2023년은 한국영화 역사의 초기 시대를 말할 때 그 여러 기점들 중의 하나로 빠짐 없이 언급되는 최초의 무성극영화 <월하의 맹서>가 개봉된 1923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월하의 맹서>는 그처럼 유명한 영화이지만 또한 지독하게 알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영화의 필름이 유실되어 이제는 우리가 그 영화를 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월하의 맹서>처럼 사라진 많은 필름들이 쓰레기장으로 버려지거나 소각되거나, 혹은 다른 무엇인가로 재활용되어 사라져갈 때만 해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물건의 가치가 그렇게나 중요할 것이라고,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그 물건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카데미극장도 그렇지 않을까요? 이제 전국에서 단 두 곳 남은, 극장의 꼴을 갖춘 단관극장. 그 중 가장 오래된 극장인 이곳을 지금 당장의 ‘지역경제’의 이름으로, 혹은 그 땅에 대한 당장의 다른 ‘활용도’를 이유로 철거하고 없애버린다면, 후대의 원주 시민들에게는 그 날이 어쩌면 무척 수치스러운 날 중의 하나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원주 바깥의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하나,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의 일방적 철거 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기 바랍니다.

하나, 원주시는 이미 선정된 문체부 ‘유휴공간 문화재생’ 사업비 39억원을 수용하여 아카데미극장이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바랍니다.

하나, 문화재청과 원주시는 한국 최고(最古)의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역사유적으로 보존하기 바랍니다.

하나,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의 원형을 보존하되, 석면지붕을 교체하고 보수를 통해 안전성 있는 건물로 개조하는 데에 힘쓰기 바랍니다.

하나,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의 문화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노력에 협조하여 극장의 활용가치를 극대화시키기 바랍니다.

하나,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화에 응하기 바랍니다. 2023년 9월  4일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광운대 문화산업연구소, 근대도시건축연구와실천을위한모임, 대중서사학회, 도시사학회, 민족문학사연구소, 비판사회학회, 문화/과학, 문화연대, 새공공영상문화유산정책포럼, 서강대 디지털역사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연세대학교 비교사회문화연구소, 이주민과 함께, 충정아파트패밀리,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구술사학회, 한국극예술학회, 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한국문화사회학회, 한국문화연구학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사회학회, 한국여성사학회, 한국영화학회, 한국외대 정보·기록학연구소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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