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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 추구하고자 했던 정의

[문학칼럼]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 추구하고자 했던 정의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2.09.0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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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항상 승리하지 않지만 꺾이지 않는다는 정신을 보여주다.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은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국민적 소설가, 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이다. 도쿄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했다. 1904년부터 하이쿠 잡지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하며 인기를 끌었고, 뒤이어 '도련님', '산시' '그 후' 등 다양한 작품을 집필했다. 초기 풍자적, 공상적 작품에서 차츰 현실적이 되고, 후기에 자연주의적으로 접근한다. 작품 전반에서 강한 정의관을 토대로 인간성의 문제를 관철하는 등 다방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부잣집 둘째 도련님, 어렸을 때부터 갖가지 말썽을 부리며 자란 주인공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의 집안은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걷는다. 형은 재산의 거의 모두를 가져가고 그에게 600엔을 쥐어주는데 형편이 안 되자 그를 어릴 때부터 애정 어린 마음으로 돌보아주고 늘 그의 편이 되어주던 하인 '기요 할멈'은 나중에 성공하면 불러달라고 말하고 자신의 조카 집으로 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섬마을의 수학 교사로 가게 된다. 월급 40엔에 수업은 일주일에 21시간, 도련님은 이곳에서 덴뿌라 메밀국수 네 그릇과 당고 두 접시를 먹은 것과 온천탕에서 수영을 한 것 때문에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숙직 첫날에는 기숙사 학생 들이 이불안에 메뚜기를 넣어놓아 놀라 이를 처벌해달라고 하나 교사들은 대충 넘어가려한다.

고고한 학이 흙탕물에 들어갔다고 느끼는 도련님은 더욱 자신의 상황에 반발하고, 그에 비례해서 배척당한다. 특히 가장 가까이 지내야 하는 학생들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골탕먹이려고 어려운 문제를 내미는 학생들에게, 도련님은 도련님답게 이렇게 퍼붓는다.

“이 바보들아, 선생님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못 하는 것을 못 한다고 하는데, 뭐가 이상하단 말이야? 그 정도 풀 수 있는 실력이라면 월급 40에 이곳에 올 리가 만무하지.”

그는 교장에게는 너구리, 교감에게는 빨간 셔츠, 교감에게 아부하는 미술 선생은 알랑쇠, 같은 수학선생은 거센 바람이라고 부른다. 얼굴이 파래서 늘 끝물에 나오는 음식만 먹는 낮 빛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인 끝물 선생은 그 마을의 아름다운 아가씨 마돈나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가세가 기운 마돈나에게 교감선생이 접근해 구애를 하고 마돈나도 교감선생의 넉넉한 형편에 마음을 뺏기고 끝물 선생만 닭 쫓던 개가 될 처지였다. 거센 바람은 교감 선생에게 이러한 사실 들을 따지고 교감선생은 끝물 선생과 마돈나가 파혼하지 않으면 자신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앙심을 품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끝물 선생을 전출시켜 버린다.

늘 빨간색 셔츠를 입고 다니는 교감선생의 아랫도리는 빨간 옷이 아니다. 즉, 겉과 속이 다르고, 위와 아래가 다른 인물을 상징한다. 빨강셔츠를 필두로 하는 일련의 권력 세력은 서서히 진면목을 드러낸다. 빨강셔츠는 학교의 실세일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권력자로 통한다. 그는 선생님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며 자신의 편을 키우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먼 곳으로 발령을 보내버린다.

이러한 내막을 알게 된 도련님은 거센 바람과 의기투합하고 교감은 갖가지 술책으로 도련님과 거센 바람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둘은 교감의 화류계 생활을 폭로하기 위해 그를 감시하다가 결국 게이샤와 놀고 들어가는 빨간 셔츠와 그를 따라다니는 알랑쇠를 붙잡았으나 그들이 시치미를 떼자 하늘을 대신한다며 주먹으로 천벌을 내린다. 그 후 학교를 즉각 사직하고 도쿄로 돌아와 월급 25엔을 받는 노면 전차의 기수로 취직을 하고 기요 할멈을 불러 작은 집에서 함께 지낸다.

말썽쟁이로 성장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도련님,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정의를 대변한다.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기요할멈을 불러 함께 지내는 것은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끝까지 함께하려는 의리와 공생을 표현한다. 하인 기요의 한자는 청(淸)이다. 그녀는 충성스러운 가신의 위치에서 순수하게 주인을 섬긴다. 도련님에게도 주종관계가 아닌 존경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마을의 여성상으로 대변되는 ‘마돈나’와 대비되면서 그 존재가 부각된다. 마돈나는 마을의 제일가는 미인이지만 끝물 선생과 파혼하고 빨강셔츠에게로 가는, 자유롭고 이해타산적인 역할이다. 기요가 있어 도련님은 끝까지 자신의 캐릭터를 지킬 수 있었다. 도련님은 기요, 즉 맑고 깨끗한 청(淸)으로의 회귀를 지속적으로 꿈꾸며, 적(赤)군인 빨강셔츠와 그 일당들의 음모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끝까지 지키면서 거리낌 없이 도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의가 맥을 못 추고 현실의 논리를 앞세운 악의가 승리를 거두는 부조리한 시스템이 시코쿠의 작은 학교에서만 가동되는 것은 아니다. 시코쿠의 학교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도련님이 맞서기는 조금 많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세키가 도련님을 통해 향하고자 했던 정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기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메이지유신 이후의 시대적·개인적 한계를 통감하면서도, 냉철한 시각으로 스스로를 비롯한 추하고 타락한 인간상에 비판을 가한 소세키 정의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꺾이지는 않는다는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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