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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 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과 대한민국

[문학칼럼]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 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과 대한민국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2.08.23 08:17
  • 수정 2022.09.07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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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은 결코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문학칼럼]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 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과 대한민국

어느 세일즈 맨의 죽음은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가1949년 발표한 희곡이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배경으로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세일즈맨이 실직 후 좌절과 방황 끝에 자살을 택하는 불과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아서 밀러가 실제 대공황 시절 사업실패로 자살한 자신의 삼촌 매니 뉴먼을 모델로 삼아 집필한 것이라고 한다. 아서 밀러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비롯해 토니상, 뉴욕 극 비평가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최고 극작가의 반열에 오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작품은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고발이라는 극찬 속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연극계 최고의 걸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아메리칸드림의 붕괴를 보여주는 한 가족의 드라마로는 수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희곡이다.

30여 년 간 세일즈맨으로 일한 65세의 주인공 '윌리 로먼'은 주변에서 아무리 자신을 무시해도 그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두 아들 '비프'와 '해피'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는 낮아지고 결국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하게 된다.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무기력한 장남 비프 로먼과 가족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되었던 차남 해피 로먼, 서로를 사랑하지만 점점 쌓이는 오해와 일방적인 소통은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져 로먼 가족의 숨통을 조인다. 결국 아버지 윌리 로먼은 낙오자로 전락하면서 궁지에 몰리자,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겨 주기 위해 자동차를 과속으로 달려 자살하게 된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정글과도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끝내 스스로의 죽음을 택하는데 그가 꿈꾼 것은 화려한 아메리칸 드림이었지만, 그가 이루어낸 것은 30여 년을 헌신한 회사의 해고통보와 마지막 남은 주택 융자 할부금 뿐이었다.

윌리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남은 것은 가족과 낡은 살림살이 뿐이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두 아들과 사랑과 존경으로 헌신하는 아내, 일자리를 제안하는 친구의 존재는 그의 일생에 최악은 면하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이며, 구입한 지 오래 된 할부로 샀던 냉장고, 자동차, 낡은 집은 그마저도 고장이 났거나 예전만큼은 못한 생명의 기능이 끝난 것들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은 그의 삶이 궁색해졌듯이 그의 살림살이를 비롯한 몇 가지 없는 재산마저도 퇴색되었다. 그가 세일즈맨으로서 살 것을 선택한 이유는 ‘가족’이었다. 가족을 위해 뭔가를 포기하고 성공을 꿈꾸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소시민의 비극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 이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명작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1940년대의 미국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비교해보면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점이 많다고 보이는데 ‘세일즈맨의 죽음’이 보여주는 가난한 가장의 비극적 결말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될 일이지만 생활고를 비관해 가족을 죽이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가장의 모습, 가장이 죽고 아이와 남겨진 채 살다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한 엄마 등이 이와 같지 않을까. 1940년대 윌리와 같은 가장의 비극이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통용된다는 점은 슬프고도 놀랄만한 일이다.

윌리 로먼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하루를 살았듯이 지금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대학을 가고 자격증을 따고, 인턴을 한다. 또, 해외유학을 가고 외국어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래서 겨우 회사에 들어가면 실적을 내야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세상에 ‘나’라는 사람을 팔고 있는 세일즈맨인 것이다.

주인공 윌리와 현대사회의 대부분 사람 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을 무엇일까? 바로 ‘성공의 목표’다. 근면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심어준 헛된 기대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성공하면 무엇이든 해결된다는 명제에 휘말리어 우리의 삶은 애초에 우리가 설정한 삶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가족의 행복이라는 근본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성공을 쫓았지만 결국엔 다 망가진 물건들에 대한 빚을 여전히 갚기 위해 바쁜 삶으로 전락해버린 윌리의 세상처럼 성공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우리 사회가 사람보단 물질을 우선한다는 것,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생존경쟁과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병폐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은 결코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윌리는 가족을 위해서 남자라면 세상에 무엇인가는 더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나 노력하면 주어질줄 알았던 성공 대신에 그가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죽음’과 목숨과 바꾼 보험금 2만 달러였다.

현재의 우리나라도 자본주의 질서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모두가 성공을 추구하는데 윌리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들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지 않을 거라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세일즈맨의 죽음이 보여주는 세상과 오늘날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아 비극은 얼마든지 되풀이 될 수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주인공 윌리는 죽음을 작정하는 순간까지 착각 속에서 살았다. 자살을 결심한 그가 성공한 형 벤에 말한다.

“나의 장례식은 대단할 겁니다. 조문객들이 메인과 매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 주에서 올 것이니까요. 여러 주에서 온 색다른 자동차 번호판이 볼만할 겁니다. 우리 아들 들도 깜짝 놀라겠죠. 아들 놈들은 내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몰라요. 아비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는 충격 받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장례식은 친구 찰리와 버나드, 그의 아내와 두 아들만으로 치러졌다. 세일즈 맨은결국 그렇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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